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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Lifezine>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온 청년
들의 고민이며, 때로는 찡그리기도 때로는 실컷 웃기
도 한 경험들을 녹여낸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는 이 하나하
나의 목소리가 널리 퍼져 더 많은 청년들이 이 사회
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삶의 어려움은 함께
풀어나갈 수 있음을 느끼며 힘을 얻길 바랍니다.
발행일 | 2019년 8월 15일
발행인 | 문유진 무중력지대 양천 센터장
발행처 | 서울특별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
편집 | 김범신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 파트장
주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오목로 359
대표전화 | 02-2646-2030
FAX | 02-2646-2030
홈페이지 | youthzone.kr
디자인 | 로드사이드 피크닉
본 매거진의 저작권은 무중력지대 양천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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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면접은 2017년 5월에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직무를 지
원한 나는 5개월가량 학원을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 뒤 금
천구에 위치한 신생회사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여느 회사와 같이 자기
들은 어떤 회사이며, 무슨 일을 하고, 만약 합격하게 된다면 어떤 직무를
맡게 될지 간략하게 설명을 하더니, 급작스럽게 연봉협상을 하게 되었다.
급여는 연봉 2000정도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처음으로
면접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내 몸값이 얼만지 또 얼마나 불러야 하는지
몰랐다. 일단은 어리바리 넘어갔으나 갑자기 실무자가 야근이 잦다는 이
야기를 했다. 야근을 하는 이유는 개인 역량의 부족이므로, 야근비와 택시
비는 지급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잠자코 있다가, 회사가 운영되는 방식을 들었다. 대표님이
수주를 따오고, 나와 실무자님이 업무를 해치우며, 한 주에 2일에서 3일
은 현장에서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금요일에 딴 수주를 주말에 해
치우는 경우는 실무자의 역량 문제가 아닌데도, 당연하게도 역량 문제이
기 때문에 특근비가 없다고 했다. 우리 같은 디자이너들은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며, 일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쌓는 좋은 회사임을 강조했다. 그 이
후는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는지는 잘 기억안나지만, 다음날 나에
게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으니 다른 회사를 찾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마
나의 꼴통기운을 대화하면서 느끼신 것 같았다. 회사에 따라 야근비와 특
근비는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들지만 금천구의 회사 같은 방
식이라면 야근비와 특근비를 책정해 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일정이 유동적
인 만큼, 이에 대한 보상 없이 24시간 풀 대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후 다른 회사에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고 다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구로에 있는 회사였는데 대표와 이사와 실무자, 이렇게 3대1 면접이었다.
차유나
강서구와 영등포구에서 취업을 준비
하는 청년.
구직과정을 몸소 겪으며 느낀 점을
통해 다른 청년이 도움을 받고 공감
하길 바라며 글을 써내려간다.
청년 이야기 01
많은 취준생들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 혹은 취업 준비를 끝내고 면접을
많이 보러 다닐 것이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래서 나는 면접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
들에 대한 에세이를 써보려고 한다.
시간의 순서와 내가 면접 본 모든 곳에 대해 쓰지는 않지만, 많은 분
이 공감을 하며, 서로 이런 회사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하는 참고로 삼
았으면 좋겠다. 물론 구체적인 회사이름과 정보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점은 양해 부탁드린다.
글. 차유나
취준 생활의 꽃은
면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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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분위기는 비교적 편안한 편이었고, 회사의 포트폴리오가 훌륭한 편이라 기대를 많
이 했다. 이력서를 보면서 짧은 머리를 한 나의 외모를 지적하고, 인서울을 나오지 못한
학벌을 꼬집으면서, 왜 더 나은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았는지 나무랐다. 그래도 포트폴리
오도 좋은 회사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밝게 웃으면서 면접을 진행
하였다. 그러다가 연차가 3년이 안되었는데 어떻게 구로 회사를 지원하게 되었냐는 질문
에 대답하였다. 무난한 대답. ‘여기 회사 작업을 좋아하고 배울 것이 많기 때문에 상향 지
원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개인적으로 너무 충격적이었다.
대표가 말하기를 나의 포트폴리오가 특이해서 흥미삼아 불러봤다는 것이었다. 물론 공고
에는 3년차라고는 나왔지만, 그 위에는 년 수 무관이라고 쓰여 있기도 하고 공고가 정확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볼만 하다고 지원한 것인데, 단순히 흥미삼아 사람을 불렀다고 말
씀하셔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어차피 뽑을 인력도 아닌데 외모와 학벌을 가지고 흰소
리들을 들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그럼 제 경력의 인력을 뽑으실 생각은 있으
신가요?’라고 묻자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주섬주섬 준비해 갔던
수십 장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 나가는 길이 참 길었다.
대부분의 회사가 흥미로운 포트폴리오 때문에 사람을 괜히 불러볼 수도 있다고 생각은
든다. 이런 것으로 가타부타 따지고 들고 싶진 않다. 짧게나마 회사생활을 해보면서 나도
이렇게 안 뽑을 인력을 내 의도랑 다르게 불러 본적도 있고, 여의치 않게 사람을 떠보게
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나 말고도 많은 취
준생들이 이런 상황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이 정말 아프
고, 준비한 시간들이 더 힘들게 다가왔을 것이다. 또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익숙지 않거
나 힘든 사람일수록 면접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다
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경험이 충분히 상처받을
만하고 무기력한 기분을 맛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자
는 것이다. 그냥 1시간 놀고 오는 것이 아니라 1시간을
응축해서 나를 보여주고 표현하고 나온 시간 아닌가.
스스로에게 충분히 힘들만하다고 인정해 주고 싶다.
꽤 최근에 면접을 본 곳이 있다. 스타트업 회사이고
정말 신생회사였다. 본사는 용산이지만 사정 때문에
출근은 노원으로 해야 하고 공장은 충북에 있는 곳이
었다.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초보들이 모인 아
마추어 회사 같았다. 나는 3시 면접 시간에 5분 먼저
도착하여 면접을 기다렸다. 대부분의 회사는 면접을
보면 10분 정도는 늦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
는 데 35분쯤 지나서야 대표가 도착하였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대표와 2명의 이사와 3대1 면접을
보게 되었다.
대표와 회사에 대한 정보를 듣고 난 뒤, 나를 PR했는
데, 경력을 보고 내 업무 이외의 웹디자인 업무도 추가
로 해달라고 요청 받았다. 나는 승낙을 했고, 이어 연
봉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원래 공고에는 2100이라고
했지만 경력과 직무 외의 업무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원래 연봉보다 적게 회사에 입사하고 싶지 않으니, 연
봉을 협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
더니 대표는 내가 실적이 없고 능력을 믿을 수 없으니
연봉을 높일 수 없다고 했다. 요즘 회사들이 포트폴리
오도 안 믿고 경력도 안 믿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황당했다. 대표는 말을 온전히
못했다. 처음에는 회사일이 바쁘지 않다고 했다가, 막
학원 수료한 애들은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연봉은 얼마이고, 복지는 어떠했고 식대 및 복지
비용이 추가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연봉도 사실 적
은 돈은 아니지만, 이 회사는 복지라고는 4대 보험뿐
인 데다가 추가 업무가 있는 상황에서, 왜 연봉을 깎아
서 이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지 되물었다. 하지만 이상
한 이야기만 하는 대표와의 대담이 힘들어서 그럼 학
생을 알바로 쓰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이렇게 3가지 회사에서 격은 면접 일화를 풀어보았
다. 그냥 나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푸념한 것 같아서 어
떤 분은 읽는 내내 힘드셨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 사실 나도 좋
은 회사를 구별하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최악의 회사
는 모두들 피했으면 좋겠다. 사람의 노동을 사용한다
는 것을 회사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
다. 적어도 경력이 있으신 분들과는 어느 정도 연봉 협
상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시키는 일은 많은데 무작정
연봉을 줄 수 없다고 대화조차 안 된다면, 어떻게 그런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내가 싸가지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중에 연봉을 올려줄 수 있다느
니, 4대 보험이면 복지가 좋다는 말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봉은 떨어지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쉽지 않
다. 그 누구도 연봉을 깎아서 입사하는 일은 없기를 바
란다. 앞으로 4차 산업이니 AI니 인공지능 같은 기술
이 발전하여 인력이 축소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한참 인력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모두 인간 대접은 받으면서 돈 벌기를 바라며 글
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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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야기 02
오지수
한동대학교 재학. 양천구 거주.
지금 자신이 겪는 시간들을 토해내
며 내 경험이 나의 것만이 아님을 밝
히고, 나누고자 한다.
청년들의 삶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문제로 대학 등록금부터 시작해
보자. 어떤 이는 집에서 지원을 받고, 어떤 이는 학자금을 대출 받고, 그것도 부족해 아르바이트
를 병행한다. 결국 돈의 유무가 자신들의 출발선을 결정한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야만 꿈도 좇을 수 있다는 걸 10대 때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공부 열심
히 하고 좋은 대학 가면 된다’가 불문율이었고 그에 맞춰 나는 학원 다니며 학교 공부와 수능을
충실히 준비해야 했다. 난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학자금은 대출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었다. 부모님 회사에서 학자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없이 그냥 내 용돈
벌이로 학교를 다니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안 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왜 이런 문제에
시달려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4년제를 다니면 최소 8학기 혹은 그 이상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쌓
이는 건 빚과 이자. 정부는 정책으로 이자를 줄여주는데, 왜 학교는 자발적으로 학비를 내려주지
않는 걸까? 과마다 다르지만 인문대는 그나마 저렴한 편이다. 우리는 한 학기마다 300-400을
내고 학교에 다니며, 내가 원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기 위해 확률에 목숨을 건다. 교수법이 최적
화된 교수님, 학점을 정말 잘 주는 교수님, 내가 원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싶은 게 학생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수업은 한정적이며, 당연하게도 수강 신청은 긴장의 연속이다. 왜 우리는 돈을
내는 데도 원하는 수업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걸까? 왜 학교는 학교 구성원을 위해 발전하지
않는 걸까? 왜 학교는 학생들에게 해주는 게 없어 보일까? 학교는 왜 우리에게 좋은 직장을 가라
고 등 떠미는 걸까?
대학의 목적은 변질됐다. 사전에서 대학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 의미에 맞춰서 운영되고
있을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썩 그래 보이진 않는다.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학문일지라도 잠
재적인 능력과 가능성을 가늠해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인원이 없는 과, 취업률이 낮은 과는 금세 폐
과 되거나 통폐합된다. 인구수 대비로 맞춰서 변화를 꾀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너무 핑계 같다. 그
렇게 새로 생겨나는 과를 보면 이름은 거창하지만 속을 보면 결국 취업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학
은 취업 사관학교로 변질되었다. 그걸 고등학생들은 알고 있을까? 알든 모르든, 대부분 좋은 대
학을 가려고 사교육에 기꺼이 돈을 바친다. 막상 들어오면 후회할 게 뻔해도, 다수가 가는 길을
놓치지 못하겠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대학은 학비를 내리지 못하고 정부는 왜 그런 학교를 방치하는 걸까? 왜 정부가 내
놓은 정책은 수박 겉핥기 식일 뿐일까? 청년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학자금 이자 감소가 아닌 학
자금 없이, 돈 걱정 없이 학교생활을 마치는 것이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구직활
동이 아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하나 더, 주거생활. 부모님과 멀어져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도 있다. 기숙사를 살거나 자
취생활을 하거나 독립을 한다.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 증설을 반대하는 임대업자들의 시위를 꽤
볼 수 있다. 그들은 상권을 위협한다며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지만 그건 결국 그들의 경제권이 위
협받기 때문이다. 학생은 그들에게 당연하게 돈을 바치는 사람처럼 보이나 보다. 자취방은 열악
하고 좁고 비싸다. 상인들의 담합으로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은 행복주택으로는
여전히 많은 청년들의 주거를 책임질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닌 이미 문제로 번진 상황
글. 오지수
우
리
의
이
야
기
,
나
의
이
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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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속에서 해결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자신의 가정에서 방세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청년들은 돈과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 그들에게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하는 것
은 크나큰 사치다.
일자리는 많다고 하는데 왜 청년 실업은 많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대
표적으로 청년들이 구직활동에서 원하는 제일 큰 혜택은 ‘워라밸’이다. 일과 자신의 여가 시간이
여유 있게 배분되어 자신을 계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꽤나 단순한 바람인데도 실제로는 잘 허
용되지 않는다. 야근이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워라밸을 외칠 용감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야근을
하는 이유는 2-3 사람이 할 일을 1인이 혼자서 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이 결근했을 시 그 일을 메꾸어 줄 인력이 충분하게끔 운영하기 때문에 야근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스펙을 요구 당한다. 요구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계속해서 뛰어다닌다. 서포터
즈, 인턴 등 많은 대외활동을 하면서 이력서에 한 줄 채우고 실제 ‘나’와는 다른 또 다른 ‘나’를 창
조하면서까지 자기소개를 작성한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해도 ‘모두가 그렇게 하
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하며 우리는 걸음을 옮긴다. 길을 가는 그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절벽일지 아니면 평야일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모두가 가니까 가는 건 위험해 보인다.
이러한 청년 실업 문제는 청년 개개인의 자질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다.
여성의 경력 단절은 정말 여성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기업의 지나친 야근 문화는 사원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그렇게 비롯된 인구 부족 문제는 국가 구성원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이 모든 문제는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개인의 문제가 다수의 문제로 번
진다면 그건 더 이상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해결은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까지 나오는 대책은 뚜렷한 대책이 되는 것 같지 않다.
과도기, 적당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애매한. 그 시기에 접어든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들 잘 해내는데 나만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마음 졸이고 불안해하고, 자신을
더 채찍질하고 있지는 않을까? 무엇이 맞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은 채 그
저 부딪혀 보라고 얘기하거나, 아니면 꿈을 좇아가라고 말하거나. 꿈을 좇는 것도 결국엔 경제적
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그 모든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며 청년들
모두가 책을 쓸 만큼 대단해지기를 바라는 걸까? 그렇게 쫓아가다가 결국에 지쳐서 정신적으로
휴식이 필요해도 사회는 정신적인 아픔을 용인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숨어서 정신 질환을 해
결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심리 상담 관련 직종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
스템 속에서 보호받고 싶다는 마음은 청년들의 욕심인 걸까?
나는 3수로 겨우 학교에 들어갔다. 전공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입시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학교생활을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했다. 국가 장학금을 신청하려고 해도 부모님 직장이 학비를 지원해준다는
이유로 어떤 혜택도 넘볼 수 없었다. 3자녀 가정 혜택도 장녀이기 때문에 받을 수 없었다. 중산층의 애매함 때문
에 혜택은커녕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지원 공고를 보더라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보다는 ‘난 해당
안 돼.’라는 빠른 포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말이 좋아 병행이지 거의 아르
바이트에 끌려 다녔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한 날이 고되면 그 다음날은 자연스럽게 학교를 가지 않고 성적표
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성적은 좋을 리 없었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 싶어서 바로 아르바이트를 줄였다. 대신 대외활동으로 눈길을 돌렸다. 관심 있는 분야
에서 하는 활동들은 다 지원했지만 이제 겨우 학교생활을 막 시작한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기준에는 턱없이 부
족했기에 면접의 문턱도 가보지 못하고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교내 프로그램 하나 진심을 담아 신청해서
합격했다. 좋은 교류, 좋은 관계, 성장을 꿈꾸며 영어 실력 또한 엄청 높여서 돌아와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친하
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절연, 한국인 집단에서의 배척, 경제적인 문제 등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나를 덮쳐
왔다. 그러면서 타인과 비교가 시작되고 좌절하고 무너졌다. 어학연수를 다녀와서도 이런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나라면 큰 돈 들여서 갔는데 그런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 더 매진했을 것 같아.’라는 대답이 마
음에 박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맞아. 그런 시선이라면 나는 실패자에 불과해.’ 어떻게든 해외 경험을 좋게
생각하고 묻어버렸다.
짧은 해외 생활을 마치고 나서 본 학교는 참으로 좁아 보였다. 더 큰 세상을 원해! 하면서 휴학을 결정했다. 휴
학 기간 동안 관심 있는 언어도 배우고 더 많은 나라에 가서 견문을 넓혀야겠다며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지
만, 어째 가면 가는 곳마다 사람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내 성격을 개조하려는 사람, 나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 등등 다양하게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자 나를 의심했다. 정말 내가
별로인 걸까? 난 정말 이 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까? 내가 잘하려면 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하는 걸까? 그들
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좌지우지 되며 내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넌 성격이 그래가지고 다른 모임은 어떻
게 다니니?’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나서야 그만 두겠다고 겨우 말했다.
복학 후 바라본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취업 양성소가 되어버린 학교. 학년이 올라가서 당연한 수순인데 내
가 잘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변한건지 모를 일이지만 너무나도 변한 분위기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정말
대학교는 취업 양성소에 불과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대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대학의 정의가 실
현되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졌다. 진정한 교육을 받고 싶었다. 인격적인 자양분을 쌓을 수 있는, 교육이 실현되는
“정말 내가 별로인 걸까?
난 정말 이 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까?
내가 잘하려면 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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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 너무 이상적이지만 어딘가에는 그런 곳을 향해 움
직이는 곳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옮기고 싶은 마음이 꿈
틀대니 더 지체할 것 없이 편입을 알아보게 되었다.
마침내 그런 곳을 찾았고 학교를 다니며 편입을 준
비했다. 딱 그 학교 하나만 보고 준비했다. 왜 나는 계
속해서 병행만 했는지 모르겠다. 하나만 집중해도 충
분할 것 같은데 참 힘들게도 사는 걸 선택하네. 편입
시험 1차를 합격하고 2차를 보고 좋은 소식이 들리기
를 바랐지만, 눈앞에서 탈락.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학교를 계속 다닐지, 아니면 휴학을 해 한 번 더 준비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 마음은 후자에 더 머물
러 있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 또한 어차피 넌 그 선택
을 할 거라며 나의 선택을 거칠게 응원해줬다. 문제는
부모님. 왜 굳이 돌아서 가냐부터 시작해서 제발 안정
적으로 학교 다니면서 취직하면 안 되겠냐는 말로 나
를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마음은 굳혀져 있었기
에 결국엔 부모님도 승낙하셨다. ‘네가 시작하겠다고
했으니 잘 해봐라’라는 말과 함께 나보다 더 강력하게
나를 몰아붙이며.
결론적으로는 편입이 됐다. 1년 동안 학교가 요구하
는 것들을 준비한 뒤 무난히 합격했다. 그때 나는 26
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빠르면 24에는 사회생
활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휴학이 일반화되었
다고 해도 1년 정도 그러니까 25, 26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신
입생 아닌 신입생 같은 편입생으로 학교생활을 시작
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는 대화 소재에 접점이 없
고, 어린 동생들에게는 연륜을 기대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게 됐다. 나이는 그냥 먹는 건데 갓 스물인 동생들
이 보기에 나는 참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으
로 보였나 보다. 6년의 차이가 참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같은 고민을 겪는 동생들을 보니 짠하다고 해
도, 지금 내 인생이 부담스러운데 너희들 고민을 들어
주면서 2배를 감당해야 하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지쳐버렸다. 아무
리 잘하려고 해도 잘해지지가 않았다. 힘도 없고 아무
것도 못했다. 하지만 뒤처지는 내 자신을 보니 그건 더
용납이 안 되는데, 계속해서 채찍질해봤자 되는 게 없
었다. 마음은 마음대로 상하고 몸은 몸대로 상하고, 그렇게 내가 선택한건 결국 회피, 구석이
었다.
그렇게 아프기 시작했다. 요즘은 흔하다고 하는데 당사자에게는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병,
‘우울증’.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하고 알아봤는데 정보가 전혀 없었다. 관련 부서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없었다. 어떤 약은 보험처리가 되고 어떤 약은
안 되고 내가 사는 지역 부근에 어떤 선생님이 있는지를 스스로가 알아봐야 하다니! 우울증
환자에게는 가혹한 시스템 아닌가?라는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되
겠다 싶어 억지로 알아봤다. 여러 상담사들 만나며 상처받기도 하고 혹은 조금씩 위로받으며
더 찾아봤다. 이곳에 환자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그래도 누군가가 좀 알려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나를 예시로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또래라면 고민하는 부분에 공통점은 있을 것이
다. 그들과 내가 바라는 건 지금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는 것, 살아남는 것. 취업난
을 해결하고 결혼난을 해결하고 육아난을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은 뭐가 있을까? 아니 그 전
부터 시작해보자. 입시난을 해결하고 대학난을 해결하고 취업난을 해결하고 결혼난을 해결
하고 육아난을 해결하고 난 다음은? 뭐지? 그 안에 내 인생, 내 정체성은 찾을 수 있을까?
나는 10대의 절반을 의무교육으로 썼다. 학업에 집중해 자신의 진로를 대학에 맞춰 어떤 과
를 갈지를 고민하고, 직업에 초점을 맞추며 어떻게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하
는 점이 대부분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20살, 땡하고 시작하면 버거울 정도로 새로운 길들이
보였다. 이 길이 확실하다고 생각해 들어섰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달라서 다른 길을 선택하거
나, 참고 이어나갈지 고민했다. 나처럼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기타 이유
로 길을 내려놓는 등 자신이 설계한 길을 직선적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 뒤 여러 경로들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이 자리가 내가 원하는 자리였는지를 자
문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이 하나씩만 온다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관계, 진로, 자아 정체성 등등 수많은 분야의 질문들이 찾아오더라.
그런데 해답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나도 이렇게 깎이고 깎여서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어
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28이다. 20살부터 시작된 성장과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또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난 불완전했다. 그때의 난 모든 것이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그 불완전함을, 불
안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이 괜찮다. 근데 미래는 모르겠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
겠다.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를 이끌
어 갈지 장담할 수 없다. 뭔가 애매한 청년, 청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맡은 역할들을 충
분히 해내고 있다. 그 청년들을 향해 그리고 나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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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야기 03
이수연
서울시 청년허브에 다니는 직장인.
일을 하며 잘 풀어질 줄 알았던 불안
한 마음을 점점 다르게 바라보게 된
경험을 녹여냈다.
정말 그랬다. 정규직만 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나는 항상 불안하고 불만족스럽기만 한 내 마음이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대체로 무난하고 만족스러워질 줄 알
았다. 그런 일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왜 그렇게도 안정을 바랐는지 그 원인을 돌아보면 크게 2가지였던 것 같다.
외부적으로는 시대적 상황, 내부적으로는 나의 성장배경이다.
먼저 시대적 상황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라는 정글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진 즈음에도, 지금 언론에
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기업에 들어가면 언제든지 회사가 망할
수도 있고, 내가 짤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사회초년생의 열정과 패기를 억누르고도 남을
만큼 두렵게 느껴졌다. 이와 같은 흐름이 수많은 청년들을 노량진으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고 나 역시도 그 대세
에 따랐다.
두 번째로는 나의 개인적인 성장배경이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엄마는 혼자서 사업을 하셨다. 여
자 혼자서, 그것도 건설업과 관련된 사업을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수년간 해 오시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경기
의 흐름에 따라 사업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우리 집안은 그에 따라 출렁거렸다. 그 때부터 내 뼛속까지 경제적 안
정은 정신적 안정을 담보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던 것 같다. 전자가 해결되면 후자는 당연히 해결될 거라
는 단순한 계산이었다.
그렇게 나의 직장 항해기가 시작되었다. 자아실현과 재미, 돈, 심리적 안정, 이 모든 걸 다 가져보겠다고 한 어
리석은 이상주의자의 항해였다. NGO, 지방공공기관, 외국계 금융회사, 중앙공공기관 등을 떠돌아다녔다. 그 과
정을 통해서 나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다행히 나의 업무적 지향점과 최소한의 급여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고용형태는 정규직인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이
상향처럼 추구해왔던 곳과 가장 비슷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분명 내 계산대로라면 나는 충분한 만족감과 안정을 느끼며 내 일상을 꾸
려나가야 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있었다. 이는 애인, 친구와의 단발성 데이트로 해
소될만한 것이 아니었다. 허전함은 종종 불안함으로 변해갔고,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 정규직으로 일을
한다고 해서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불안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한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되었다.
“불안은 감정 중에 가장 강력한 감정입니다. 불안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또한 사회적인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합니
다.” 신경인류학자 박학선의 말이다. 원시시대부터 포식자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불안을 느끼며 경계
를 늦추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 생존에 더 유리했다. 과거의 포식자가 현대에 와서는 형태를 알 수 없는 자본주의
로 바뀌었다는 점만 빼면 여전히 위협을 받는 상황이기에 불안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즉,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
로 긴 시간 이어져온 유전자에 따라 우리의 불안은 당연한 상태인 것이다.
내과 의사 한스 셀리에는 “우리를 죽이는 것은 스트레스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라고 말
했다. 불안은 모두에게 공통적이고, 이를 어떻게 건강하게 내가 해석하는지에 따라 그것의 색깔이 달라질 수 있
다는 말이다. 고로 그 해석의 첫 번째 단계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도 없고 항상 옳을 수도 없다는
점을 인정하려한다.
결국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 가로 귀결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
서 남들이 정해놓은 ‘정상’의 기준을 충족시키려다보니, 불안의 원인을 모른 채 계속 눈치만 보면서 경주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불안이 증폭되고 높게 유지된다면, 우리는 먼저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리
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누구이고, 어느 좌표에 서있고,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정규직만 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글. 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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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야기 04
강민지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계단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내며 이웃과 아파트 공동체를 바라
보는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마을에서 내 집을 이어주는 골목, 아파트의 계단]
아파트에는 라인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계단이 있
습니다. 보통 20층 내외의 40세대 정도를 하나의 계
단이 이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움직
이는 대신, 원하는 높이까지 옮겨주는 작은 상자인 엘
리베이터 때문에 사실상 이용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집으로 돌아오거나 밖으로 나갈 때 계단을 이용하는
횟수는 1년 중 손에 꼽는 정도입니다.
아파트의 계단은 과거 마을과 동네라 지칭되는 범위
에서 많은 집들을 이어주는 골목과 같습니다. 다만 골
목이 바깥공간이면서 수평적이라는 점과 달리, 현재
아파트의 계단은 수직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수평적인 동선보다 수직적인 계단은 중력의 힘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사람의 체력을 소모시킵니다. 아마
엘리베이터라는 기계 발명품이 없었다면, 5층 이상의
건물들이 현대 사회의 개수만큼 늘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16층을 오르내리며 생긴 변화]
제가 살고 있는 현대 아파트는 단지 내에서도 특이
하게 오직 한 라인만 있습니다. 평소에는 불편함을 모
르고 살아왔는데, 2017년 여름, 노후화된 엘리베이터
를 통째로 바꾸는 계획이 잡히면서 아차 싶었습니다.
16층에서 살고 있던 저는 공사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매일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른 아파트라
면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옆 라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걸어 내
려갔을 텐데, 이 현대 아파트의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계단을 오
르내리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
층부터 16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탄다면 1분 후 바로 도착할 수 있지만 계
단으로 오르내린다면 10분 정도 걸린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
베이터가 수리되는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아파트 현관을 지나 집까지 도착
할 때까지 무려 10배나 긴 지루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소 마
주칠 일이 없던 이웃들과 좀 더 자주 마주치고 그들은 어떤 사람인지 관
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이 강아지를 키우는지, 몇 층에 사시는
분이 아이와 함께 사는지, 몇 층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살아 계단을 오르내
리며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지 말입니다.
이사 온 지 만 4년이 되었는데, 엘리베이터 공사 덕분에, 아직도 이웃을
잘 모르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엘리베이터 공사 덕분에 계단을 오르
내리며 이웃들과 좀 더 오래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 있어 내심 감사한 마
음도 들었습니다.
글. 강민지
아파트 계단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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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아파트에는 청년회가 없을까?]
아파트는 수직적인 주거공간이며 단지의 1층만을 공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골목과
수평적인 배치의 마을에 비해, 소통이 단절되고 이웃과의 교류가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공터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엄마의 부름에 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골목을 지나 집
에 도착합니다. 가는 길에 골목에 놓인 평상에 앉아계신 이웃 아주머니와 인사도 하고, 문구
점에 기웃거리며 오늘은 100원으로 무슨 불량식품을 사먹을지 고민합니다. 응답하라 1994
에서도 대학생 친구들이 골목 계단에 앉아 사랑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평상에 앉
아 동네 친구들과 먹을 것을 나눠먹고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동네 친구를 만들기 어려워졌습니다. 잦은 이사
와 대학 진학과 더불어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들이 사라지고 나면, 새로운 또래 친
구들을 만날 기회가 적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반상회랑 더불어 부녀회, 노인회, 육아 공동
체에 속하기 어려워, 점차 아파트 단지의 공동체에서 소외됩니다.
[어떻게 하면 어릴때의 반상회가 다시 생겨날 수 있을까?]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청년들은 아파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며 자랐습니다. 청년들의
부모님들은 골목에서 누린 정을 알고, 아파트에서 반상회를 열어 그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반장을 돌아가며 맡아 자신의 집 거실에서 반상회를 진행했고, 집에 홀로 남기 어려운 우리들
은 안방에 들어가 함께 놀곤 했습니다. 매달 한 번씩, 처음에는 낯설더라도 점차 익숙해져, 반
상회 친구들과 함께 과일도 먹고 퍼즐을 맞추거나 딱지치기를 하며, 엄마가 반상회를 끝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며, 아파트의 반상회는 골목의 정을 다 담아
내지 못했고, 결국 많은 반상회들이 사라졌습니다.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내 집의
일부를 드러내기가 점차 꺼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파트의 주민들이 전부 모이
는 반상회의 의미가 약해졌습니다.
반상회를 통해 이웃들을 알고 지내왔다면, 저번 반상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나, 반상회에 같
이 손잡고 따라왔던 딸의 이야기를 꺼내며 안부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 주민들이 이사
를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한 라인의 새로운 가족으로 들어오면서 점차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해
지고, 그렇게 아파트의 소통은 악화됩니다. 그렇게 현대 아파트로 새로 이사 온 우리 가족은 이
방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따뜻한 사회이기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인사를 건네거나 현관을 지나며
눈인사를 하며 먼저 다가가면, 이웃들도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줍니다. 저는 아파트 단지의,
혹은 적어도 같은 아파트 동의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가 그들을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다고 생
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친구와 나누는 중 재미난 사례를 전해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자신도 이웃 간의
소통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엘리베이터에 좋은 글귀를 쓴 포스트잇을 써서 인사를 건넸다
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포스트잇에 댓글로 호
응을 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현대 아파트에서는 어떻게 해야 이웃과 작은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포스트잇으로 이웃과 좀 더 가까워진 사례를 들으며, 현대 아파트
의 이웃과 따뜻한 정이 있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수박 한통을 사면 둘이서 다 먹지 못해
버리기 일상인데, 이를 나눠 먹으며 감사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되고 싶어 먼저 다가가는
모습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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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일터 이야기
둘!
김민지 멘토
前 금융감독원 공보실 아나운서. 지
금은 퇴사 후 사람들로부터 각자의
스토리와 스피치, 시너지를 이끌어
내 주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 활동을
준비 중에 있다.
8월의 멘토 인터뷰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께요. 안녕하세요 저
는 금융감독원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민지입
니다. 3년 전 방송홍보가 아예 없던 금융감독원
에 와서 방송홍보를 개척하는 일부터 시작을 했
어요. 그리고 지금은 방송홍보를 잘 하는 기관, 다
른 기관이 롤 모델로 삼을 만큼의 기관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발전시켜왔고요. 전에는 전주 MBC
에서 아나운서 겸 라디오PD를 했었고 그 전에는
하나금융투자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았었
어요. 생각해보면 걸어온 길이 꾸준히 홍보 마케
팅, 스토리 기획, 진행까지 다 연결해보려는 과정
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금융감독원 퇴사를 하고
난 후 하고 싶은 일도 개개인의 스토리와 스피치,
그리고 그 시너지를 끌어내도록 도와주는 일 입
니다.
퇴사 이후에 그럼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해서 들어
가실 생각은 없으신 거죠? 네, 이곳이 아닌 다른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고 프리랜
서나 사업자의 형태로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사
람마다 성향이 다 다르고 조직과 맞는 사람이 있
고 안 맞는 사람이 있잖아요. 여러 조직을 경험 해
보니 저는 제 재능이나 역할을 조직 안에 가두기
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직 밖에서 더 다양
한 사람들과의 일을 발전시키고 싶어요.
금융감독원 이전에 근무하셨던 곳은 어디인가
요? 대학시절에 동아 일보 인턴기자를 4개월 정
도 했었어요. 그 이후에 졸업과 동시에 증권회사
에 직원으로 입사를 했고요. 오랫동안 동경했던
방송이라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증권을 그만두고
준비를 했었고 그 뒤로 한국경제TV 앵커, KBS 교
양국 리포터,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에 전주 MBC
공채 아나운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언론이나 아나운서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
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7년 간 조직에서 일을 해
왔으니 이제는 경계 없이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방송이나 언론은 (물론 그렇지 않다고 보는 분도
계시겠지만) 조직을 위한 일보다 시청자나 청취
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
하면서 일하거든요. 그런 게 더 맞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관을 다닐 때는 A가 맞아도 조
직을 위해 B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일이 많다 보
니,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동기부여가 부족했
던 거겠죠?
그럼 지금 하셨던 일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직
무를 꼽아 주시겠어요? 지금 금융감독원이랑 전
주 MBC에요. 공통점은, 제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기획자인 동시에 진행자였기 때문에 기획자로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처음부터 끝
까지 전 과정을 진행자로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전주MBC 때도 PD와 아나운서를 같이
하다 보니까 방송사 캠페인 기획, 캐치프레이즈
를 짓는 일부터 시작해서, 진행하고 시청자와 소
통하는 것까지 전 과정을 제가 할 수 있는 거잖아
요. 이 방송을 왜 해야 하는지 누굴 위해서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같이 생각하면서 전 과정을
이해하며 일한다는 데서 동기부여도 많이 받았고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또 그런 맥락의서
의 업무를 맡아 할 사람을 금융감독원에서 채용
하기를 원했기에 저와 잘 맞아 이직을 할 수 있었
고요. 금융감독원의 공채직원 분들은 말 그대로
금융감독 업무의 전문가이고, 그 외의 홍보나 기
획 면에서의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 와서 한 일이 이 어려운 보도자료와 전문적
인 정보를 어떻게 하면 국민눈높이에서 더 쉽게
풀어내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원고를 쓰
고, 또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고 이런 일들이거
든요. 그 전 과정을 리드하는 역할에 몰입할 수 있
었어요. 청년 분들도 본인에게 어느 쪽이 맞는지
하나씩 찾아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자신이 주어
진 역할에 집중하는 체질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의식을 갖고 리드 혹은 참여할 때 동기부여
를 받는 편인지. 사실 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기
획하고 진행하는 일이 누군가는 안 맞을 수도 있
어요.
이런 일이 잘 맞는 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셨나
요? 증권사 나오면서 알았던 것 같아요. 그전에
신문사에서 인턴기자를 할 때는 워낙 인력이 없
어서 발제, 기획, 취재, 기사 작성까지 스스로 콘
텐츠를 만들어 내보내는 일이 많았어요. 너무 보
람되고 재미있게 일했었죠. 전 과정에 키를 쥐고
끌고 가는 건데. 증권회사의 인사조직 커뮤니케
이션 직무로 들어가보니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
적이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던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하셨던 것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프
로젝트는요? 금융감독원에 와서 했던 프로젝트
인데 소셜 라이브라는, 유튜브나 페북으로 방송
하는 형태의 콘텐츠가 금융감독원에 원래 없었어
요. 처음에 그런 것들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동료
들이 반대를 했었죠. 일단 우리 선배 세대들은 영
상적인 화려함에 익숙하신데, 소셜 라이브는 ‘라
이브’라는 특성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편집이 안
되거든요. 즉 녹화하고 잘 편집한 콘텐츠에 비해
영상미가 부족할 수 있죠. 때문에 어딘가 부족한
콘텐츠로 느끼는 분들이 계셨죠. 그리고 라이브,
생방송을 하는 거 자체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
각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
를 설득하였고, 마침 당시 함께 일했던 팀장님께
서도 라이브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셔서 기획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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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회사에서 일하면서 힘드셨던 점은요? 내가
원해서 왔느냐 부모님이 원해서 왔느냐 인 것 같
아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빨리 취직해서 돈
을 벌기를 원하셨거든요. 아나운서나 기자 쪽은
준비 기간이 너무 길고 된다는 보장도 잘 안되니
되는 쪽으로 빨리 가라는 입장이셨어요. 마침 경
영학과를 나왔고 이제 저희 학교로 추천 연락이
와서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어쩌면 쉬운 길을 선
택했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들어가서 일을 해 보
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어차피 내가 살아야
할 내 인생이고, 내가 살고 싶은 방향대로 첫 단추
도 잘 끼워야 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도 증권회사에서 일하셨던 경력이 도움이
됐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제 나와서 하
고 싶은 일이 사업계획 발표컨설팅이나 면접보시
는 분들은 면접 컨설팅을 많이 해드리고 싶은데
요. 당시에 있었던 팀이 경영 팀이어서 인사조직,
커뮤니케이션 담당이었어요. HR업무를 한 팀에
서 함께 했다 보니까 면접 컨설팅을 하는데 있어
서 기업의 입장과 인재의 입장을 연결하는 눈을
가질 수 있는 게 도움이 많이 돼요. 결국에는 이직
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한 게 시너지를 내
게 된 거죠.
같은 길을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가 금융
감독원 대학생 기자단들에게 많이 해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에너지를 뺏기는 지, 에너지를 얻는 지 파악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요.
평생 할 일이라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금융
공기업, 공공기관, 공기업 많이 오고 싶어 하는데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좋아
보이고, 인스타그램 같은 거 보니까 다들 직원들이 행복해 보이더라 그런 이
야기들을 하시거든요.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일 자체를 들여다 봤으면 좋겠
어요. 이 업무를 잘 들여다보고 본인이 그 일을 할 때 힘을 얻을 일인지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 힘을 얻는 일들을 해온 것 같거든요.
직장생활 이라는 게 9 to 6라는 골든 타임 동안 일을 하면서 스스로 힘들어야
하는데 그 일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인가, 그리고 일을 함에 있어 중요한 가치
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기획하는 일,
마케팅 하는 일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게 아무리 소위 말해서 업무가 과중 되
어도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으면 그 일에서 에너지를 얻으시더라고요. 자기자
신이 어떤 일을 할 때 에너지를 얻고 에너지를 뺏기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퇴사 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그 동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기획부터 진행까지 한 호흡으로 보는 것들을
많이 했으니 누군가에게 그 사람만의 콘텐츠를 스토리 기획부터 전달하는 장
치까지 전부 케어 해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과
정의 시너지를 내는 일을 하고 싶은데 대상은 좀 더 열려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분들은 투자를 위한 발표를 많이 하는데 5
분~10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두꺼운 사업 소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막막해하시잖아요. 그리고 CEO로서 어떻게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와
설득력 있는 스피치를 구축할 수 있을지를 제가 전체적으로 컨설팅을 해 드리
고 싶어요.
실제로 그런 컨설팅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공채 아나운서가 되기 전
부터 계속 했었어요. 사람이 변하는 게 보이니까 저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정말 명확하게 느껴졌죠.
제가 한국 경제 TV 프리랜서 앵커였을 때가 처음으로 컨설팅을 해 보았을 때
인데, 그 때 봐드렸던 분께서 모 은행의 과장님 이셨어요. 과장 정도 되면 중간
관리자다 보니까 윗선에 새로운 사업에 대한 발표가 굉장히 일상적이라고 해
요. 그런데 그 분은 발표불안이 굉장히 심하셔서 발표할 때 얼굴이 빨개지고
많이 떠시고 그런 고민이 있으셨거든요. 그 분을 트레이닝 할 때 했던 게 기본
적으로 스토리를 핵심으로 머릿속에 구조를 짜는 연습. 예를 들어서 칼럼을 하
나 드리고 시간 내에 칼럼 안에서 핵심 단어를 추려서 구조화 하는 연습을 하
는 거예요. 기본적인 핵심키워드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구조화 연습
을 많이 해 드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활자 매체로 공부하면 말공부가 아
만들어보라고 적극 기회를 주셨어요. 그리고 임
원분들을 설득할 기회도 주셨고요. 처음에는 금
융감독원 내부에서도 왜 라이브 콘텐츠를 해야
하는지 반신반의 하셨지만 지금은 다른 기관에서
도 ‘금감원처럼 해야 한다’고 어떻게 하는지 문의
해오고요. 따라 만들 정도로 공공기관과 국민 간
의 소통창구로 잘 자리 잡았어요. 그런 게 재미있
었어요. 불모지였던 곳을 개척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설득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팀원들과 함께 무에서 유를 창조해가는 것이 제
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관에서 하는 정책을 활용하시거나 한 적은
있으신가요? 대학교 때 방학 때 마다 있는 서울
시 대학생 인턴에 참여를 했었어요. 그리고 서울
시 일자리카페에서 공간 대여 해 주는 걸 이직할
때도 많이 이용했었고요. 그 외에는 나라일터라
는 포털 홈페이지에서 채용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던 것도 참 좋았어요. 그리고 하나 더 찾자면 제
가 금감원을 2년 계약으로 들어왔는데 저희 역할
이 지금 저희 팀에서 꼭 필요하고 핵심이거든요.
원래 정부였다면 2년, 2년 이렇게 계속 계약직으
로 있었을 텐데 문재인 정부 들어오면서 정규직
전환 평가를 하게 되었고 정규직 전환이 됐어요.
저처럼 특수한 경력직으로 들어오신 많은 분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게 되었죠.
25
24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의
2030 라이프매거진 프로젝트 월간지,
<2030 Lifezine> 9월호의 원고를 모집합니다!
고용노동부 청년센터의 2030 라이프매거진 프로젝
트는 서울특별시, 특히 서서권역에 오고가는 청년들
의 각종 고민, 취업과 창업, 직장생활, 학교생활 모든
영역에서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자 합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의 경험이 녹아있
는 글 하나하나가 삶을 헤쳐 나가는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2030 Lifezine>에 청년 여러분의 생
생한 이야기들을 보내주세요!
원고제출 및 문의 : 
tomato@youthzone3.kr / 02.2646.2030
니라 글공부거든요. 이걸 빨리 구조화해서 말로 전개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시각화해
서 말로 뱉어내는 연습까지 해야 완전해 지는 거죠. 정말 워낙 떨던 분이시라 발표자가 가져야 할 마인
드 셋에 관한 수업도 자주 했었고, 또 몸이라는 악기가 안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몸이라는 악기 자
체의 기본기를 잡는 것까지 봐 드렸었어요. 다행이 그 뒤로 발표도 잘하게 되셨고 승진도 하시면서 저
스스로도 누군가를 처음 가르쳐 보는 경험에 감명을 많이 받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빨리 그런 일을
다시 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전주 MBC에서 그 역량을 키울 수 있었어요. 시민들이 직접 DJ가 되어보는 프로그
램을 만들었거든요. ‘LP 창고’ 라고. 매주 주말 새로운 시민이 와서 내 인생의 음악, 영화음악 이런걸 소
개하는 프로그램을 했었거든요. 그 분들이 DJ가 되고 제가 라디오PD인데, 더 잘 보이는 거예요. 이 부
분을 이렇게 고치면 정말 완벽한 스피치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은 지점들. 그래서 아나운서이자 PD의 입
장에서 그분들께 코칭과 트레이닝을 매일 방송 전에 해드린 거죠. 아주 쉬운 예로 “사랑하는 따님에게
말하는 듯이 진짜 ‘말’을 해보세요.”라든가 “말이 지금은 빠르니 키워드를 하나하나 그려내듯이 천천히
음미하며 말 해보세요.”처럼요. 그럼 처음 오셨을 때의 진행과 마지막의 진행이 완전히 달라요. 아마추
어에서 프로가 된 모습의 극과 극이에요. 한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콘텐츠를 끌어내는 일을 하면서 사
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멘토님께서 정말 이직, 취직 준비를 하셨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점을 하나만 말해주
세요! 포괄적으로 말씀 드리면 그 직종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굉장히 낱낱이 파헤쳐야 해요. 그 하나
하나를 다 정리를 해서 그 직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하구요. 제가 정
말 그렇게 했던 게 채용공고만 볼 게 아니라 이 채용을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 누군가 퇴사를 해
서 하는 것인지,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해서 하는 것인지. 만약에 누가 퇴사를 해서 채용을
하는 거라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요소가 나에게 있음을 어필해야 하는 거고,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
를 진행해야 하는 거라면 그 프로젝트에서 필수적으로 요하는 역량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되
는 거고요. 그래서 채용의 취지, 채용공고의 이면을 알면 더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어요. 관련 선배에
게 물어보거나 인사팀에 연락하거나 채용공고의 문의 연락처로 연락을 하시거나. 아니면 채용공고를
잘 들여다보면 그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의 역량이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 역량이 있다는 점을 그 채
용자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어필을 해야 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친구는 은행에 채용지원을 했는데 자
신의 적극성을 어필하기 위해서 해외 건축 봉사활동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은행
실무자의 입장에서 그 친구의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들렸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면접관, 채용담당자가
매일 고민하는 회사의 관심사와 눈높이를 맞추어서 자신의 역량을 어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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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 2. 1 <2030 Lifezine>은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온 청년 들의 고민이며, 때로는 찡그리기도 때로는 실컷 웃기 도 한 경험들을 녹여낸 이야기 모음집입니다.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는 이 하나하 나의 목소리가 널리 퍼져 더 많은 청년들이 이 사회 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삶의 어려움은 함께 풀어나갈 수 있음을 느끼며 힘을 얻길 바랍니다. 발행일 | 2019년 8월 15일 발행인 | 문유진 무중력지대 양천 센터장 발행처 | 서울특별시 청년공간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 편집 | 김범신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 파트장 주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오목로 359 대표전화 | 02-2646-2030 FAX | 02-2646-2030 홈페이지 | youthzone.kr 디자인 | 로드사이드 피크닉 본 매거진의 저작권은 무중력지대 양천에 있습니다.
  • 3. 2 3 내 첫 면접은 2017년 5월에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디자인 직무를 지 원한 나는 5개월가량 학원을 다니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그 뒤 금 천구에 위치한 신생회사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다. 여느 회사와 같이 자기 들은 어떤 회사이며, 무슨 일을 하고, 만약 합격하게 된다면 어떤 직무를 맡게 될지 간략하게 설명을 하더니, 급작스럽게 연봉협상을 하게 되었다. 급여는 연봉 2000정도를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나는 처음으로 면접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내 몸값이 얼만지 또 얼마나 불러야 하는지 몰랐다. 일단은 어리바리 넘어갔으나 갑자기 실무자가 야근이 잦다는 이 야기를 했다. 야근을 하는 이유는 개인 역량의 부족이므로, 야근비와 택시 비는 지급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잠자코 있다가, 회사가 운영되는 방식을 들었다. 대표님이 수주를 따오고, 나와 실무자님이 업무를 해치우며, 한 주에 2일에서 3일 은 현장에서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금요일에 딴 수주를 주말에 해 치우는 경우는 실무자의 역량 문제가 아닌데도, 당연하게도 역량 문제이 기 때문에 특근비가 없다고 했다. 우리 같은 디자이너들은 포트폴리오가 중요하다며, 일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쌓는 좋은 회사임을 강조했다. 그 이 후는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는지는 잘 기억안나지만, 다음날 나에 게 우리 회사와는 맞지 않으니 다른 회사를 찾으라는 전화를 받았다. 아마 나의 꼴통기운을 대화하면서 느끼신 것 같았다. 회사에 따라 야근비와 특 근비는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고도 생각이 들지만 금천구의 회사 같은 방 식이라면 야근비와 특근비를 책정해 주는 게 맞는 것 같다. 일정이 유동적 인 만큼, 이에 대한 보상 없이 24시간 풀 대기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후 다른 회사에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고 다시 면접을 보게 되었다. 구로에 있는 회사였는데 대표와 이사와 실무자, 이렇게 3대1 면접이었다. 차유나 강서구와 영등포구에서 취업을 준비 하는 청년. 구직과정을 몸소 겪으며 느낀 점을 통해 다른 청년이 도움을 받고 공감 하길 바라며 글을 써내려간다. 청년 이야기 01 많은 취준생들이 취업 준비를 하면서 혹은 취업 준비를 끝내고 면접을 많이 보러 다닐 것이다.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래서 나는 면접을 하면서 만난 다양한 사람 들에 대한 에세이를 써보려고 한다. 시간의 순서와 내가 면접 본 모든 곳에 대해 쓰지는 않지만, 많은 분 이 공감을 하며, 서로 이런 회사는 들어가지 말아야지 하는 참고로 삼 았으면 좋겠다. 물론 구체적인 회사이름과 정보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점은 양해 부탁드린다. 글. 차유나 취준 생활의 꽃은 면접인가
  • 4. 4 5 면접 분위기는 비교적 편안한 편이었고, 회사의 포트폴리오가 훌륭한 편이라 기대를 많 이 했다. 이력서를 보면서 짧은 머리를 한 나의 외모를 지적하고, 인서울을 나오지 못한 학벌을 꼬집으면서, 왜 더 나은 대학으로 진학하지 않았는지 나무랐다. 그래도 포트폴리 오도 좋은 회사이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끝까지 밝게 웃으면서 면접을 진행 하였다. 그러다가 연차가 3년이 안되었는데 어떻게 구로 회사를 지원하게 되었냐는 질문 에 대답하였다. 무난한 대답. ‘여기 회사 작업을 좋아하고 배울 것이 많기 때문에 상향 지 원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개인적으로 너무 충격적이었다. 대표가 말하기를 나의 포트폴리오가 특이해서 흥미삼아 불러봤다는 것이었다. 물론 공고 에는 3년차라고는 나왔지만, 그 위에는 년 수 무관이라고 쓰여 있기도 하고 공고가 정확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볼만 하다고 지원한 것인데, 단순히 흥미삼아 사람을 불렀다고 말 씀하셔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다. 어차피 뽑을 인력도 아닌데 외모와 학벌을 가지고 흰소 리들을 들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해서 ‘그럼 제 경력의 인력을 뽑으실 생각은 있으 신가요?’라고 묻자 대표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주섬주섬 준비해 갔던 수십 장의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면서 나가는 길이 참 길었다. 대부분의 회사가 흥미로운 포트폴리오 때문에 사람을 괜히 불러볼 수도 있다고 생각은 든다. 이런 것으로 가타부타 따지고 들고 싶진 않다. 짧게나마 회사생활을 해보면서 나도 이렇게 안 뽑을 인력을 내 의도랑 다르게 불러 본적도 있고, 여의치 않게 사람을 떠보게 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나 말고도 많은 취 준생들이 이런 상황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마음이 정말 아프 고, 준비한 시간들이 더 힘들게 다가왔을 것이다. 또 사람을 마주하는 것이 익숙지 않거 나 힘든 사람일수록 면접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다 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경험이 충분히 상처받을 만하고 무기력한 기분을 맛볼만한 일이라고 생각하자 는 것이다. 그냥 1시간 놀고 오는 것이 아니라 1시간을 응축해서 나를 보여주고 표현하고 나온 시간 아닌가. 스스로에게 충분히 힘들만하다고 인정해 주고 싶다. 꽤 최근에 면접을 본 곳이 있다. 스타트업 회사이고 정말 신생회사였다. 본사는 용산이지만 사정 때문에 출근은 노원으로 해야 하고 공장은 충북에 있는 곳이 었다. 아직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초보들이 모인 아 마추어 회사 같았다. 나는 3시 면접 시간에 5분 먼저 도착하여 면접을 기다렸다. 대부분의 회사는 면접을 보면 10분 정도는 늦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 는 데 35분쯤 지나서야 대표가 도착하였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서야 대표와 2명의 이사와 3대1 면접을 보게 되었다. 대표와 회사에 대한 정보를 듣고 난 뒤, 나를 PR했는 데, 경력을 보고 내 업무 이외의 웹디자인 업무도 추가 로 해달라고 요청 받았다. 나는 승낙을 했고, 이어 연 봉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원래 공고에는 2100이라고 했지만 경력과 직무 외의 업무가 추가되었기 때문에 원래 연봉보다 적게 회사에 입사하고 싶지 않으니, 연 봉을 협상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랬 더니 대표는 내가 실적이 없고 능력을 믿을 수 없으니 연봉을 높일 수 없다고 했다. 요즘 회사들이 포트폴리 오도 안 믿고 경력도 안 믿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참 뭐라 말할 수 없이 황당했다. 대표는 말을 온전히 못했다. 처음에는 회사일이 바쁘지 않다고 했다가, 막 학원 수료한 애들은 쓸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연봉은 얼마이고, 복지는 어떠했고 식대 및 복지 비용이 추가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연봉도 사실 적 은 돈은 아니지만, 이 회사는 복지라고는 4대 보험뿐 인 데다가 추가 업무가 있는 상황에서, 왜 연봉을 깎아 서 이 회사에 들어가야 하는지 되물었다. 하지만 이상 한 이야기만 하는 대표와의 대담이 힘들어서 그럼 학 생을 알바로 쓰시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왔다. 이렇게 3가지 회사에서 격은 면접 일화를 풀어보았 다. 그냥 나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푸념한 것 같아서 어 떤 분은 읽는 내내 힘드셨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하다. 사실 나도 좋 은 회사를 구별하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최악의 회사 는 모두들 피했으면 좋겠다. 사람의 노동을 사용한다 는 것을 회사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 다. 적어도 경력이 있으신 분들과는 어느 정도 연봉 협 상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시키는 일은 많은데 무작정 연봉을 줄 수 없다고 대화조차 안 된다면, 어떻게 그런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내가 싸가지 없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중에 연봉을 올려줄 수 있다느 니, 4대 보험이면 복지가 좋다는 말을 믿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봉은 떨어지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쉽지 않 다. 그 누구도 연봉을 깎아서 입사하는 일은 없기를 바 란다. 앞으로 4차 산업이니 AI니 인공지능 같은 기술 이 발전하여 인력이 축소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은 한참 인력을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 모두 인간 대접은 받으면서 돈 벌기를 바라며 글 을 줄인다.
  • 5. 6 7 청년 이야기 02 오지수 한동대학교 재학. 양천구 거주. 지금 자신이 겪는 시간들을 토해내 며 내 경험이 나의 것만이 아님을 밝 히고, 나누고자 한다. 청년들의 삶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문제로 대학 등록금부터 시작해 보자. 어떤 이는 집에서 지원을 받고, 어떤 이는 학자금을 대출 받고, 그것도 부족해 아르바이트 를 병행한다. 결국 돈의 유무가 자신들의 출발선을 결정한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되어야만 꿈도 좇을 수 있다는 걸 10대 때는 들어본 적이 없다. ‘공부 열심 히 하고 좋은 대학 가면 된다’가 불문율이었고 그에 맞춰 나는 학원 다니며 학교 공부와 수능을 충실히 준비해야 했다. 난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학자금은 대출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었다. 부모님 회사에서 학자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 없이 그냥 내 용돈 벌이로 학교를 다니면 되었다. 그런데 이게 안 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왜 이런 문제에 시달려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4년제를 다니면 최소 8학기 혹은 그 이상의 등록금을 내야 한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쌓 이는 건 빚과 이자. 정부는 정책으로 이자를 줄여주는데, 왜 학교는 자발적으로 학비를 내려주지 않는 걸까? 과마다 다르지만 인문대는 그나마 저렴한 편이다. 우리는 한 학기마다 300-400을 내고 학교에 다니며, 내가 원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기 위해 확률에 목숨을 건다. 교수법이 최적 화된 교수님, 학점을 정말 잘 주는 교수님, 내가 원하는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싶은 게 학생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수업은 한정적이며, 당연하게도 수강 신청은 긴장의 연속이다. 왜 우리는 돈을 내는 데도 원하는 수업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는 걸까? 왜 학교는 학교 구성원을 위해 발전하지 않는 걸까? 왜 학교는 학생들에게 해주는 게 없어 보일까? 학교는 왜 우리에게 좋은 직장을 가라 고 등 떠미는 걸까? 대학의 목적은 변질됐다. 사전에서 대학은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술 이론과 응용 방법을 교수하고 연구하며, 지도적 인격을 도야’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 의미에 맞춰서 운영되고 있을까? 하나하나 뜯어보면 썩 그래 보이진 않는다. 지금 당장 쓸모없어 보이는 학문일지라도 잠 재적인 능력과 가능성을 가늠해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인원이 없는 과, 취업률이 낮은 과는 금세 폐 과 되거나 통폐합된다. 인구수 대비로 맞춰서 변화를 꾀한다고는 하지만 그건 너무 핑계 같다. 그 렇게 새로 생겨나는 과를 보면 이름은 거창하지만 속을 보면 결국 취업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학 은 취업 사관학교로 변질되었다. 그걸 고등학생들은 알고 있을까? 알든 모르든, 대부분 좋은 대 학을 가려고 사교육에 기꺼이 돈을 바친다. 막상 들어오면 후회할 게 뻔해도, 다수가 가는 길을 놓치지 못하겠다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대학은 학비를 내리지 못하고 정부는 왜 그런 학교를 방치하는 걸까? 왜 정부가 내 놓은 정책은 수박 겉핥기 식일 뿐일까? 청년들이 정말로 원하는 건 학자금 이자 감소가 아닌 학 자금 없이, 돈 걱정 없이 학교생활을 마치는 것이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조건적인 구직활 동이 아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하나 더, 주거생활. 부모님과 멀어져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도 있다. 기숙사를 살거나 자 취생활을 하거나 독립을 한다. 학생들을 위해 기숙사 증설을 반대하는 임대업자들의 시위를 꽤 볼 수 있다. 그들은 상권을 위협한다며 이런저런 이유들을 대지만 그건 결국 그들의 경제권이 위 협받기 때문이다. 학생은 그들에게 당연하게 돈을 바치는 사람처럼 보이나 보다. 자취방은 열악 하고 좁고 비싸다. 상인들의 담합으로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정부가 내놓은 행복주택으로는 여전히 많은 청년들의 주거를 책임질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아닌 이미 문제로 번진 상황 글. 오지수 우 리 의 이 야 기 , 나 의 이 야 기
  • 6. 9 8 속에서 해결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자신의 가정에서 방세를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면 청년들은 돈과 시간 싸움을 해야 한다. 그들에게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하라고 하는 것 은 크나큰 사치다. 일자리는 많다고 하는데 왜 청년 실업은 많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대 표적으로 청년들이 구직활동에서 원하는 제일 큰 혜택은 ‘워라밸’이다. 일과 자신의 여가 시간이 여유 있게 배분되어 자신을 계발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 꽤나 단순한 바람인데도 실제로는 잘 허 용되지 않는다. 야근이 당연한 분위기 속에서 워라밸을 외칠 용감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야근을 하는 이유는 2-3 사람이 할 일을 1인이 혼자서 다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독일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이 결근했을 시 그 일을 메꾸어 줄 인력이 충분하게끔 운영하기 때문에 야근이 필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스펙을 요구 당한다. 요구하는 스펙을 쌓기 위해 계속해서 뛰어다닌다. 서포터 즈, 인턴 등 많은 대외활동을 하면서 이력서에 한 줄 채우고 실제 ‘나’와는 다른 또 다른 ‘나’를 창 조하면서까지 자기소개를 작성한다. ‘이거 잘못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해도 ‘모두가 그렇게 하 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하며 우리는 걸음을 옮긴다. 길을 가는 그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절벽일지 아니면 평야일지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모두가 가니까 가는 건 위험해 보인다. 이러한 청년 실업 문제는 청년 개개인의 자질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다. 여성의 경력 단절은 정말 여성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기업의 지나친 야근 문화는 사원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그렇게 비롯된 인구 부족 문제는 국가 구성원 개개인의 문제인가? 아니다. 이 모든 문제는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개인의 문제가 다수의 문제로 번 진다면 그건 더 이상 개인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해결은 정부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아직까지 나오는 대책은 뚜렷한 대책이 되는 것 같지 않다. 과도기, 적당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애매한. 그 시기에 접어든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다들 잘 해내는데 나만 뒤처져 있다는 생각에 마음 졸이고 불안해하고, 자신을 더 채찍질하고 있지는 않을까? 무엇이 맞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은 채 그 저 부딪혀 보라고 얘기하거나, 아니면 꿈을 좇아가라고 말하거나. 꿈을 좇는 것도 결국엔 경제적 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걸까? 그 모든 열악한 조건을 이겨내며 청년들 모두가 책을 쓸 만큼 대단해지기를 바라는 걸까? 그렇게 쫓아가다가 결국에 지쳐서 정신적으로 휴식이 필요해도 사회는 정신적인 아픔을 용인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숨어서 정신 질환을 해 결해야 한다. 그 상황에서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심리 상담 관련 직종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시 스템 속에서 보호받고 싶다는 마음은 청년들의 욕심인 걸까? 나는 3수로 겨우 학교에 들어갔다. 전공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입시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학교생활을 시작하니 여기저기서 돈을 요구했다. 국가 장학금을 신청하려고 해도 부모님 직장이 학비를 지원해준다는 이유로 어떤 혜택도 넘볼 수 없었다. 3자녀 가정 혜택도 장녀이기 때문에 받을 수 없었다. 중산층의 애매함 때문 에 혜택은커녕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지원 공고를 보더라도 받을 수 있겠다는 희망보다는 ‘난 해당 안 돼.’라는 빠른 포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말이 좋아 병행이지 거의 아르 바이트에 끌려 다녔다.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한 날이 고되면 그 다음날은 자연스럽게 학교를 가지 않고 성적표 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성적은 좋을 리 없었다. 우선순위가 잘못되었다 싶어서 바로 아르바이트를 줄였다. 대신 대외활동으로 눈길을 돌렸다. 관심 있는 분야 에서 하는 활동들은 다 지원했지만 이제 겨우 학교생활을 막 시작한 나는 그들이 요구하는 기준에는 턱없이 부 족했기에 면접의 문턱도 가보지 못하고 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교내 프로그램 하나 진심을 담아 신청해서 합격했다. 좋은 교류, 좋은 관계, 성장을 꿈꾸며 영어 실력 또한 엄청 높여서 돌아와야지 하고 다짐했지만, 친하 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절연, 한국인 집단에서의 배척, 경제적인 문제 등등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나를 덮쳐 왔다. 그러면서 타인과 비교가 시작되고 좌절하고 무너졌다. 어학연수를 다녀와서도 이런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없었다. ‘나라면 큰 돈 들여서 갔는데 그런 문제는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 더 매진했을 것 같아.’라는 대답이 마 음에 박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맞아. 그런 시선이라면 나는 실패자에 불과해.’ 어떻게든 해외 경험을 좋게 생각하고 묻어버렸다. 짧은 해외 생활을 마치고 나서 본 학교는 참으로 좁아 보였다. 더 큰 세상을 원해! 하면서 휴학을 결정했다. 휴 학 기간 동안 관심 있는 언어도 배우고 더 많은 나라에 가서 견문을 넓혀야겠다며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지 만, 어째 가면 가는 곳마다 사람이 그렇게 문제가 되는지. 내 성격을 개조하려는 사람, 나를 못마땅해 하는 사람,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 등등 다양하게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자 나를 의심했다. 정말 내가 별로인 걸까? 난 정말 이 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까? 내가 잘하려면 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하는 걸까? 그들 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좌지우지 되며 내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넌 성격이 그래가지고 다른 모임은 어떻 게 다니니?’라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나서야 그만 두겠다고 겨우 말했다. 복학 후 바라본 학교는 많이 변해 있었다. 취업 양성소가 되어버린 학교. 학년이 올라가서 당연한 수순인데 내 가 잘 몰랐던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변한건지 모를 일이지만 너무나도 변한 분위기는 적응하기 어려웠다. ‘정말 대학교는 취업 양성소에 불과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시작으로 대학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대학의 정의가 실 현되는 곳으로 옮기고 싶어졌다. 진정한 교육을 받고 싶었다. 인격적인 자양분을 쌓을 수 있는, 교육이 실현되는 “정말 내가 별로인 걸까? 난 정말 이 일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까? 내가 잘하려면 대체 얼마나 더 잘해야 하는 걸까?”
  • 7. 10 11 곳, 너무 이상적이지만 어딘가에는 그런 곳을 향해 움 직이는 곳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옮기고 싶은 마음이 꿈 틀대니 더 지체할 것 없이 편입을 알아보게 되었다. 마침내 그런 곳을 찾았고 학교를 다니며 편입을 준 비했다. 딱 그 학교 하나만 보고 준비했다. 왜 나는 계 속해서 병행만 했는지 모르겠다. 하나만 집중해도 충 분할 것 같은데 참 힘들게도 사는 걸 선택하네. 편입 시험 1차를 합격하고 2차를 보고 좋은 소식이 들리기 를 바랐지만, 눈앞에서 탈락.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학교를 계속 다닐지, 아니면 휴학을 해 한 번 더 준비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내 마음은 후자에 더 머물 러 있었다. 나를 잘 아는 친구 또한 어차피 넌 그 선택 을 할 거라며 나의 선택을 거칠게 응원해줬다. 문제는 부모님. 왜 굳이 돌아서 가냐부터 시작해서 제발 안정 적으로 학교 다니면서 취직하면 안 되겠냐는 말로 나 를 설득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마음은 굳혀져 있었기 에 결국엔 부모님도 승낙하셨다. ‘네가 시작하겠다고 했으니 잘 해봐라’라는 말과 함께 나보다 더 강력하게 나를 몰아붙이며. 결론적으로는 편입이 됐다. 1년 동안 학교가 요구하 는 것들을 준비한 뒤 무난히 합격했다. 그때 나는 26 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빠르면 24에는 사회생 활을 시작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휴학이 일반화되었 다고 해도 1년 정도 그러니까 25, 26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새로운 학교에서 신 입생 아닌 신입생 같은 편입생으로 학교생활을 시작 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는 대화 소재에 접점이 없 고, 어린 동생들에게는 연륜을 기대받으며 학교생활을 하게 됐다. 나이는 그냥 먹는 건데 갓 스물인 동생들 이 보기에 나는 참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으 로 보였나 보다. 6년의 차이가 참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같은 고민을 겪는 동생들을 보니 짠하다고 해 도, 지금 내 인생이 부담스러운데 너희들 고민을 들어 주면서 2배를 감당해야 하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지쳐버렸다. 아무 리 잘하려고 해도 잘해지지가 않았다. 힘도 없고 아무 것도 못했다. 하지만 뒤처지는 내 자신을 보니 그건 더 용납이 안 되는데, 계속해서 채찍질해봤자 되는 게 없 었다. 마음은 마음대로 상하고 몸은 몸대로 상하고, 그렇게 내가 선택한건 결국 회피, 구석이 었다. 그렇게 아프기 시작했다. 요즘은 흔하다고 하는데 당사자에게는 전혀 위로가 안 되는 병, ‘우울증’. 우울증을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하고 알아봤는데 정보가 전혀 없었다. 관련 부서에 전화해서 물어봐도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없었다. 어떤 약은 보험처리가 되고 어떤 약은 안 되고 내가 사는 지역 부근에 어떤 선생님이 있는지를 스스로가 알아봐야 하다니! 우울증 환자에게는 가혹한 시스템 아닌가?라는 불평불만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래도 이대로는 안 되 겠다 싶어 억지로 알아봤다. 여러 상담사들 만나며 상처받기도 하고 혹은 조금씩 위로받으며 더 찾아봤다. 이곳에 환자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고, 그래도 누군가가 좀 알려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여전했다. 나를 예시로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또래라면 고민하는 부분에 공통점은 있을 것이 다. 그들과 내가 바라는 건 지금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는 것, 살아남는 것. 취업난 을 해결하고 결혼난을 해결하고 육아난을 해결하고 나면 그 다음은 뭐가 있을까? 아니 그 전 부터 시작해보자. 입시난을 해결하고 대학난을 해결하고 취업난을 해결하고 결혼난을 해결 하고 육아난을 해결하고 난 다음은? 뭐지? 그 안에 내 인생, 내 정체성은 찾을 수 있을까? 나는 10대의 절반을 의무교육으로 썼다. 학업에 집중해 자신의 진로를 대학에 맞춰 어떤 과 를 갈지를 고민하고, 직업에 초점을 맞추며 어떻게 한 단계 한 단계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하 는 점이 대부분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20살, 땡하고 시작하면 버거울 정도로 새로운 길들이 보였다. 이 길이 확실하다고 생각해 들어섰지만 막상 경험해보니 달라서 다른 길을 선택하거 나, 참고 이어나갈지 고민했다. 나처럼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거나 기타 이유 로 길을 내려놓는 등 자신이 설계한 길을 직선적으로 달려 나가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 뒤 여러 경로들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이 자리가 내가 원하는 자리였는지를 자 문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이 하나씩만 온다면 참 좋을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관계, 진로, 자아 정체성 등등 수많은 분야의 질문들이 찾아오더라. 그런데 해답은 바로 나오지 않는다. 나도 이렇게 깎이고 깎여서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어 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28이다. 20살부터 시작된 성장과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또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때의 난 불완전했다. 그때의 난 모든 것이 불안했다. 그래서 다시 그 불완전함을, 불 안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냥 지금이 괜찮다. 근데 미래는 모르겠다.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 겠다.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를 이끌 어 갈지 장담할 수 없다. 뭔가 애매한 청년, 청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맡은 역할들을 충 분히 해내고 있다. 그 청년들을 향해 그리고 나에게 응원의 한마디를 해줬으면 좋겠다.
  • 8. 13 12 청년 이야기 03 이수연 서울시 청년허브에 다니는 직장인. 일을 하며 잘 풀어질 줄 알았던 불안 한 마음을 점점 다르게 바라보게 된 경험을 녹여냈다. 정말 그랬다. 정규직만 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나는 항상 불안하고 불만족스럽기만 한 내 마음이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대체로 무난하고 만족스러워질 줄 알 았다. 그런 일상이 펼쳐질 줄 알았다. 왜 그렇게도 안정을 바랐는지 그 원인을 돌아보면 크게 2가지였던 것 같다. 외부적으로는 시대적 상황, 내부적으로는 나의 성장배경이다. 먼저 시대적 상황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라는 정글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진 즈음에도, 지금 언론에 서 떠들어대는 것처럼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사기업에 들어가면 언제든지 회사가 망할 수도 있고, 내가 짤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게, 사회초년생의 열정과 패기를 억누르고도 남을 만큼 두렵게 느껴졌다. 이와 같은 흐름이 수많은 청년들을 노량진으로 몰아넣는 데 일조했고 나 역시도 그 대세 에 따랐다. 두 번째로는 나의 개인적인 성장배경이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엄마는 혼자서 사업을 하셨다. 여 자 혼자서, 그것도 건설업과 관련된 사업을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수년간 해 오시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경기 의 흐름에 따라 사업은 롤러코스터를 탔고 우리 집안은 그에 따라 출렁거렸다. 그 때부터 내 뼛속까지 경제적 안 정은 정신적 안정을 담보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던 것 같다. 전자가 해결되면 후자는 당연히 해결될 거라 는 단순한 계산이었다. 그렇게 나의 직장 항해기가 시작되었다. 자아실현과 재미, 돈, 심리적 안정, 이 모든 걸 다 가져보겠다고 한 어 리석은 이상주의자의 항해였다. NGO, 지방공공기관, 외국계 금융회사, 중앙공공기관 등을 떠돌아다녔다. 그 과 정을 통해서 나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다행히 나의 업무적 지향점과 최소한의 급여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고용형태는 정규직인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속 이 상향처럼 추구해왔던 곳과 가장 비슷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분명 내 계산대로라면 나는 충분한 만족감과 안정을 느끼며 내 일상을 꾸 려나가야 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있었다. 이는 애인, 친구와의 단발성 데이트로 해 소될만한 것이 아니었다. 허전함은 종종 불안함으로 변해갔고,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서 정규직으로 일을 한다고 해서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해서 불안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한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되었다. “불안은 감정 중에 가장 강력한 감정입니다. 불안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또한 사회적인 것입니다. 미래를 예측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사회에서는 불안을 느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일지도 모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합니 다.” 신경인류학자 박학선의 말이다. 원시시대부터 포식자로부터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불안을 느끼며 경계 를 늦추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 생존에 더 유리했다. 과거의 포식자가 현대에 와서는 형태를 알 수 없는 자본주의 로 바뀌었다는 점만 빼면 여전히 위협을 받는 상황이기에 불안이 생존에 필수적이다. 즉, 생존에 유리한 방식으 로 긴 시간 이어져온 유전자에 따라 우리의 불안은 당연한 상태인 것이다. 내과 의사 한스 셀리에는 “우리를 죽이는 것은 스트레스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라고 말 했다. 불안은 모두에게 공통적이고, 이를 어떻게 건강하게 내가 해석하는지에 따라 그것의 색깔이 달라질 수 있 다는 말이다. 고로 그 해석의 첫 번째 단계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도 없고 항상 옳을 수도 없다는 점을 인정하려한다. 결국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이것을 하고 있는 가로 귀결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 서 남들이 정해놓은 ‘정상’의 기준을 충족시키려다보니, 불안의 원인을 모른 채 계속 눈치만 보면서 경주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불안이 증폭되고 높게 유지된다면, 우리는 먼저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리 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누구이고, 어느 좌표에 서있고,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정규직만 되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글. 이수연
  • 9. 15 14 청년 이야기 04 강민지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계단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내며 이웃과 아파트 공동체를 바라 보는 생각을 공유하고자 한다. [마을에서 내 집을 이어주는 골목, 아파트의 계단] 아파트에는 라인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계단이 있 습니다. 보통 20층 내외의 40세대 정도를 하나의 계 단이 이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움직 이는 대신, 원하는 높이까지 옮겨주는 작은 상자인 엘 리베이터 때문에 사실상 이용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집으로 돌아오거나 밖으로 나갈 때 계단을 이용하는 횟수는 1년 중 손에 꼽는 정도입니다. 아파트의 계단은 과거 마을과 동네라 지칭되는 범위 에서 많은 집들을 이어주는 골목과 같습니다. 다만 골 목이 바깥공간이면서 수평적이라는 점과 달리, 현재 아파트의 계단은 수직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수평적인 동선보다 수직적인 계단은 중력의 힘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사람의 체력을 소모시킵니다. 아마 엘리베이터라는 기계 발명품이 없었다면, 5층 이상의 건물들이 현대 사회의 개수만큼 늘어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16층을 오르내리며 생긴 변화] 제가 살고 있는 현대 아파트는 단지 내에서도 특이 하게 오직 한 라인만 있습니다. 평소에는 불편함을 모 르고 살아왔는데, 2017년 여름, 노후화된 엘리베이터 를 통째로 바꾸는 계획이 잡히면서 아차 싶었습니다. 16층에서 살고 있던 저는 공사가 진행되는 한 달 동안 매일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습니다. 다른 아파트라 면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옆 라인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걸어 내 려갔을 텐데, 이 현대 아파트의 고층에 사는 사람들은 꼼짝없이 계단을 오 르내리며 한 달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 층부터 16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탄다면 1분 후 바로 도착할 수 있지만 계 단으로 오르내린다면 10분 정도 걸린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 베이터가 수리되는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아파트 현관을 지나 집까지 도착 할 때까지 무려 10배나 긴 지루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소 마 주칠 일이 없던 이웃들과 좀 더 자주 마주치고 그들은 어떤 사람인지 관 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이 강아지를 키우는지, 몇 층에 사시는 분이 아이와 함께 사는지, 몇 층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살아 계단을 오르내 리며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는지 말입니다. 이사 온 지 만 4년이 되었는데, 엘리베이터 공사 덕분에, 아직도 이웃을 잘 모르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함께, 엘리베이터 공사 덕분에 계단을 오르 내리며 이웃들과 좀 더 오래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 있어 내심 감사한 마 음도 들었습니다. 글. 강민지 아파트 계단의 재조명
  • 10. 17 16 [왜 아파트에는 청년회가 없을까?] 아파트는 수직적인 주거공간이며 단지의 1층만을 공유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 골목과 수평적인 배치의 마을에 비해, 소통이 단절되고 이웃과의 교류가 적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공터에서 아이들이 뛰놀고 엄마의 부름에 아이들이 밥을 먹으러 골목을 지나 집 에 도착합니다. 가는 길에 골목에 놓인 평상에 앉아계신 이웃 아주머니와 인사도 하고, 문구 점에 기웃거리며 오늘은 100원으로 무슨 불량식품을 사먹을지 고민합니다. 응답하라 1994 에서도 대학생 친구들이 골목 계단에 앉아 사랑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평상에 앉 아 동네 친구들과 먹을 것을 나눠먹고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들은 동네 친구를 만들기 어려워졌습니다. 잦은 이사 와 대학 진학과 더불어 어릴 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친구들이 사라지고 나면, 새로운 또래 친 구들을 만날 기회가 적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반상회랑 더불어 부녀회, 노인회, 육아 공동 체에 속하기 어려워, 점차 아파트 단지의 공동체에서 소외됩니다. [어떻게 하면 어릴때의 반상회가 다시 생겨날 수 있을까?] 밀레니얼이라 불리는 청년들은 아파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며 자랐습니다. 청년들의 부모님들은 골목에서 누린 정을 알고, 아파트에서 반상회를 열어 그 명맥을 유지해왔습니다. 반장을 돌아가며 맡아 자신의 집 거실에서 반상회를 진행했고, 집에 홀로 남기 어려운 우리들 은 안방에 들어가 함께 놀곤 했습니다. 매달 한 번씩, 처음에는 낯설더라도 점차 익숙해져, 반 상회 친구들과 함께 과일도 먹고 퍼즐을 맞추거나 딱지치기를 하며, 엄마가 반상회를 끝내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청년들이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며, 아파트의 반상회는 골목의 정을 다 담아 내지 못했고, 결국 많은 반상회들이 사라졌습니다. 점차 개인화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내 집의 일부를 드러내기가 점차 꺼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아파트의 주민들이 전부 모이 는 반상회의 의미가 약해졌습니다. 반상회를 통해 이웃들을 알고 지내왔다면, 저번 반상회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나, 반상회에 같 이 손잡고 따라왔던 딸의 이야기를 꺼내며 안부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 주민들이 이사 를 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한 라인의 새로운 가족으로 들어오면서 점차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해 지고, 그렇게 아파트의 소통은 악화됩니다. 그렇게 현대 아파트로 새로 이사 온 우리 가족은 이 방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따뜻한 사회이기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인사를 건네거나 현관을 지나며 눈인사를 하며 먼저 다가가면, 이웃들도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줍니다. 저는 아파트 단지의, 혹은 적어도 같은 아파트 동의 사람들에게 좀 더 다가가 그들을 더 자세히 알아가고 싶다고 생 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친구와 나누는 중 재미난 사례를 전해 들었습니다. 어떤 분이 자신도 이웃 간의 소통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에 엘리베이터에 좋은 글귀를 쓴 포스트잇을 써서 인사를 건넸다 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포스트잇에 댓글로 호 응을 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고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현대 아파트에서는 어떻게 해야 이웃과 작은 소통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더 고민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포스트잇으로 이웃과 좀 더 가까워진 사례를 들으며, 현대 아파트 의 이웃과 따뜻한 정이 있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수박 한통을 사면 둘이서 다 먹지 못해 버리기 일상인데, 이를 나눠 먹으며 감사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이웃이 되고 싶어 먼저 다가가는 모습 말입니다.
  • 11.
  • 12. 20 21 20 생생한 일터 이야기 둘! 김민지 멘토 前 금융감독원 공보실 아나운서. 지 금은 퇴사 후 사람들로부터 각자의 스토리와 스피치, 시너지를 이끌어 내 주는 일을 하는 프리랜서 활동을 준비 중에 있다. 8월의 멘토 인터뷰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께요. 안녕하세요 저 는 금융감독원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 김민지입 니다. 3년 전 방송홍보가 아예 없던 금융감독원 에 와서 방송홍보를 개척하는 일부터 시작을 했 어요. 그리고 지금은 방송홍보를 잘 하는 기관, 다 른 기관이 롤 모델로 삼을 만큼의 기관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발전시켜왔고요. 전에는 전주 MBC 에서 아나운서 겸 라디오PD를 했었고 그 전에는 하나금융투자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맡았었 어요. 생각해보면 걸어온 길이 꾸준히 홍보 마케 팅, 스토리 기획, 진행까지 다 연결해보려는 과정 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 금융감독원 퇴사를 하고 난 후 하고 싶은 일도 개개인의 스토리와 스피치, 그리고 그 시너지를 끌어내도록 도와주는 일 입 니다. 퇴사 이후에 그럼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해서 들어 가실 생각은 없으신 거죠? 네, 이곳이 아닌 다른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고 프리랜 서나 사업자의 형태로 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사 람마다 성향이 다 다르고 조직과 맞는 사람이 있 고 안 맞는 사람이 있잖아요. 여러 조직을 경험 해 보니 저는 제 재능이나 역할을 조직 안에 가두기 보다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쓰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직 밖에서 더 다양 한 사람들과의 일을 발전시키고 싶어요. 금융감독원 이전에 근무하셨던 곳은 어디인가 요? 대학시절에 동아 일보 인턴기자를 4개월 정 도 했었어요. 그 이후에 졸업과 동시에 증권회사 에 직원으로 입사를 했고요. 오랫동안 동경했던 방송이라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증권을 그만두고 준비를 했었고 그 뒤로 한국경제TV 앵커, KBS 교 양국 리포터, 다양한 경험을 쌓은 후에 전주 MBC 공채 아나운서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언론이나 아나운서 쪽으로 진로를 결정하게 되 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7년 간 조직에서 일을 해 왔으니 이제는 경계 없이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방송이나 언론은 (물론 그렇지 않다고 보는 분도 계시겠지만) 조직을 위한 일보다 시청자나 청취 자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 하면서 일하거든요. 그런 게 더 맞았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관을 다닐 때는 A가 맞아도 조 직을 위해 B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일이 많다 보 니,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는 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어요. 동기부여가 부족했 던 거겠죠? 그럼 지금 하셨던 일 중에 가장 만족스러웠던 직 무를 꼽아 주시겠어요? 지금 금융감독원이랑 전 주 MBC에요. 공통점은, 제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기획자인 동시에 진행자였기 때문에 기획자로서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처음부터 끝 까지 전 과정을 진행자로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전주MBC 때도 PD와 아나운서를 같이 하다 보니까 방송사 캠페인 기획, 캐치프레이즈 를 짓는 일부터 시작해서, 진행하고 시청자와 소 통하는 것까지 전 과정을 제가 할 수 있는 거잖아 요. 이 방송을 왜 해야 하는지 누굴 위해서 해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같이 생각하면서 전 과정을 이해하며 일한다는 데서 동기부여도 많이 받았고 보람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또 그런 맥락의서 의 업무를 맡아 할 사람을 금융감독원에서 채용 하기를 원했기에 저와 잘 맞아 이직을 할 수 있었 고요. 금융감독원의 공채직원 분들은 말 그대로 금융감독 업무의 전문가이고, 그 외의 홍보나 기 획 면에서의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 와서 한 일이 이 어려운 보도자료와 전문적 인 정보를 어떻게 하면 국민눈높이에서 더 쉽게 풀어내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원고를 쓰 고, 또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하고 이런 일들이거 든요. 그 전 과정을 리드하는 역할에 몰입할 수 있 었어요. 청년 분들도 본인에게 어느 쪽이 맞는지 하나씩 찾아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자신이 주어 진 역할에 집중하는 체질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의식을 갖고 리드 혹은 참여할 때 동기부여 를 받는 편인지. 사실 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기 획하고 진행하는 일이 누군가는 안 맞을 수도 있 어요. 이런 일이 잘 맞는 다는 것을 언제 알게 되셨나 요? 증권사 나오면서 알았던 것 같아요. 그전에 신문사에서 인턴기자를 할 때는 워낙 인력이 없 어서 발제, 기획, 취재, 기사 작성까지 스스로 콘 텐츠를 만들어 내보내는 일이 많았어요. 너무 보 람되고 재미있게 일했었죠. 전 과정에 키를 쥐고 끌고 가는 건데. 증권회사의 인사조직 커뮤니케 이션 직무로 들어가보니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 적이어서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들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했던 것 같아요. 그럼 그렇게 하셨던 것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프 로젝트는요? 금융감독원에 와서 했던 프로젝트 인데 소셜 라이브라는, 유튜브나 페북으로 방송 하는 형태의 콘텐츠가 금융감독원에 원래 없었어 요. 처음에 그런 것들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동료 들이 반대를 했었죠. 일단 우리 선배 세대들은 영 상적인 화려함에 익숙하신데, 소셜 라이브는 ‘라 이브’라는 특성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편집이 안 되거든요. 즉 녹화하고 잘 편집한 콘텐츠에 비해 영상미가 부족할 수 있죠. 때문에 어딘가 부족한 콘텐츠로 느끼는 분들이 계셨죠. 그리고 라이브, 생방송을 하는 거 자체에 대해서 부담스럽게 생 각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그래도 해야 하는 이유 를 설득하였고, 마침 당시 함께 일했던 팀장님께 서도 라이브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셔서 기획안을
  • 13. 22 23 22 23 증권회사에서 일하면서 힘드셨던 점은요? 내가 원해서 왔느냐 부모님이 원해서 왔느냐 인 것 같 아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제가 빨리 취직해서 돈 을 벌기를 원하셨거든요. 아나운서나 기자 쪽은 준비 기간이 너무 길고 된다는 보장도 잘 안되니 되는 쪽으로 빨리 가라는 입장이셨어요. 마침 경 영학과를 나왔고 이제 저희 학교로 추천 연락이 와서 부모님의 권유에 의해 어쩌면 쉬운 길을 선 택했던 것도 같아요. 그리고 들어가서 일을 해 보 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어차피 내가 살아야 할 내 인생이고, 내가 살고 싶은 방향대로 첫 단추 도 잘 끼워야 하는 것 같다고요. 그래도 증권회사에서 일하셨던 경력이 도움이 됐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제 나와서 하 고 싶은 일이 사업계획 발표컨설팅이나 면접보시 는 분들은 면접 컨설팅을 많이 해드리고 싶은데 요. 당시에 있었던 팀이 경영 팀이어서 인사조직, 커뮤니케이션 담당이었어요. HR업무를 한 팀에 서 함께 했다 보니까 면접 컨설팅을 하는데 있어 서 기업의 입장과 인재의 입장을 연결하는 눈을 가질 수 있는 게 도움이 많이 돼요. 결국에는 이직 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한 게 시너지를 내 게 된 거죠. 같은 길을 생각하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해요. 제가 금융 감독원 대학생 기자단들에게 많이 해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에너지를 뺏기는 지, 에너지를 얻는 지 파악을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에요. 평생 할 일이라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금융 공기업, 공공기관, 공기업 많이 오고 싶어 하는데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좋아 보이고, 인스타그램 같은 거 보니까 다들 직원들이 행복해 보이더라 그런 이 야기들을 하시거든요.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일 자체를 들여다 봤으면 좋겠 어요. 이 업무를 잘 들여다보고 본인이 그 일을 할 때 힘을 얻을 일인지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 힘을 얻는 일들을 해온 것 같거든요. 직장생활 이라는 게 9 to 6라는 골든 타임 동안 일을 하면서 스스로 힘들어야 하는데 그 일이 본인이 좋아하는 일인가, 그리고 일을 함에 있어 중요한 가치 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기획하는 일, 마케팅 하는 일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게 아무리 소위 말해서 업무가 과중 되 어도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으면 그 일에서 에너지를 얻으시더라고요. 자기자 신이 어떤 일을 할 때 에너지를 얻고 에너지를 뺏기는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퇴사 후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그 동안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기획부터 진행까지 한 호흡으로 보는 것들을 많이 했으니 누군가에게 그 사람만의 콘텐츠를 스토리 기획부터 전달하는 장 치까지 전부 케어 해 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과 정의 시너지를 내는 일을 하고 싶은데 대상은 좀 더 열려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요즘은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분들은 투자를 위한 발표를 많이 하는데 5 분~10분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두꺼운 사업 소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지 막막해하시잖아요. 그리고 CEO로서 어떻게 신뢰감을 주는 이미지와 설득력 있는 스피치를 구축할 수 있을지를 제가 전체적으로 컨설팅을 해 드리 고 싶어요. 실제로 그런 컨설팅 경험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공채 아나운서가 되기 전 부터 계속 했었어요. 사람이 변하는 게 보이니까 저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무엇보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가 정말 명확하게 느껴졌죠. 제가 한국 경제 TV 프리랜서 앵커였을 때가 처음으로 컨설팅을 해 보았을 때 인데, 그 때 봐드렸던 분께서 모 은행의 과장님 이셨어요. 과장 정도 되면 중간 관리자다 보니까 윗선에 새로운 사업에 대한 발표가 굉장히 일상적이라고 해 요. 그런데 그 분은 발표불안이 굉장히 심하셔서 발표할 때 얼굴이 빨개지고 많이 떠시고 그런 고민이 있으셨거든요. 그 분을 트레이닝 할 때 했던 게 기본 적으로 스토리를 핵심으로 머릿속에 구조를 짜는 연습. 예를 들어서 칼럼을 하 나 드리고 시간 내에 칼럼 안에서 핵심 단어를 추려서 구조화 하는 연습을 하 는 거예요. 기본적인 핵심키워드 중심으로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구조화 연습 을 많이 해 드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게 활자 매체로 공부하면 말공부가 아 만들어보라고 적극 기회를 주셨어요. 그리고 임 원분들을 설득할 기회도 주셨고요. 처음에는 금 융감독원 내부에서도 왜 라이브 콘텐츠를 해야 하는지 반신반의 하셨지만 지금은 다른 기관에서 도 ‘금감원처럼 해야 한다’고 어떻게 하는지 문의 해오고요. 따라 만들 정도로 공공기관과 국민 간 의 소통창구로 잘 자리 잡았어요. 그런 게 재미있 었어요. 불모지였던 곳을 개척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설득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팀원들과 함께 무에서 유를 창조해가는 것이 제 일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혹시 관에서 하는 정책을 활용하시거나 한 적은 있으신가요? 대학교 때 방학 때 마다 있는 서울 시 대학생 인턴에 참여를 했었어요. 그리고 서울 시 일자리카페에서 공간 대여 해 주는 걸 이직할 때도 많이 이용했었고요. 그 외에는 나라일터라 는 포털 홈페이지에서 채용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던 것도 참 좋았어요. 그리고 하나 더 찾자면 제 가 금감원을 2년 계약으로 들어왔는데 저희 역할 이 지금 저희 팀에서 꼭 필요하고 핵심이거든요. 원래 정부였다면 2년, 2년 이렇게 계속 계약직으 로 있었을 텐데 문재인 정부 들어오면서 정규직 전환 평가를 하게 되었고 정규직 전환이 됐어요. 저처럼 특수한 경력직으로 들어오신 많은 분들이 안정적으로 일하게 되었죠.
  • 14. 25 24 무중력지대 양천 고용노동부 청년센터의 2030 라이프매거진 프로젝트 월간지, <2030 Lifezine> 9월호의 원고를 모집합니다! 고용노동부 청년센터의 2030 라이프매거진 프로젝 트는 서울특별시, 특히 서서권역에 오고가는 청년들 의 각종 고민, 취업과 창업, 직장생활, 학교생활 모든 영역에서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듣고자 합니다.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개개인의 경험이 녹아있 는 글 하나하나가 삶을 헤쳐 나가는 청년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2030 Lifezine>에 청년 여러분의 생 생한 이야기들을 보내주세요! 원고제출 및 문의 :  tomato@youthzone3.kr / 02.2646.2030 니라 글공부거든요. 이걸 빨리 구조화해서 말로 전개 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머릿속으로 시각화해 서 말로 뱉어내는 연습까지 해야 완전해 지는 거죠. 정말 워낙 떨던 분이시라 발표자가 가져야 할 마인 드 셋에 관한 수업도 자주 했었고, 또 몸이라는 악기가 안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몸이라는 악기 자 체의 기본기를 잡는 것까지 봐 드렸었어요. 다행이 그 뒤로 발표도 잘하게 되셨고 승진도 하시면서 저 스스로도 누군가를 처음 가르쳐 보는 경험에 감명을 많이 받았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빨리 그런 일을 다시 하고 싶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신기하게도 전주 MBC에서 그 역량을 키울 수 있었어요. 시민들이 직접 DJ가 되어보는 프로그 램을 만들었거든요. ‘LP 창고’ 라고. 매주 주말 새로운 시민이 와서 내 인생의 음악, 영화음악 이런걸 소 개하는 프로그램을 했었거든요. 그 분들이 DJ가 되고 제가 라디오PD인데, 더 잘 보이는 거예요. 이 부 분을 이렇게 고치면 정말 완벽한 스피치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은 지점들. 그래서 아나운서이자 PD의 입 장에서 그분들께 코칭과 트레이닝을 매일 방송 전에 해드린 거죠. 아주 쉬운 예로 “사랑하는 따님에게 말하는 듯이 진짜 ‘말’을 해보세요.”라든가 “말이 지금은 빠르니 키워드를 하나하나 그려내듯이 천천히 음미하며 말 해보세요.”처럼요. 그럼 처음 오셨을 때의 진행과 마지막의 진행이 완전히 달라요. 아마추 어에서 프로가 된 모습의 극과 극이에요. 한 사람에게서 가장 좋은 콘텐츠를 끌어내는 일을 하면서 사 람을 변화시키는 일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멘토님께서 정말 이직, 취직 준비를 하셨을 때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점을 하나만 말해주 세요! 포괄적으로 말씀 드리면 그 직종에서 무엇을 원하는지를 굉장히 낱낱이 파헤쳐야 해요. 그 하나 하나를 다 정리를 해서 그 직종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하구요. 제가 정 말 그렇게 했던 게 채용공고만 볼 게 아니라 이 채용을 왜 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 누군가 퇴사를 해 서 하는 것인지,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해서 하는 것인지. 만약에 누가 퇴사를 해서 채용을 하는 거라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요소가 나에게 있음을 어필해야 하는 거고,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 를 진행해야 하는 거라면 그 프로젝트에서 필수적으로 요하는 역량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어필해야 되 는 거고요. 그래서 채용의 취지, 채용공고의 이면을 알면 더 효과적으로 준비할 수 있어요. 관련 선배에 게 물어보거나 인사팀에 연락하거나 채용공고의 문의 연락처로 연락을 하시거나. 아니면 채용공고를 잘 들여다보면 그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의 역량이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그 역량이 있다는 점을 그 채 용자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어필을 해야 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친구는 은행에 채용지원을 했는데 자 신의 적극성을 어필하기 위해서 해외 건축 봉사활동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은행 실무자의 입장에서 그 친구의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들렸을까요? 그렇지 않겠죠. 면접관, 채용담당자가 매일 고민하는 회사의 관심사와 눈높이를 맞추어서 자신의 역량을 어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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