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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 리 말
1914년 12월,‘압돌바하’를 알현한 일이 있는 친구들과 대
화하기도 하고 또 몇 권의 작은 책자들을 얻어 읽기도 하여 비
로소 바하이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이 가르침의 뜻 깊
음과 권위 있음과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였다. 그것은 내가 지금
까지 접촉한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현 세계의 큰 요구에 충분히
만족하게 합치된다고 생각하였고, 그 인상은 후일의 연구에 의
하여 더욱 깊어지고 확실해졌다.
나는 이 운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문헌을
수집하는데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내가 배워 얻
은 것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고 생각하였다. 세계대전 후‘팔레스타인’과의 교
통이 회복되자, 나는‘압돌바하’께 편지를 보내면서 본서 9장
까지의 원고를 동봉하여 보냈다. 그에 대하여 나는 사랑 깊은
격려의 답장을 받고, 또 나의 초고(草稿) 전부를 가지고‘하이
파’로 와 달라는 친절한 초청을 받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청에 응하여, 1919년과 20년에 걸쳐 약 2개월 반의 겨울을
‘압돌바하’의 빈객으로 지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압돌바하’께서는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기회에 걸쳐
본서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다. 본서의 개선을 위하여 나에게 중
요한 암시를 주셨고, 또 내가 원고를 수정하면 그것을 전부 페
르시아어로 번역시켜서 자신이 그것을 통독하여 필요한 곳을
수정하고 첨삭하도록 제의하셨다. 이 제의대로 수정과 번역이
1
진행되어,‘압돌바하’께서는 그 다망한 시간을 할애하시어 그
분 생전에 약 3장 반 (1, 2, 5장과 제 3장의 일부)을 수정해 주
셨다.‘압돌바하’께서 이 초고 전부의 수정을 끝내지 못하여,
본서의 가치를 크게 높이지 못한 것을 나는 심히 유감으로 생각
하는 바이다. 그러나 초고 전부는 바하이 영국 전국신성회의 면
밀한 교정을 받았고, 또 이 신성회에 의하여 출판이 승인되었
다.
나는 여기서‘E. J. 로젠버그’양,‘클로디아 S. 코올스’부인,
‘로트풀라 S. 하킴’선생,‘로이 윌헬름’씨,‘마운트포트 밀스’
씨 및 그 밖의 여러분들이 본서를 위해 해주신 귀중한 조언에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애버딘’교외‘페어포드 컬츠’에서‘J. E. 엣슬몬트’
2
229
목 차
제 1 장 기쁜소식 ··················1
역사상 가장 큰 사건 ··············1
변천하는 세계·················3
정도의 태양··················4
‘바하올라’의 사명···············5
예언의 실현··················6
예언자인 증거·················8
탐구의 곤란··················9
본서의 목적 ·················10
제 2 장 선구자‘바압’ ···············13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 ·············13
초기 생애 ··················15
선언 ····················16
바비운동의 전개 ···············17
‘바압’의 주장 ················18
박해가 더욱 심해짐 ··············19
‘바압’의 순교 ················20
‘칼멜’산 위의 무덤··············21
‘바압’의 저서 ················22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23
부활, 천당, 지옥 ···············24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24
수난과 승리 ·················2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바하올라’··········27
탄생과 유년시대 ···············27
바비로서 감옥에 갇힘 ·············28
‘바그다드’로 추방됨 ·············30
황야에 서의 2년 ···············31
‘몰라’의 압박 ················32
230
‘바그다드’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33
‘콘스 탄티노플’과‘아드리아노플’·······34
여러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35
‘악카’에서의 감 옥 생활 ···········36
속박이 완화됨 ················37
옥문이 열림 ·················38
‘바흐지’에서의 생활 ·············41
승천 ····················43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44
‘바하올라’의 사명 ··············49
‘바하올라의 저서 ··············51
바하이 정신 ·················53
제 4장‘압돌바하’바하의 종 ············55
탄생과 유년시대 ···············55
청년시대 ··················57
결혼 ····················58
성약의 중심 ·················59
다시 엄중히 감 금됨 ·············60
터키 조사위원회 ···············64
서양 여행 ·················· 65
성지에 귀향 ·················66
전쟁 중의‘하 이파’ ·············68
대영제국의 훈작사 KNIGHT‘압돌바하 압바스’ ··69
만년 ····················69
‘압돌바 하’의 서거··············70
저서와 강연 ·················72
‘압돌바하’의 지위 ··············73
바하이 생활의 구현자 ············75
제 5장 바하이란 무엇인가··············77
삶의 영위 ··················77
하느님께 대한 헌신 ··············79
진리탐구 ··················80
하느님께 대한 사랑 ··············82
끊어버림 ··················84
순종 ····················85
봉사 ····················87
교도 ····················87
예의와 존경 ·················89
죄를 덮어주는눈 ···············91
겸손 ····················92
정직과 성실 ·················93
자기 실현 ··················94
제 6장 기 도····················97
하느님과의 대화 ···············97
기도하는 태도 ················98
매개자의 필요 ···············100
기도는 꼭 필요하고의무적인 것임 ·······101
회중기도 ··················102
기도는 사랑의 말이다 ············103
재난에서의 해방 ··············104
기도와 자연법칙 ··············106
바하이의 기도 ···············107
제 7장 건강과 치유 ················111
육체와 영혼 ················111
모든 생명의 일체성 ·············111
단순한 생활 ················112
알콜과 아편 ················113
향락 ····················113
청결 ····················114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효과 ········114
의사로서의 예언자 ·············116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116
231
비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118
성령의 힘 ·················120
병자의 태도 ················120
치병자 ···················122
사람은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 ·······124
황금시대 ··················125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 ············125
제 8장 종교의 융합 ················127
19세기의 종파주의 ·············127
‘바하올라’의 전언傳言 ···········128
인간성은 변화할 수 있는가 ··········129
융합에로의 첫 걸음 ·············131
권위의 문제 ················132
점진적 계시 ················133
예언자들의 확실성 ·············135
지고의 현시 ················137
새로운 정세 ················138
바하이 계시의 충만 ·············139
바하이 성약 ················140
직업적 성직자가 없음 ············143
제 9장 참다운 문명 ················145
종교는 문명의 기초이다 ···········145
정의 ····················146
정부 ····················147
정치상의 자유 ···············150
통치자와 국민 ···············151
임명과 승진 ················152
경제 문제 ·················153
공공재정 ··················154
자발적 분배 ················154
모든 사람은 일해야 한다 ···········155
232
부의 윤리 ·················156
산업상의 노예를 인정하 지 않음 ·······157
유산과 상속 ················159
남녀 평등 ·················159
여성과 신시대 ···············161
폭력수단 을 피할 것 ·············162
교육 ····················163
천성의 선천적 차이 ·············164
품성의 훈련 ················165
예술, 과학, 기술 ··············166
범죄자 다루기 ···············166
신문의 힘 ·················168
제 10장 평화에 이르는 길 ·············169
갈등과 협조 ················169
최대의 평화 ················170
종교적 편견 ················171
인종적 및 애국적 편견 ············173
영토적 야심 ················174
세계어 ···················175
국제연맹 ··················178
국제중재 ··················180
군비제한 ··················181
무저항 ···················181
정의의 전쟁 ················183
동서양의 융합 ···············184
제 11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187
수도원 생활 ················187
결혼 ····················188
이혼 ····················189
바하이력 ··················190
신성회 ···················191
233
축제 ···················194
단식 ····················195
집회 ····················196
19일 축제 ·················198
‘마슈리꼴 아즈카르’ ············198
사후 의 생애 ················200
천국과 지옥 ················202
두 세계의 일체성 ··············204
악은 실재하지 않음 ·············207
제 12장 종교와 과학 ···············209
충돌은 잘못해서 생김 ············209
예언자들의 수난 ··············210
조화의 새벽 ················212
진리탐구 ··················213
진정한 불가지론 ··············214
하느님에 대한 인식 ·············215
하느님의 현시자 ··············216
창조 ····················217
인류의 계통 ················219
육체와 영혼 ················220
인류의 일체성 ···············222
융합의시대 ·················223
제 13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225
234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1 장
기 쁜 소 식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분이 오셨다. 모든 민족과
모든 공동체들은 계시를 기다려 왔고, 바하올라, 그분은 전 인
류의 으뜸가는 교사요 대 교육자이시다. --- 압돌바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우리가 지금 과거의 기록을 더듬어‘인간 진보’의 역사를 연
구해 본다면 인류를 진보시켜 준 선각자들이 여러 시대를 통하
여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보다 훨씬 앞선 점을
인식하여 그때까지 인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진리의 발견자,
계시자로서 그 당시 사람들을 지도해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발명가, 개척자, 천재, 예언자 - 주로 이러한 사람들
에 의하여 이 세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아주 분명한 사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생각한다........ 하
나의 보다 높은 지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정신적 진리
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갖지 않은 열 사람보다 만 사람보다, 아
니, 그것을 갖지 않은 모든 사람보다도 강하다........ 그가 만
인 위에 뛰어남이 마치 천검(天鈐)을 가진 영묘(靈妙)한 천사
3
제 1 장 기쁜소식
4
바하올라와 신시대
의 모든 권력에는 어떠한 방패나 철성(鐵城)으로도 대항할 수
없음과 같다.”---‘시대의 징조’에서
과학, 예술, 음악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많은 설
명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상의 위대한 인물과 그의
사명이 지극히 중대한 의의(意義)를 가진 것만큼 명확한 사실
을 다른 어떤 부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고래로 어느 시대에
나 사람들의 정신생활이 타락하고 도덕이 부패해지면 신비스럽
고 놀라운 인물, 즉 예언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혼자
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자도 없고 교도하여 주고 책임을 함께
하는 자도 없이 마치 장님무리 가운데 단 한사람의 눈뜬 자와도
같이, 다만 혼자서 전 세계를 향하여 정의와 진리의 복음을 선
포하는 것이다.
예언자 중에는 특별히 탁월한 분들이 있다. 몇 세기마다 하느
님의 위대한 계시자 - 크리슈나, 조로아스터, 모세, 그리스도,
모하멧과 같은 분들이 동양에서 마치 정신적인 태양처럼 나타
나서 사람들의 어두운 정신을 빛내고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
어 깨워주셨다. 이러한 종교 창시자들의 위대성(偉大性)을 비
교하여 말함에 있어서 그 견해를 달리하는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인류의 교육에 있어서 그분들이 가장 강력한 요소(要素)로 작
용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예언자들은
모두 선언하셨다. 즉, 자신들의 말은 자기들 자신의 말이 아니
라 자기들을 통해 내려온 계시요 성스러운 메시지이고, 자기들
은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라고. 기록에 남아 있는 그분들의
말씀 가운데는 반드시‘때가 오면’위대한 세계의 지도자가 출
현하리라는 암시와 약속이 많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저들의 성
업(聖業)을 완성하여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나타나
는 것이라고. 그분에 의하여 지상세계(地上世界)는 평화와 정
의의 통치를 완성하여 모든 종족, 종교, 국가, 민족은 하나의 큰
가족을 이루어‘하나로 뭉쳐서 한분의 목자에 의하여 양육될
것이요’, 모든 사람은‘지극히 하찮은 자로부터 가장 위대한 자
에 이르기까지’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말세의 이 위대한‘인류의 교육자’가 도래하는 날이야 말로
참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하
이신앙은 그 대교육자가 이미 실제로 출현하셨으며 계시가 전
해지고 기록되어서 진실한 구도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고,‘주
의 날’이 벌써 밝아서‘정도(正道)의 태양’이 떠올랐다는 기쁜
소식을 전 세계에 선언하고 있다. 이 영광스러운 광륜(光輪)을
본 자는 산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이 광선
은 이미 하늘과 땅을 비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산을 넘어 떠오를
것이요, 그리하여 평원과 골짜기까지 전력으로 비치어 전 인류
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지도할 것이다.
변천하는 세계
19세기로부터 20세기 초기에 걸쳐 세계가 낡은 시대의 죽어
가는 단말고(斷末苦)와 새 시대를 낳는 진통(陣痛)의 기간을
겪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유물주의(唯
物主義), 이기주의(利己主義)와 같은 묵은 사상과, 낡은 종파
적, 애국적인 편견과 증오는 그것들 자체가 쇠퇴함에 따라 점차
그 면목이 희미해지고, 모든 나라에는 새로운 신앙과 인류애(人
類愛), 국제주의와 같은 새로운 정신이 일어나 낡은 질곡(桎梏)
에서 벗어나고 묵은 경계선을 넘으려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
5
제 1 장 기쁜소식
찍이 보지 못한 큰 세력으로써 혁명적인 변화가 인간생활의 모
든 분야에 일어났다. 그러나 낡은 시대가 아직도 완전히 쇠멸한
것이 아니어서, 그는 다가오는 새 시대와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
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거대한 무서운 폐해가 생기고, 그것들
은 새 힘과 새 희망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정체가 폭로되어
조사를 받고 공격을 당하고 있다. 어두운 구름은 몽롱하게 무서
운 광경을 나타내고 있으나 빛은 그 구름을 뚫고 향상(向上)의
길을 비치어 앞길을 막는 장애물과 함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8세기는 이와 달랐다. 당시는 정신적, 도덕적 생활의 암흑시
대여서 빛이 비칠 틈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여명(黎明)
직전의 어둠으로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등불 빛이 있기는 해도
그 암흑을 비칠만한 힘이 없었다. 카알라일은 그의‘프레데릭
대왕전’에서 18세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 없었던 시대, 역사를 가질 수 없는 시대, 일찍이 보
지 못한 거짓이 충만했던 시대, 거짓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깨
닫지 못한 시대, 부정(不正)이 제멋대로 날뛰어 병이 고황에
들었던 시대, 이와 같이 악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마침내 프랑
스혁명이 그것에 종말을 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
한 시대에 당연한 결말이 온 것을 감사한다. 사람의 자식들이
꼬리 없는 원숭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또 한번 하느님의 계
시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프레데릭 대왕전’제 1권 제 1장
이 18세기 시대에 비하면 현대는 마치 암흑 후의 서광시대요
엄동 후의 양춘시대로서, 세계는 새 생명에 약동하고 새 이상과
새 희망에 불타고 있다. 몇 해 전까지는 불가능한 공상으로 보
6
바하올라와 신시대
이던 것이 지금은 사실로 성취되었고, 몇 세기 후의 일로만 생
각되었던 일이 이미 실제문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하
늘을 날아다니고 바다 밑을 잠항하게 되었으며, 전광(電光)의
속도로 전 세계에 통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해 사이
에 대 군국주의가 거꾸러지고 여성들은 종래에 하지 못했던 직
업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국제연맹이 탄생하고, 그 밖의 기적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정도(正道)의 태양
세계에 넘쳐흐르는 이 급격한 각성의 원인이 무엇인가? 바하
이는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 페르시아에서 탄생하
시어 19세기 말엽에 성지(聖地)에서 세상을 떠나신 예언자 바
하올라를 통하여 이루어진, 성령(聖靈)의 크나 큰 발로(發露)
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태양이 자연계에 광명을 주는 존재인 것 같이 예언자, 혹은
‘하느님의 현시자’는 정신계에 광명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것을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물질적 태양이 지상세계를 비치어
물질유기체(物質有機體)를 성장, 발육시킴과 같이 하느님의 현
시자를 통하여 진리의 태양은 마음과 영혼의 세계를 비추어 인
간의 사상과 도덕과 성격을 교육한다. 자연계의 태양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고 그늘진 구석까지 침투하여 태양을 보지도 못한
생물에게까지 열과 생명을 주는 힘이 있음과 같이, 성령의 발로
는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
고, 예언자의 출현은 봄이 다시 돌아옴과 같아서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부활의 날’인 것이다. 그리하
여 하느님의 종교의 실체가 갱신되고 재건되어 거기에‘새로운
7
제 1 장 기쁜소식
하늘과 땅’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에 있어서는 봄이 생물에게 새 생명의 생장과
각성을 줄 뿐 아니라 노쇠하게 만드는 요소를 파괴하여 쫓아버
린다. 꽃이 피게 하고 움이 트게 하는 태양의 힘은, 동시에 또한
죽어서 무용하게 된 물건을 썩어 없어지게 한다. 그리고 굳은
얼음을 깨뜨리고 쌓인 눈을 녹이며 홍수와 폭풍을 일으켜 지상
을 청소한다. 영적(靈的)세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정신적
태양의 광명은 동일한 동요(動搖)와 변화를 정신세계에 일으킨
다. 그리하여 부활의 날은 또한 심판의 날이기도 한 것이다. 부
패와 진리의 모방, 그리고 무용한 낡은 관념과 좋지 못한 관습
은 버림을 받고 멸망을 당하는 것이니, 겨울 동안에 쌓이고 쌓
였던 편견과 미신의 어름과 눈이 풀리고 오래 얼어붙었던 세력
이 홍수처럼 넘쳐흘러서 이 세계를 갱신케 하는 것이다.
바하올라의 사명(使命)
바하올라께서는 분명히, 그리고 거듭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전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교육자
요 교사이며, 이전의 모든 하느님의 은총의 발로(發露)를 초월
한 신비스러운 은총의 수로(水路)가 되어, 그 도도한 흐름 속에
마치 모든 냇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감과 같이 종래의 여러 가지
형태의 종교가 융합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전의 예언자가 말씀
하시고 시인이 노래한 바와 같이 전 인류의 선량한 의사가 소통
하여 전 세계가 통합되고 지상에 완전 평화의 황금시대가 이루
어질 확고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하셨다.
진리의 탐구, 인류의 일체성, 종교와 종족과 국가와 동서양의
8
바하올라와 신시대
통합, 종교와 과학의 조화, 편견과 미신의 근절, 남녀 평등, 정
의와 정도의 확립, 최고 국제재판소의 설치, 언어의 통일, 지식
의 의무적 보급, 그 밖의 여러 가지 가르침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에 바하올라의 붓으로 계시되어 많은 서적과 서한에 기
록되어 있고, 그 중 몇 가지 사항은 세계의 제왕과 지배자들에
게 보낸 서한에도 씌어 있다.
그 범위와 내용이 지극히 광대하고 심오한 그분의 계시는 참
으로 놀랍게도 시대의 요구와 목적에 합치되어 있다. 현대처럼
크고 복잡하고 새로운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했던 시대가 없었
고, 현대처럼 많은 해결 방책이 제시되면서도 그것들이 모순에
가득 차 있던 시대가 없었으며 현대처럼 기대가 일반적인 때도
없었을 것이다.
예언의 실현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지금으로부터 20세기 전에 나타나셨을 당시
유대인들은 모두 그분의 출현을 열망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매
일 열심히‘오 하느님 구세주의 계시를 빨리 내려 주소서’하
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태양이 그 서광을 발하기 시
작하자 저들은 그리스도 그분이 구세주임을 부인하고, 그분에
대항하여 몹시 미워한 나머지 그분을 악마라고 불러,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이요‘하느님의 정신’인 그분을 무참하게도 십
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실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거니와 그
이유는 이러하다. 저들 유대인들은 말하되, 토라의 원전(原典)
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곧 구세주라 함에는 확실한 표징에 의하
9
제 1 장 기쁜소식
여 검증되어야 할 것인데 이와 같은 표징이 없는 이상, 그가 아
무리 구세주라고 주장할 지라도 그는 사기꾼이다. 그 표징 가
운데는 이러한 것이 있다. 즉, 구세주는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자렛 에 있는 그 사람의 생가
(生家)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어찌 나자렛에서 그런 일이 생
길 수 있겠는가? 다음의 표징은 이러하다. 구세주는 쇠 지팡이
로 지배한다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검을 잡고 활동해야 할 것
인데 이 사람은 나무 지팡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조건인 표징은 이러하다. 그는 다윗의 왕좌에 앉아 다윗의 통
치권을 확립해야 할 것인데 이 사람은 왕좌에 앉기는커녕 자기
가 앉을 거적자리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또 토라의
율법을 전부 지켜야 할 것인데 그는 이 율법을 무시하였다. 안
식일의 계율을 깨뜨린 자와 기적을 행한 자와 예언자라고 공언
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한다고 토라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는 안식일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았는가. 또 다른 표
징으로는 구세주의 치세(治世)에는 정의가 증진되고 바른 길과
착한 행실이 인간으로부터 동물세계에까지 널리 퍼져서 뱀과
생쥐가 한 굴에서 살고 독수리와 꿩, 새가 한 둥우리에, 사자와
양이 한 목장에, 이리와 양이 한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되어야 할
것인데 부정의(不正義)와 포학한 정치가 그리스도를 학살하도
록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진 시대가 아닌가. 또 다른 조건은,
구세주가 나타나면 유대인은 번영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정
복하고 통치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로마제국에 정복되어 무서
운 굴욕과 불운에 울고 있지 않은가. 이러하거늘 어찌 이 사람
이 토라의 경전에 약속된 구세주일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말
하는 것이었다.
10
바하올라와 신시대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유로서 진실로 그분이 토라에 약속된
‘하느님의 정신’임에도 불구하고‘진리의 태양’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토라에 기록된 그 표징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여‘하
느님의 말씀’을 학살한 것이다. 바하이는 그 해석을 유대인과
는 달리하여, 토라에 기록된 구세주의 표징이란 것은 비유적인
우의(愚意)로써 표현된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하느님
의 계시에 의하여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
컨대, 구세주의 통치권의 뜻은, 바하이가 믿는 바에 의하면 짧
은 시일에 멸망하는 나폴레옹의 통치권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것은 천국적인 신성한 항구(恒久)의 통치권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통치는 2천년 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성스러운 존재자(存在者)는 영원히 불
멸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뜻으로써 다른 많은 표징도 나타났건만 유대인들
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가지고 나타나신 이래 거의 20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세주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
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바를 진리로 알고 그리스도를 거짓
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 본장을 위하여 압돌바하께서 친히 쓰신 것임.
만일 유대인들이 그 의심되는 뜻을 그리스도께 물었더라면 그
분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 관한 예언의 참뜻을 설명하셨을 것이
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 의하여 얻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그
리하여 우리가 후대(後代)의 대 교사의 현시에 관한 예언이 실
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정하기 전에, 바하올라께서 그러한 예
언의 해석에 대하여 쓰신 것을 보기로 하자. 그것은 예언이란
11
제 1 장 기쁜소식
것의 대부분이‘봉인된’말씀이어서 진정한 인류교육자 자신이
라야 비로소 그 비봉(秘封)을 뜯어 그 속에 감추어진 참뜻을 명
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하올라께서 고대의 예언에 대
하여 많은 설명을 기술하셨다. 그러나 그것을 기초로 하여 그분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거 하려하지는 않으셨다. 태양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그 자체가 증거인 것이
다. 태양이 떠오를 때 그 빛나는 광명에 대하여 묵은 증거를 끌
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현시자의 출현도 이와 같아
서 지난날의 예언이 전부 잊혀졌더라도 영적감각(靈的感覺)이
열려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분 자신이 완전하고 충분한 증
거인 것이다.
예언자인 증거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의 설명이나 가르침을 누구에게나 맹목
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셨다. 그와는 반대로, 그
분은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성을 경계하시고,
진리탐구를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거리낌 없이 자기의 눈과 귀
를 열어 자기의 판단으로써 탐구할 것을 권하셨다. 그분은 자신
이 예언자인 증거로써, 당신의 언행과 그것의 결과로써 여러 사
람의 생활과 품성을 도야(陶冶)하고 변화시킨 사실을 제공하
여, 그것들을 충분히 검토할 것을 요구하시고, 조금도 스스로를
숨기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제기한 사고 방법은
그분 이전의 현시자들이 보여준 바와 같은 것이었다. 모세께서
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한 일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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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
라.”---‘신명기’제 18장 22절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이와 같은 시험 방법으로써 그분 자신
을 증거하려 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
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지
나무에서 포도를, 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
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
매를 맺나니........ .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제 7장 15~20절
이하의 각장에서 우리는 바하올라께서는 예언자인가, 혹은 예
언자로서의 이러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신 것인가, 즉 그분께
서 말씀하신 바가 실현되었는가, 또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왔는가, 아니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는가. 다시 말하자면 그분의
예언이 실현되고 그분의 가르침이 확립되었는가. 그리고 그분
의 일생의 사업이 인류의 교육에, 인문의 향상에, 덕성의 함양
에 얼마나 공헌하였는가. 또는 반대로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
는가에 대해서 연구하여 보기로 한다.
탐구의 곤란
이 대업(大業)을 연구하여 그 사실의 진상을 깊이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도덕의 대혁
신과 정신의 개조에 있어서 대개 그러하였던 바와 같이 바하이
신앙은 많은 오해를 받았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신도들이 받은
무서운 박해와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는 적이나 동지나 다
13
제 1 장 기쁜소식
같이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신앙의 가치와 창시자의 인격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진술과 반대자들의 의견이 구구하여 마치
그리스도 시대와 같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과 그
신도가 받은 박해와 그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신자들
은 그가 모세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고, 반대
자들은 예수가 율법을 파괴하고 하느님의 계율을 유린하였으므
로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고 한다.
과학에서와 같이 종교에 있어서도‘천금의 가치 있는 한 알의
진주’를 얻기 위하여 전 재산을 파는 자의 태도가 필요하다. 모
든 편견과 미신을 다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써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만 진리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바하이신앙의 참뜻을 충
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마음을 기울여, 모름지기 하느
님의 지도에 의탁하고 진리 앞에서는 자기를 잊어버리고 연구
해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이 종교 창시자들이 남긴 기록 가
운데서 커다란 정신적 자각과 그 가치의 비밀을 규명하는 열쇠
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기록들이 우리가 알기
어려운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 또
한 연구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다만 그 서적의 일부가 오늘
날 영어로 번역된 것이 있으나 그 문체와 정확성에 있어서 아직
우리의 희망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설
화(說話)와 번역에 부적당하고 불충분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이 대업이 웅대하고 견실한 기초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자욱한 안개 속에 우뚝 치솟은 산과 같이 보인다.
14
바하올라와 신시대
본서의 목적
이하 각 장에서 바하이신앙의 역사적 사실과 특히 그 가
르침을 되도록 공정하게 편견 없이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
금 그 중요성에 자기의 지적(知的) 판단을 내리게 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더 깊이 연구하는 데 길잡이가 되도록
힘쓰려 한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전 목적일 수는 없다. 진리는 죽
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박물관에 진열되어 목록과 부전
이 붙어 분류되어 무미건조한 것으로 다루어질 그러한 물
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에 깊이 뿌리 박혀져, 그 탐
구의 성과(成果)를 거두기 전에 벌써 그들의 생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야 마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예언적인 계시의 지식을 널리 보급시키려 하는 진정
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 진리를 확신하게 된 사람들이 그
원칙을 실행하여‘바른 생활’을 하고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
하여,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 위에도
실현되는 행복의 날이 하루 속히 오도록 함에 있는 것이다.
15
제 1 장 기쁜소식
16
바하올라와 신시대
제 2 장
선구자 바압
진실로 압제자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아야 할 이를 죽임으
로써, 피조물(被造物)가운데서 하느님의 빛을 없이 하여 은총
과 혜택이 충만한 날의 천국생활의 분류(奔流)에서 인류를 제
지(制止)하려 하였다. -- 바하올라의‘라이스에게의 서한’에서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發祥地)
바하이 계시의 발상지인 페르시아는 세계 역사 중에서도 특이
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페르시아 초기의 위대한 전성시대에
는 그 문명과 부강에 있어서 여러 나라에 비류가 없어 마치 특
출한 여왕과도 같았다. 훌륭한 왕과 정치가도 적지 않았고, 세
계에 유명한 예언자, 시인, 철학자, 미술가들을 많이 배출하였
다. 조로아스터, 싸이러스, 다리우스, 하페즈, 페르도우시, 싸아
디, 우마르 케이얌 등은 페르시아의 유명한 사람들 중의 소수에
불과하다. 이 나라의 공예가는 참으로 우수하였다. 융단, 강철
칼, 도기 등은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다. 근동지방과 중동지
방에서 고대의 페르시아는 위대한 자취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에 있어서 페르시아의 위세는 기울어
져 그전의 영광을 다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부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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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18
바하올라와 신시대
경제가 와해되고, 지배자는 무력하였으며 그중에 어떤 자는 잔인
무도한 괴물과도 같았다. 승려(僧侶)는 완미고루하고, 국민은 무
지하여 미신에 깊이 빠져 제도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대다수는
이슬람교도 중에서도 쉬이에파1)에 속해 있었고, 그 밖에 조로아
스터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 등 서로 적대시하여 용납하지 않
는 각종 각파의 신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유일신(唯一神)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과 화합으로써 살아갈 것을 가르친 위대한 지
도자의 명령을 받든다고 입으로는 주장하면서도, 서로 다른 종교
의 사람을 부정(不淨)하고, 짐승, 이단자(異端者)로 배척하며 비
방하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저들 사이의 증오와 저주는
험악할 정도에 이르렀다.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는 비 오는
날 외출하여 거리를 걷는 것조차 위험하였다. 만일 길에서 비에
젖은 옷이 잘못하여 이슬람교도의 옷에 닿기만 하면 그는 자기를
더럽힌 자라 하여 그 죄 갚음으로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고야 마
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슬람교도가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
또는 기독교도에게서 돈을 받을 때 그는 그 돈을 물로써 깨끗이
씻지 않고는 주머니에 넣지 않는 것이었다. 또 만일 유대교도가
자기의 어린 아이가 이슬람교도 거지에게 물 한잔 주는 것을 발
견했을 때 그는 노하여 아이의 손에서 물그릇을 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으니 이교도(異敎徒)에 대해서는 친절이란 있을 수 없었
다. 이슬람교에는 또한 무수한 종파가 분립하여 같은 교도 사이
의 충돌과 분쟁이 더욱 심하였다. 조로아스터교도는 이러한 분쟁
속에 휩쓸리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종교를 달리한 자국인과 단교
(斷交)하여 저들 자신의 조직만으로써 생활하는 상태에 있었다.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희망 없는 퇴폐의 구렁
1. 모하멧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안 되어 이슬람교가 쉬이에, 순니의 2대 교파로 분열된 것 중의
하나임. 쉬이에파는 모하멧의 사위 알리가 예언자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하여 그 후예만이 칼리프의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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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빠져 있었다. 교육은 무시되고 서양의 과학과 예술은 종교에
반대되는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배척되었다. 정의는 왜곡(歪
曲)되고 약탈과 강도가 횡행하였다. 도로는 파괴되어 여행이 불
안하였고 위생 상태는 지극히 나빴다.
이러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생활의 한 가닥 광명
이 아주 꺼지지는 않았다. 혼돈한 세상 욕심과 미신 가운데서도
여기저기에 하느님을 동경하는 순진한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안나와 시몬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약속된 하느님의 선구자’께서 오실 날
이 멀지 않았음을 믿고 기다렸다. 새 시대의 선구자 바압께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여 온 나라를 진동케 한 것은 페르시아
가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였다.
초기 생애
미르자 알리 모하멧, 후에 바압(문이라는 뜻)이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1819년 10월 20일 페르시아의 남쪽에 있는 쉬
라즈라는 곳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은 세이예드, 즉 예언자 모하
멧의 후예였다. 유명한 상인이었던 그분의 부친께서는 바압께
서 탄생하신지 얼마 안 되어 타계하시고, 그분은 쉬라즈에 사는
상인인 외숙의 댁에서 성장하셨다. 어릴 때 독서를 배우고 그때
의 통례대로 초보의 교육을 받으셨다2). 15세 때 비로소 외숙을
제 2 장 선구자 바압
2. 이점에 관하여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양에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바압의 신도들(현재의 바하이)
은 다음과 같이 믿고 있다. 즉, 바압께서는 교육을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저 몰라(이슬람교의 신학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바압의 지위를 격하시키기 위하여 바압께서 가지신 지식과 지혜는 그분이 받은 교육에 의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이 점에 관한 사실을 깊이 연구한 결과 우리는 바압께서는 어렸을 때 쉐이크 모하
멧(아베드라고도 알려져 있음)의 집에 얼마동안 출입하시어 거기서 페르시아어의 읽기와 쓰기를 배우셨다
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바압께서 자신의 저서 바얀 가운데‘모하멧, 나의 스승이여........’라고 쓰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분의 스승이었던 쉐이크가 자기의 제자였던 바압의 충성스러운 사도
가 된 것이다. 또 바압께서는 아버지와 같았던 숙부 하지 세이예드 알리가 또한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도가
되어 바비(바압의 신도라는 뜻)로써 순교한 사실이다. 이러한 비밀은 진리를 탐구하는 자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니, 우리는 바압께서 받으신 교육은 극히 초보에 불과한 것이요, 바압에게 나타난 희한한 위대성
과 지식의 표징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것은 천부(天賦)의 것이요,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 상업에 종사하셨고, 후에 페르시아만(灣) 연안의 부쉐흐
르라는 곳에 사는 또 다른 숙부에게 가서 역시 그곳에서 상업에
종사하셨다.
청년으로서의 그분은 이목이 청수하고 행동이 얌전하였으며
마음이 경건하고 품성이 고상하여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
셨다. 그분은 이슬람교의 의식인 기도와 단식과 그 밖의 모든
계율을 잘 준수하였을 뿐 아니라 교조(敎祖)가 가르친 정신을
가지고 사셨다. 그분은 22세에 결혼하셨다. 이 결혼에 의하여
남아 하나를 얻었으나 그 아이는 바압께서 공공연하게 성직(聖
職)에 나아가신 해에 어린 아기로써 사망하였다.
선언
그분이 25세에 달했을 때, 하느님의 명령에 의하여 그분은
“높으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바압의 직책을 주셨다.”고 선언
하셨다.‘나그네의 이야기’란 책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바압이라는 칭호에 의하여 그분께서 나타내려고 하신 의미
는 이러하다. 그분은, 무한히 완전한 덕성을 갖추고 있고, 그리
고 아직 영광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는 어떤 위대한 인물로부터
오는 은총의 통로(通路)가 되어, 그 완전한 분의 뜻에 의하여
자기는 움직이고, 그분의 사랑의 끈에 자기가 매여 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바압의 에피소드’3쪽
당시 하느님의 사자가 불원에 나타나시리라는 신앙은 쉐이키
라는 이슬람교의 일파에 특히 그 믿음이 강하였고, 바압께서 처
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알린 사람은 이 종파에 속하는 몰라 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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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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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보슈루이라는 유명한 신학자였다. 그리고 그 알린 정확한 날
짜는 바압의 저서 중의 하나인 바얀이라는 책에 헤쥬라트 기원3)
1260년 쟈마디율 아발월 4일 (즉 1844년 5월 22일) 해진 뒤
2시간 11분이라고 적혀 있다. 바하이의 하루는 서양의 여러 나
라와는 달리 자정이 아니라 해지는 때에 시작되므로 바압 선언
축제는 5월 23일에 해당하는 쟈마디월 5일에 행하게 되어 있
다. 압돌바하께서는 바로 그날 밤에 탄생하셨는데 그 정확한 시
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몰라 호세인은 며칠 동안 열심히 연구
하고 검토한 끝에, 쉬이에 종파의 신도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사
자가 참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의 이 발견에
대한 열성적인 태도가 곧 그의 많은 친구들을 움직여 얼마 후에
쉐이키 종파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압을 받아들여 그 신자가 되
었다. 그리하여 이 청년 예언자의 명성이 갑자기 요원의 불길처
럼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바비 운동의 전개
바압의 처음의 제자 18인(그 자신까지 19인)은 곧‘생명의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분은 이 제자들을 페르시아와 터키
의 각지에 보내어 그분의 출현에 대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메카에 순례를 떠나 1844년 12월 그곳에 도착
하시어 거기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분께
서 부쉐흐르에 돌아오시자, 그분이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
은 비상한 충동을 일으켰다. 불같은 그분의 웅변, 질풍같이 빠
르고 감화에 찬 그분의 저서의 놀라움, 비범한 그분의 지혜와
지식, 개혁자로서의 그분의 용기와 정열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
제 2 장 선구자 바압
3. 이슬람교의 역서(曆書)는 서력 622년 모하멧께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패주(敗走)한 날을 기원으로
하는 것이요,‘헤쥬라트’란 아랍어로 패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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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들에게 비상한 열광을 일으킴과 동시에 이슬람교의 정통파에게
는 무서움과 적의(敵意)를 품게 하였다. 쉬이에파의 박사들은
맹렬히 그분을 공격하고 파르쓰지사(知事)로서 광포한 전제자
인 호세인 칸에게 그를 이단자로써 탄압하도록 설득하였다. 그
리하여 바압께서는 여러번 잡혀 와서 감금, 추방, 심판, 태형,
모욕 등 온갖 박해를 당하시게 되어, 그 박해는 1850년 바압께
서 마침내 순교하심으로써 끝났다.
바압의 주장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으로써, 그리고 다시 더 나아가서
이 젊은 개혁자가 자기를 모하멧의 예언에 있는 메흐디라고 자
칭함으로써 적의(敵意)는 더 한층 격렬해졌다. 쉬이에파의 신
도들은 약 천년 전에 이상하게 자취를 감춘 제 12 에맘4)을 이
메흐디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이 에맘이 아직도 생존해 있어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에 의하여 통치와 정
복과 국위발양(國威發揚)이 훌륭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 예
언을 물질적 의미로 해석하여 그 출현의 표징이 나타날 것을 믿
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유대인들이‘구세주’의 출현의 예언을
그와 같이 해석한 것과 같다. 그들은 메흐디가 지상의 주권(主
權)을 가지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타나서 그가 계시자임을
선언할 뿐 아니라 죽은 육체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적인 표징이 나타나지 않
았으므로 쉬이에파의 신도들은 극심한 모욕으로써 바압을 배척
하였다. 그것은 마치 유대교가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과 같다.
4. 쉬이에파의 에맘은 전 신도가 복종해야 하는 모하멧의 후계자로서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다.
12인이 대대로 에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최초의 에맘은 모하멧의 종제(宗弟)이자 사위인 알리였다.
제 12대의 에맘은 쉬이에파의 신도들에 의하여 에맘 메흐디라고 불리웠다. 그들은 에맘 메흐디가 죽
은 것이 아니라 다만‘헤쥬라트’기원329년에 지하도(地下道)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뿐이니 때가 오
면 그가 다시 와서 불신앙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고 행복한 시대를 오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편 바압의 신도들은 이 예언의 대부분을 비유적인 것
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갈릴리의‘슬픈 사람’과 마찬가지로‘약속된 분’의
주권을 신비한 주권으로 해석하여 그분의 영광은 물질적인 것
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광이며, 정복이란 것은 인간 정신의 정복
이라고 믿었으며, 그들은 바압의 놀라운 생애와 가르침, 흔들리
지 않는 신앙과 굳은 정신, 과오와 무지에 파묻힌 사람들을 깨
우쳐 정신생활의 새 삶으로 끌어올리는 신비스러운 힘을 보고
바압의 주장이 틀림없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바압께서는 자신이 메흐디라고 주장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더
나아가서 녹테 올라, 즉‘최초의 점’이라는 성스러운 칭호를 쓰
기도 하셨다. 이 칭호는 모하멧께서 그분의 신도에게서 받으신
것으로서, 에맘이라고 불리우는 자들도 이‘최초의 점’으로부
터 영감과 권위를 받은 것이라고 믿어 온 것이니, 이 칭호를 씀
으로써 바압께서는 자신을 모하멧과 동등한 위대한 종교 창시
자의 지위에 견준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써 쉬이에파의 신도
들은 그분을 협잡꾼으로 간주했으나 이것은 그분 이전의 현시
자들인 모세와 그리스도께서도 협잡꾼으로 몰린 것과 같다. 그
분은 또 역서(曆書)를 고쳐 태양력(太陽曆)을 채용하고 그분
자신이 선언하신 해를 신시대의 기원으로 하셨다.
박해가 더욱 심해짐
바압의 이러한 선언과 빈부귀천, 그리고 유식무식의 모든 계급
의 사람들이 놀라운 속도로 그분의 가르침에 열심히 따른 결과
로써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다. 신도들의 재산은 약탈 파괴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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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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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부녀자들은 잡혀서 끌려갔다. 테헤란, 파르스, 마젠다란, 그 밖의
각지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많은 사람이 단두(斷
頭), 교수(絞首), 혹은 대포구멍에 놓여 폭격되고, 혹은 불속에
던져지고, 또 혹은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진전되었다. 아니, 이와 같은 탄압
을 통하여 신도들의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그것은, 이 탄압에
의하여 메흐디의 출현에 관한 예언 중의 많은 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쉬이에파가 권위를 인정하는 쟈베르
에 의하여 기록된 전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분에게는 모세의 완전과 그리스도의 존귀와 욥의 인고(忍
苦)가 있을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시대에 천대를 받
을 것이다. 터키인과 데일라미트인들이 선물로 교환됨과 같이
그들의 머리는 베어져서 선물로 교환 될 것이다. 그들은 목이
베어지고 불에 타서 죽어 공포와 전율 속에 대지는 그들의 피
로써 물들일 것이요, 부녀자는 모두 울부짖을 것이다. 진실로
그들은 나의 성자(聖者)들이다.”
--- E. G. 브라운 교수 번역‘바압의 새 역사’132쪽
바압의 순교
1850년 7월 9일5) 바압께서 31세 되시던 때, 그분은 마침내
포학한 박해자의 분노의 희생이 되셨다. 그분과 순교를 같이 하
기를 애원한 아가 모하멧 알리라는 소년과 함께 타브리즈 병영
(兵營) 안에 있는 사형대에 끌려가셨다. 그날 정오 2시간 전에
모하멧 알리의 머리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 바압의 가슴에 기대
이게 두 사람은 겨드랑 밑으로 동아줄에 묶여 벽에 매달렸다.
5.‘헤쥬라트’기원 1266년 샤아반월 28일 금요일
아르메니아 병사의 1대가 총살 명령을 받아 곧 일제 사격이 집
행되었다. 그러나 총탄 연기가 사라진 뒤 바압과 그분의 제자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탄은 다만 동아줄을 끊었을 뿐이
요, 두 사람은 부상도 입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들의 친구 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
었다. 정오경에 두 사람은 다시 묶여 매달렸다. 아르메니아 병
사들은 사격의 결과가 이와 같이 이상하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놀란 나머지 다시 사격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병사
의 1대가 새로 와서 명령을 받고 발사하였다. 이번에는 총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신체는 많은 총알이 관통
하여 무참하게 상하였으나 얼굴에는 별로 손상된 곳이 없었다.
무도한 이 행위에 의하여 타브리즈의 영정(營庭)은 제 2의 골
고다가 된 것이었다. 바압의 적들은 이 죄 많은 승리에 기뻐하
였다. 미워하던 바비교의 나무가 줄기 째 꺾여졌으니 나머지 무
리들을 일소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
들의 승리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저들은 진리의 나무가
인공의 도끼로써 쉽게 꺾여질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죄악행위가 바압의 운동에 보다 큰 힘을 주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저들이 알았더라면 어떠하였을까. 바압의 순교는 그분의
소원을 성취한 것이었고, 뒤에 남은 신도들에게는 감격과 열정
(熱情)을 더하였다. 그들의 정신적 정열이 이와 같이 격렬하였
으므로 박해의 냉혹한 바람은 도리어 그 정열에 부채질하여 탄
압이 가해질수록 불꽃은 더욱 더 높이 충천할 뿐이었다.
25
제 2 장 선구자 바압
칼멜산 위의 무덤
바압께서 순교하신 후 그분의 시신은 그분의 헌신적인 제자의
시신과 함께 타브리즈 성 밖의 못 가에 버려졌다. 다음 날 깊은
밤 신도들은 두 분의 시신을 몰래 건져 여러 해 동안 페르시아
국내의 비밀한 곳에 감추어 모셔두었다가 비상한 위험과 곤란
한 가운데 최후에는 성지에 운반되었다. 성지의 엘리야 동굴에
서 멀지 않은 칼멜산 중턱의 아름다운 산경(山景)을 등진 곳에
쌓아진 무덤에 그들 두 분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여기는 바하올
라께서 최후의 몇 해를 지내신 곳이며, 또 그분의 영묘가 있는
곳에서 2~3마일 되는 지점이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영묘(靈
廟)를 찾아 세계 각지로부터 모여드는 많은 순례자들은 바하올
라의 헌신적인 사랑의 표적이요, 또한 선구자인 바압의 영묘에
참배할 것을 누구나 잊지 않는다.
바압의 저서
바압의 저서는 매우 많다. 그분은 연구하거나 사색함이 없이
신속하게 훌륭한 주석과 뜻 깊은 해설과 웅변적인 기도를 많이
쓰셨는데, 이러한 저술들은 모두 그분의 영감에서 이루어진 증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분의 여러 가지 저서의 근본 되는 뜻을 요
약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이들 바압의 저서의 어떤 것은 코란의 여러 절의 주석과 해
설, 혹은 기도와 설교와 문의(文義)해석의 암시요, 어떤 것은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교의(敎義)의 여러 점에 관한 훈계
와 경고와 강화(講話)들이다. 그리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 세
속의 나쁜 습관을 버리는 일, 하느님의 영감에 의탁할 것을 권
26
바하올라와 신시대
장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분의 저서의 가장 중요한 취지의
요점은 그분의 유일한 목적이요 소원인, 불원에 세상에 나타날
‘실재’(實在)에 대한 서술이요 예찬이었다. 그 까닭은, 그분은
자기가 출현한 것이 오로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구자요, 그
분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다만 저‘장차 오실 분’의 보다 큰 완
성의 현시를 위한 중간 역할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바압께서는 밤낮‘그분’을 예찬하셨을 뿐 아니라
신도들에게‘그분’의 출현을 기다리라고 뇌이어, 그분은 이것
을 저서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즉, 나는 다만 이
가장 강력한 책의 한 글자요, 무변대해의 한 방울의 물에 불과
하다. 그리고‘그분’이 나타나실 때 비로소 나의 진정한 본성
과 비밀과 수수께끼와 암시, 이 모든 것이 분명히 알려질 것이
다. 그리고 또 이 종교의 싹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점차 발전하
여‘형상이 가장 아름다운’경지에 도달하여,‘가장 훌륭한 창
조자이신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 진저’하는 찬미의 법의(法衣)
로써 장식될 것이라고........ 그렇게도‘그분’의 불꽃에 타고
있었으므로 그분이 마쿠의 요새(要塞)에 감금되셨을 때 어두운
밤의 등불은 진실로 장차 오실‘그분’인 바하올라에 대한 축하
의 불꽃이었으며,‘그분’에 대한 생각은 췌흐리끄의 감옥에서
고난에 잠겨있는 그분에게 가장 좋은 위안의 벗이었다. 이것으
로써 그분은 정신이 왕성해지고‘그분’의 향기로운 술에 황홀
히 취하며,‘그분’을 생각함으로써 무한한 기쁨을 느끼신 것이
었다.”---‘바압의 에피소드’54쪽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바압 그분은 세례 요한에 비유되기도 하였으나 그분의 지위는
27
제 2 장 선구자 바압
단순한 선구자나 전조로서의 그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바압
께서는 그 자신이 하느님의 현시자여서 그 종교가 비록 시간적
으로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 할지라도 그분은 하나의 독립된 종
교의 창시자이셨다. 바하이들은 바압과 바하올라께서는 바하이
신앙의 공동 창시자임을 믿고 있으며,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이 진리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 가장 강력하고 경이에 찬 계시와 그것에 앞선 현시자와
의 사이에 그처럼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밝힐
수 없는 신비요, 어떠한 지혜로써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것이 계속하는 기간은 미리 정해진 것이었으나 나의 감추어
진‘글’의 내용이 알려지기 전에는 누구나 그 까닭을 모를 것
이다.”
그러나 바압께서 바하올라에 관하여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오
로지 겸허한 마음으로 하셨으니, 즉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듣고 그
것을 암송하는 자는 바얀(즉 바압의 계시)을 천독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바압의 에피소드’349쪽
그분은 자기가‘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을 위하여 조금이라
도 그 통로를 닦을 수 있다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참는 것을 행
복으로 생각하셨다. 그리하여 장차 오실‘그분’이야말로 자기
의 사랑의 유일한 대상이요, 또한 영감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선
언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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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부활, 천당, 지옥
바압의 가르침의 주요한 부분은 부활, 심판의 날, 천당과 지옥
등의 용어에 관한 그분의 설명이다. 부활이란‘진리의 태양’의
새 현시가 나타남을 의미하는 것이니, 죽은 자의 부활이란 무지
와 무사려와 욕정(欲情)의 무덤 속에 잠든 사람들이 정신적으
로 각성하는 것이다. 심판의 날이란 것은‘새 현시자의 날’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여부에 따라서 양과
염소가 구별되는 것이니, 양은 착한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고 그
를 따르는 것이다. 천당이란 것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계
시된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사랑함에 이르는 기쁨을 말하
는 것이니, 그것으로써 될 수 있는 한 최상의 완전에 도달하여
사후에‘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의
미한다.
그분은 결정적으로 이러한 용어는 위에 말한 해석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물질적인
천당, 지옥, 육체의 부활 등의 관념은 단지 상상에서 생긴 것이
라고 하셨다. 그분은, 사람은 사후의 생활이 있고, 내세에 있어
서의 완전으로 향하는 진보는 무한하다고 가르치셨다.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바압께서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신도들
은 서로 형제자매의 애정과 친절을 가져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
어야 한다. 유익한 기술과 공예(工藝)는 더욱 더 연구되어야 하
고, 초등교육은 일반에게 보급되어야 한다. 지금 시작되는 새롭
고 훌륭한 시대에 있어서는 부인들은 더 충분한 자유를 누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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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한다. 빈곤한 사람은 공공창고(公共倉庫)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
이나 빌어먹는 일은 술을 음료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
금되어야 한다. 그리고 참다운 바비의 지도의 동기(動機)는 순
진한 사랑이어야 한다. 보수를 바라거나 벌을 무서워서 하는 일
이어서는 안 된다. 바얀 가운데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에 대한 예배가 비록 불로써 갚아지더라도 변함없이
하느님을 예배하라. 하느님이 무서워서 예배한다면 그는 하느
님의 성역(聖域)에 들어갈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네가 천당을 희망하여 거기를 향하여 예배한다면 너는 하느
님의 창조물로서 하느님의 동행자가 되려는 것과 다름없다.”
--- E. G. 브라운교수의‘페르시아의 바비’(영국 아시아 협
회의 기관지 제 21권 931쪽)
수난(受難)과 승리
이 끝절에서, 바압의 전 생애를 약동케 한 그 정신을 찾아보
기로 한다. 하느님을 인식하고 또 사랑하고 하느님의 속성을 나
타내고 장차 오실 하느님의 현시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 -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분의 생존의 전 목적이요 소원이셨다. 그
분에게는 사는 것도 걱정될 것이 없었고, 죽는 것도 두려울 것
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두려운 것을 없이하고 순교는 다만
사랑하는 하느님의 발 앞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
이다.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 이 하느님의 진리의 영감에 찬 교
사, 이 하느님과 동포를 열애하는 분이 그렇게도 미움을 받아
그 시대의 이른바 신앙심을 가졌다는 자들의 손에 순교하셨다
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닌가. 이것은 확실히 무사려와 완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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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이 참으로 예언자요, 성스러운 하
느님의 사자인 사실에 눈이 어둡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분은
세속적인 위대성과 영예를 가지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속세의 원조를 받음이 없이 가장 포악한 속세의 반대를 넘어서
승리를 얻을 능력이 없고서야 어찌 정신적 위력과 지배를 증명
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극도의 고난과 많은 적들의 증오와 거짓
친구의 간사한 흉계를 참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여, 낙망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도리어 저들을 용서하고 축복해 주는 능력
을 갖지 않고서야 어찌 이 불신앙의 세계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인가.
바압께서는 모든 고난을 참고 받아들이셨다. 그리하여 승리하
셨다. 수천의 신도는 자기의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함으로
써 그분에 대한 저들의 사랑을 실증하였다. 여러 왕들은 사람들
의 마음과 생명에 미치는 그분의 위력을 미워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이 마침내 나타나셔서 그분의
주장을 확인하시고 자신의 선구자로서의 헌신을 받아들여 바압
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의 동반자로 삼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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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선구자 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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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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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그대, 이제 그만 기다려라. 그분이 이미 오셨나니. 보라, 그
분의 성전과 그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을. 그것은 새로운 현시
로써 온 고래의 영광이니라. --- 바하올라
탄생과 유년시대
미르자 호세인 알리, 후에 바하올라6) (하느님의 영광)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페르시아의 대신인 누르 주 출신 미르
자 압바스의 장남이셨다. 그분의 집은 부유한 명문으로서 그 일
가에는 문무관(文武官)의 높은 지위에 있는 이가 많았다. 그분
은 1817년 11월 12일7) 페르시아의 수도 테헤란에서 탄생하셨
다. 그분은 가정에서 얼마의 교육을 받았을 뿐이요, 학교 교육
이라고는 받으신 일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어
렸을 때부터 놀라운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이 아직
젊었을 때 그분의 부친은 타계하시고 막대한 재산의 관리와 동
생들의 보호의 책임을 지게 되셨다.
어느 때 바하올라의 장남인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부친의 유
년 시대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6. 제 2, 제 4의 음절에 액센트가 있다.
7.‘헤쥬라트’기원 무하람월 2일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어릴 때부터 그분은 성질이 대단히 친절하시고 관대하셨다.
그분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셨고, 화원이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사람을 끄는 비상한 힘을 가지
시어 누구나 그것을 느꼈고 그분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
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신과 궁정(宮廷)관리들이 그분에게
친근해지고 아이들도 그분을 매우 좋아하였다. 겨우 십 삼, 사
세 때에 그분의 박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분은 어떠한 문제
에 대해서도 답변 할 수 있었고, 어떠한 문제가 제기되든지 그
것을 규명하시고 해결하셨다. 큰 모임에서 그분은‘올라마’(이
슬람교의 교사)들과 토론하시고 종교상의 어려운 문제에 대하
여 해설하기도 하셨다. 모든 사람은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그
분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바하올라께서 22세 되
셨을 때 그분의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시매, 정부는 그때의 관
례에 의하여 바하올라께 부친의 관직을 승계할 것을 명했으나
그분은 이것을 사양하셨다. 당시의 총리대신은 이것을 평하여
‘그의 뜻대로 하게 하라. 그런 관직은 그에게는 가치 없는 것
이다. 그는 보다 높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으나 그는 확실히 어떤 높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생각하는 바가 우리네와는 다르다. 그의 뜻대로 하게 하
라.’고 말했다.”
바비로서 감옥에서 갇힘
바압께서 1844년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을 때, 바하올라께
서는 27세이셨는데 그분은 대담하게 이 새로운 신앙의 대업에
동참하셨고, 얼마 안 되어 가장 유력하고 용감한 제창자로서 알
려지게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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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그분은 이 대업을 위하여 두 번이나 감옥에 갇히셨는데 한 번
은 발 때리는 고문을 받으셨다. 그것은 1852년 8월 바비교도에
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사건이 돌발했을 때였다. 사데크라는
바압의 한 청년신도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의 순교를 목격하고
통분한 나머지 마침내 바른 길을 벗어나서 복수하기 위하여 길
에 잠복했다가 총으로 황제를 쏘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 탄환
이 아니고 산탄(散彈)을 장전했던 관계로 몇 발의 작은 탄알이
명중하였으나 대단한 상해는 없었다. 청년은 말을 탄 황제를 끌
어내렸으나 자신은 잡혀 즉석에서 살해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어 바비의 전 교단(全敎團)은 불법하게도 이 행위의 책임을
지게 되어 80명의 신도가 참혹한 고문 끝에 테헤란에서 학살당
하고, 그 밖의 많은 사람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으니 그중에
바하올라께서도 계셨다. 그분은 후일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의 바른 길에 있어서 짐(朕)이 이 비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는 바로서 짐(朕)의 무죄는 법정
에서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朕)은 체포되어 황제
의 거처였던 니야와란으로부터 테헤란감옥으로 호송되었다. 짐
(朕)은 쇠사슬에 결박된 채 맨발로 걸었다. 말을 타고 우리를
호송하는 악한이 짐(朕)의 모자를 빼앗기도 하면서 많은 형리
(刑吏)와 감시인들이 큰 속력으로써 우리를 몰아갔다. 4개월
동안 짐(朕)은 일찍이 보지 못한 불결한 곳에 감금되어 있었
다. 아무리 비좁고 어두운 토굴이라도 피해자인 나와 나의 동
반자들이 갇혀 있는 이 토옥(土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도착하자 우리는 이 감옥의 입구를 통하여 어두운 복도로 끌
려가서 가파른 세 계단을 내려가 우리에게 정해진 토옥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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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갔다. 토옥은 아주 깜깜하였고, 거기에는 이미 갇혀있는 사람이
150명가량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둑, 살인자, 날치기, 강도들
이었다. 이 감옥에는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있으면서
도 우리가 들어간 문 이외에는 출입구가 없었다. 이곳의 광경과
악취에 대해서는 한입으로 다 말할 수는 없다. 여기 있는 사람
들의 태반은 입을 옷도 누울 거적자리도 없었다. 이 어둡고 더
러운 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이 감옥에서 짐은 밤낮 바비교도의 상태와 행동에 대하여 반
성하였다. 저들의 영혼이 위대하고 심지가 고결하고 총명하거
늘 어찌하여 황제를 살해하려는 흉악한 행위를 감행하였을까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피해자인 짐은 출옥 후에 이들
교도들의 심령개조(心靈改造)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 밤 꿈에 사방에서 영감(靈感)에 찬 말씀이 들려왔다.
‘진실로 내가 그대 자신에 의하여, 또 그대 붓에 의하여 그대가
승리를 얻도록 도울 것이다. 그대가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슬퍼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진실로 그대는 안전하느니라.
멀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보배를 보내 주실 것이니, 그
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이름에 의하여 그분을 인식하고 마음
이 갱신될 것이며, 그들에 의하여 그대는 승리를 얻을 것이니
라.”---‘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
어 번역)에서
바그다드로 추방
이 무서운 감옥생활이 4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바하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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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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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그분의 동반자들은 최대의 행복에 잠겨 태연자약하고 열성
에 넘쳐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그 중의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고문을 당하고 살해되어 남아있는 사람들도 다만 자기의 순번
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형리(刑吏)가 와서 그 중의 한 사
람을 호출하면 그 사람은 기뻐서 춤을 추면서 바하올라의 손에
입 맞추고 다른 신도들을 포옹한 후 조용히 순난(殉難)의 장소
로 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바하올라께서는 국왕반역(國王叛逆)의 음모에 관여
하지 않은 것이 판명되고, 러시아 공사도 그분의 품성이 결백함
을 증언하여 주었다. 그때 바하올라께서는 병에 걸려 매우 위독
한 상태에 계셨다. 그리하여 국왕은 그분에게 사형판결을 내리
지 않고 그 대신 메소포타미아의 이라크로 추방할 것을 명령하
였다. 2주일 후 그분은 가족과 몇 사람의 신자를 데리고 그곳으
로 출발하셨다. 그들은 겨울의 장거리 여행에 추위와 그 밖의
무서운 고난을 겪으면서 극도의 곤궁 속에 바그다드에 도착하
였다.8)
바하올라께서는 건강이 회복되시자마자 구도자의 질의(質疑)
에 응답하여 신자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셨다. 그리하여 바비교
도들에게 다시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게 되었다.9) 그러나 이것
이 오래 계속되지는 못하였다. 소브헤 아잘이라고도 알려진 미
르자 야흐야라고 하는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이 바그다드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이 사람의 비밀한 꾀임에 의하여 신자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점차 커 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분열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 충돌은 (그
8. 1852년 10월 테헤란을 떠나 4,50일 만에 바그다드에 도착하셨다. (아베르에 의함)
9. 1853년 초의 이야기로서 바압의 선언으로부터 9년 후의 일이다. 그리하여 바압의‘9’년에 관한 예
언이 실현된 것이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후 아드리아노플에서 공공연하게 더욱 격렬해졌다.) 세계 인류
의 통합을 이룩하는 것이 인생의 전 목적인 바하올라께는 참으
로 마음 아픈 일이었다.
황야(荒野)에서의 2년
바그다드에 온지 약 1년 후 바하올라께서는 다만 혼자 솔레이
마니예의 거친 들로 단 한 벌의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떠나셨
다. 이 시기에 관하여 그분은‘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
셨다.
“이곳(바그다드)에 처음 왔을 때, 후일 재난이 있을 것을 예
감했으므로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
하여 짐(朕)은 거친 들판에 가서 그곳에서 2년간 쓸쓸히 고독
한 생활을 보낸 것이다. 짐(朕)의 눈에서 고뇌의 눈물이 비오
듯하고 심장에는 고통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 먹을 것이 없는
날도 많았고, 짐(朕)의 몸이 쉴 수 없는 밤도 많았다. 이러한
궁핍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를 그분 두 손에 가지고
계신 하느님께 의지하여 짐(朕)의 영혼은 행복과 기쁨 속에 있
었던 것이다. 짐(朕)은 이 고독한 거처에서 누구의 이해득실
(利害得失)이나 건강이나 질병 같은 것은 염두에 없이 혼자서
세계와 그 일체를 잊어버리고 나의 정신과 문답하였다. 그러나
짐(朕)은, 하느님의 운명의 그물이 인간의 가장 큰 관념을 초
월하는 것이어서 하느님의 명령의 화살이 인간의 가장 대담한
기도(企圖)를 이긴다는 것을 몰랐었다. 하느님께서 놓으신 덫
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하느님의 바른길에 있어서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짐(朕)의 이별은 다시 만날 것을 바라
지 않은 것이었다. 짐(朕)의 귀양살이의 유일한 목적은 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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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사이에 불화의 원인이 되거나 동지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구에
게 해를 입히거나 누구의 마음에 슬픔의 원인이 됨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 밖에는 아무 의도도 목적도 없었다. 그러나
각자는 제각기 자기의 뜻대로 계획을 세우고 각자의 쓸데없는
공상을 따랐다. 그리하여 그것 은 짐(朕)이 온 곳으로 돌아가
라는 신비의 근원(즉 하느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
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짐(朕)은 그 명령에 복종하였다. 짐
(朕)이 돌아온 후에 당한 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 2년
동안 적들이 전력을 다하여 짐(朕)을 없애버리려고 부단히 노
력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이다.”
---‘케타베 이간’251쪽
‘몰라’의 압박
은거지(隱居地)에서 돌아온 후의 그분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그분을 알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
려고 원근 각지로부터 바그다드에 모여 들었다. 유대교도, 기독
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이슬람교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하느님의 계시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몰라’(이슬람
교의 교사)들은 적대 행동을 취하여 그분을 없애버리려고 악착
같이 박해를 가하였다. 어느 때, 저들은 동료 한 사람을 보내어
그분을 면회하여 어려운 문제를 출제케 하였다. 그러나 그 사자
는 바하올라의 대답이 비상히 조리가 서 있고 그것이 분명히 연
구에 의하여 얻은 지식이 아니라 그분의 지혜가 진실로 놀라운
것임을 발견하였으므로, 지식으로써나 이해력으로써나 바하올
라 그분은 세상에 다시없는 인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사자로 보낸‘몰라’들에게 바하올라 그분이 진정
39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한 예언자임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그 증거로써 어떠한 기적을
보여줄 것을 그는 요구하였다. 바하올라께서는 어떤 조건하에
그 요구에 응할 의사를 표하셨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즉, 어떤 기적을 행하는 데에‘몰라’들이 동의하여 그 기
적의 실행을 본 다음 저들은 그분의 사명이 정당함을 고백하고,
그분에게 적대하는 일을 중지하겠다는 증서에 서명 날인한다면
요구대로 증거를 보일 것이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사기죄인이
될 것이라고.‘몰라’들의 목적이 참으로 진리를 원하는 것이었
다면 확실히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저들의 의향
은 그것이 아니었다. 좋거나 궂거나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의 결
정을 얻자는 심산이었다. 저들은 진실에 부닥칠 것이 두려워 이
감연한 도전에서 도피하였다. 그러나 저들의 이 계획의 좌절은,
바하올라의 교단을 전멸시키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계획하는
방향으로 저들을 몰아넣었다. 바그다드에 주재해 있는 페르시
아 정부의 총영사는 저들의 음모에 가담하여 황제에게 많은 보
고를 하였다. 즉, 바하올라는 이전보다 더 한층 이슬람교에 대
하여 위해를 주고 있다는 것, 페르시아 사람에게 일종의 해를
끼치는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를 더 먼 곳으로
추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슬람교의‘몰라’들의 꼬임에 대하여 페르시아정부와 터키
정부가 그분의 운동을 근절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있는 이 위기
에 즈음하여 고요히 신자들을 격려하시며 위안과 지도의, 그 불
후(不朽)의 말씀을 쓰시고 계신 것은 진실로 바하올라다운 일
이었다. 압돌바하께서는 저‘숨겨진 말씀’이 어떻게 이 시대에
씌어졌는가를 말씀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티그리스강가에 산
책하시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셔
40
바하올라와 신시대
서는 수천 사람의 괴롭고 쓰린 마음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는
저 주옥같은 서정시(抒情詩)적인 잠언(箴言)을 쓰신 것이었다.
몇 해 동안은 이‘숨겨진 말씀’의 원고의 사본(寫本) 몇 부가
몰려드는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을 우려하여 조심스럽게 감추
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작은 책이 바하올라의 저서 가
운데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읽을 수 있다.‘케타베 이간’도 또한 널리 알려져 있는 바하올
라의 저서인데 역시 같은 시대, 즉 바그다드 체류의 말경
(1862~1863)에 씌어진 것이다.
바그다드 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여러 가지 교섭이 있은 후 페르시아정부의 요구에 의하여 터
키 정부는 바하올라를 콘스탄티노플로 소환하는 명령을 내렸
다. 이 소식을 들은 그분의 추종자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은 사
랑하는 지도자의 집을 둘러싸고 물러가지 않았으므로 가족들은
부득이 12일 간이나 나집파샤의 정원에 천막을 치고 지냈다.
그동안 먼 길을 여행할 여대(旅隊)가 준비되었다. 이 12일간
(즉 바압의 선언이 있은 후 19년째인 1863년 4월 21일부터 5
월 2일까지)의 첫 날에 바하올라께서는 몇 사람의 신자들에게
자신이 바압에 의하여 예언된 분 - 즉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분, 모든 예언자들에 의하여‘약속된 분’임을 선언하셨다. 이
기념해야 할 선언이 있었던 정원은 후에 바하이 신자들에게‘레
즈완 동산’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하올라께서 이곳
에서 지낸 여러 날을‘레즈완 축제’라고 하여 해마다 이 12일
간을 기념한다. 이 동안에 바하올라께서는 슬픔과 절망의 빛이
없이 도리어 큰 기쁨과 위엄을 보이셨다. 신자들은 기쁨에 넘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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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바그다드의 모든 유력한 사람들과 지사(知事)까지도 이 죄수의
출발에 경의를 표하러 왔었다.
콘스탄티노플과 아드리아노플
콘스탄티노플 여행은 3-4개월이 걸렸다. 가족 12명과 제자
72명으로 된 바하올라의 일행은 이 멀고 먼 여로의 노숙(露宿)
에 비상한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 일
행은 비좁고 더러운 집에 죄수로써 감금되었다. 그 후 조금 나
은 옥사(獄舍)에 들었으나 4개월 후에 다시 아드리아노플로 옮
기게 되었다. 아드리아노플로 가는 길은 며칠 걸리지 않았으나
이 여행은 그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무서운 것이었다. 눈
은 끊임없이 분분히 내리는데 엷은 옷은 헤어지고 먹을 것조차
없어 그 고생이 형언할 수 없었다. 아드리아노플의 첫 해 겨울
에 바하올라와 그분 가족 12명은 아무 설비도 없고 해충이 우
굴거리는 단지 3칸뿐인 조그마한 집에서 지냈다. 봄에 그들은
조금 나은 집으로 옮겼다. 그들은 아드리아노플에 4년 반 이상
이나 있었다. 여기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시 설교를 시작하시어
많은 신자가 그분의 주위에 모이게 되었다. 그분은 널리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바비신도에게 열성으로
써 환영을 받았다. 이때부터 바비들은 바하이로 알려지게 되었
다. 그런데 소수의 바비신도들이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인 미르
자 야흐야의 지휘 하에 바하올라에게 맹렬히 반대하여, 그들은
이전의 적이었던 쉬이에파 교도와 손을 잡아 그분을 없애버릴
것을 계획하였다. 여기에 대혼란이 생겼다. 그리하여 터키 정부
는 마침내 바비와 바하이를 함께 아드리아노플에서 쫓아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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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고, 바하올라와 그 측근자들을 팔레스타인의 악카에 귀양 보냈
다. 역사가 나빌에 의하면 그들은 1868년 8월 31일 악카에 도
착하였다. 한편 미르자 야흐야와 그 일당은 싸이프러스섬으로
추방되었다.
여러 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바로 이때 바하올라께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 원수(元首)와 로
마 법왕, 페르시아 황제, 그리고 아메리카합중국 정부에 저 유
명한 일련의 서한을 보내어 자신의 사명을 전하시고, 진정한 종
교, 정의의 정치, 국제평화의 건설을 위하여 저들이 진력할 것
을 호소하셨다. 페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 가운데 압박받는
바비들을 극력 변소(辯訴)하고 아울러 그들의 박해를 선동하는
자들과의 회견을 요청하셨다. 물론 이 요청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서한을 전한 열렬한 바하이 청년 바디는 잡혀서
불타는 벽돌로 몸을 지지는 무서운 고문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서한 가운데 그분은 자신의 고난과 그 소망을 가장 감동적인 문
장으로써 표현하셨다.
“폐하여, 나는 하느님의 길에서 일찍이 아무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일을 보았습니다. 벗들은 나를 거부하였고 나의 갈
길은 막혔습니다. 안전의 못(池)은 말랐고 위안의 평원은 초토
(焦土)로 화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이 내려졌으며 또 얼
마나 많은 고난이 올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강대하시고
혜택이 많으신 하느님을 향하여 전진하건만 나의 뒤에는 독사
(毒蛇)가 따릅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비오듯하여 침상을 적
시건만 이것이 나를 위한 슬픔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맹세하거
니와 나의 머리는 주의 사랑을 위하여 창검의 난(難)에 맡겼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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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니다. 그리하여 한 나무를 지날 때마다‘너는 내 이름으로 베어
질 것이며 내 몸은 주님의 길에서 그대의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염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인류는 침취(沈醉)하여 길을 잃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들은 욕정(欲情)에 빠져 하느님을 멀리 하고 하느님의 명령
을 오락인 냥 우롱합니다. 그러고도 제 행위가 옳은 줄로만 믿
고 제 자신이 안락성중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사리(事
理)는 저들이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니 저들은 오늘에 거부한
것을 내일에는 보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변경(邊境)의 적소(아드리아노플)에서 다시
악카의 감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악카
는 가장 황막한 벽지로서 외관이 극히 추하고 기후와 수질이
심히 좋지 못하여 사람이 거접할 곳이 못되고, 올빼미의 서울
인냥 들리는 이 다만 그 새소리뿐이라 합니다. 저들은 나를 그
곳에 유폐하여 은사(恩赦)의 문을 막고 생명의 자량(資糧)을
끊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을 마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비록 피로가 나를 쇠약케 하고 굶주림이 나를 거꾸러뜨릴지라
도, 비록 굳은 바위를 침상으로 하고 사막의 야수를 벗하고 있
을지라도 참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맹세하여 당연히 참을 것입
니다. 만물 존재 전의 왕이시며 만민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권
능 안에서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사정 하에 있어서도
나는 하느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총 깊으신
하느님께서 (높이 계시는 하느님이시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성실한 얼굴을, 강력하시고 혜택 많으신 하느님께로 돌리게 하
여주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대답하시고 부른 자에게 가까이 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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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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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하느님께 비나니, 원컨대, 이 어두운 고난으로써 그분의
성자(聖者)들의 몸을 보호하는 방패로 삼으사 칼날과 창끝으로
부터 그들을 방어하게 하여 주십사고.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의
광명이 더욱 밝아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더욱 빛나는 것이니 이
것이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취하신 방법입니
다.”---‘바압의 에피소드’(146-147)
악카에서의 감옥생활
그때의 악카는 터키제국 각지로부터 가장 흉악한 죄인들을 보
내는 감옥 도시였다. 남녀 노소 80명 내지 84명으로 된 바하올
라와 그분 추종자들의 일행은 비참한 해상(海上)여행을 마치고
여기에 도착하여 곧 병영(兵營) 안에 수감되었다. 그 장소는 심
히 불결하고 음산한 곳이었다. 거기에는 침상도 없고 아무 침구
도 없었다. 음식물도 극히 조악하고 부족하였으므로 얼마 후에
참을 수 없는 이 죄수들은 자신들이 식료를 사 올 것을 원하였
다. 처음 몇 일 동안은 아이들이 울기만 하여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말라리아, 적리 등 괴질이 발생하여 겨우 2명을 제외하
고는 동행자 거의 전부가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그들 중 세 사람
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
었다.10) 이 참혹한 감옥생활이 2년간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누
구도 외출할 수 없었다. 다만 네 사람이 매일 엄중한 감시 하에
식료품을 사러 나갈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병영 내의 감금생활 중 외부로부터의 방문은 엄격하게 금
지되어 있었다. 페르시아의 바하이 몇 사람이 사랑하는 지도자
10. 바하올라께서는 사망자 두 사람의 매장 비용을 위하여 자신이 쓰시던 융단을 제공하셨다. 그러나
그 돈은 군인들에게 횡령을 당하고 시체는 땅 구덩이에 던져지고 말았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를 알현하고자 도보로써 멀리 왔으나 성안으로는 한 걸음도 들
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가끔 성 밑 제3호(濠)의 바깥에 있는
들에 나갔다. 거기서는 바하올라께서도 그 창에 용안(龍顔)을
나타내셨다. 그 사람들은 멀리서 그분을 바라보며 울다가 돌아
갔지만 그들은 희생과 봉사의 정열이 더욱 불타는 것을 느꼈다.
속박이 완화됨
이 감옥생활도 조금 완화되는 날이 왔다. 터키 군대가 동원되
어 이 병사(兵舍)를 사용하게 되었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가족
들은 그들만의 한 주택에 옮기고 다른 신자들은 시내의 어느 대
상하숙(隊商下宿)에 수용되었다. 바하올라께서는 이후 7년간
이 집에서 감금 생활을 하셨다. 그분이 유폐(幽閉)되어 계신 작
은 방 가까이에 그분의 가족 남녀 13명이 그럭저럭 큰 고통 없
이 살 수 있었다. 이곳으로 처음 옮겼을 때에는 설비의 불충분
과 음식물, 기타 생활필수품의 부족으로 인하여 비상한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세 개의 방을 더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비교적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병사를 나온 후에
는 외래자의 방문도 허락 되어, 칙령에 의하여 극히 엄격하였던
속박이 때때로, 일시적으로 시행되기는 하였으나, 점차 완화되
었다.
옥문이 열림
감옥생활이 비참의 극에 달했을 때에도 바하이들은 무서워하
거나 동요함이 없이 확고한 신념을 결코 잃지 않았다. 악카의
병사에 갇혀 있을 때 바하올라께서는 신자 몇 사람에게 보낸 편
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무서워하지 말라. 옥문은 열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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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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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 나의 천막은 저 칼멜산 위에 세워질 것이요, 그리하여 무
상의 기쁨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라고. 이 선언은 그분의 추
종자들에게 위안의 대원천이 되었으며 얼마 후에 사실로 실현
되었다. 어떻게 하여 옥문이 열렸는가에 대하여는 그분의 증손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된 압돌바하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농촌 풍경의 아름다움과 푸른 나무가 울창
한 것을 몹시 좋아하셨다. 어느 날 그분은‘나는 9년간이나 초
목이 무성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 농촌은 영혼의 세계요, 도시
는 육신의 세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간접적으로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분이 농촌을 몹시 그리워하시는 걸 알았다. 그리
고 나는 그분의 희망을 실현해 드리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하였다. 당시 악카에 모하멧 파샤 사
프와트 라고 하는 우리의 큰 반대자가 있었다. 그는 마즈라에
라고 하는 큰 저택을 시(市)의 북쪽 4마일 지점에 가지고 있었
다. 그 대저택은 화원과 시냇물에 둘러싸여 매우 좋은 곳이었
다. 나는 파샤를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파샤, 당신은 저 훌륭한
성을 버리고 악카에 와서 살고 있는데’하고 말한즉,‘나는 병
이 있는 몸이므로 도시를 떠날 수 없다. 거기 있으면 쓸쓸하고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당신이 거기
살지 않고 성이 비어 있는 동안 우리에게 빌려줄 수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나의 말에 놀랐으나 곧 승낙하였다. 나는 1
년에 약 5파운드라는 싼 집세로 5년 분을 지불하고 계약하였
다. 나는 곧 사람을 보내어 성을 수리하고 화원을 정리하고 욕
실(浴室)을 만들었다. 그리고‘축복받은 미(美)’11)를 위하여
11.‘쟈말레 무바락’(즉 축복받은 미)란 것은 신자와 벗들이 가끔 바하올라를 부르는 칭호였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마차 한대를 준비하였다.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거기 가서 그
장소를 보려고 결심하였다. 우리는 시(市)를 둘러싼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여러 번 내린 칙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의 관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갔다. 감시하는 병사들이
파수를 보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없으므로 나는 곧게 그 성으
로 갔다. 이튿날 나는 다시 몇 사람의 친구와 관리들과 함께 나
갔으나 성문의 양측에 있는 파수병이 우리를 막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바흐지의 소나무 밑에 테이블을 갖추어 연회를 베풀어
시의 주요한 인물과 관리들을 초대하였다. 저녁에 우리들은 함
께 돌아왔다.
어느 날 나는‘축복받은 미’의 앞에 나아가‘마즈라에에서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차도 한대 준비 하였습니다.’고 여쭈었
다. (당시 악카나 하이파에는 마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분은
‘나는 죄수다.’하면서 그곳에 가시기를 거절하셨다. 후에 다
시 말씀드렸으나 전과 같은 대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세 번 간
원하였으나 역시 거절하셨다. 나는 그 이상 강청 할 수 없었다.
당시 악카에는 세력 있는 유명한 이슬람교도인 쉐이크가 있어
바하올라를 사랑하고 바하올라께서도 그를 사랑하셨다. 나는
쉐이크를 불러 그 사정을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과감한 사람이다. 오늘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면전에 나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두 손을 잡고 그분이 시가를 떠난
다고 약속하실 때까지 그분을 놓지 말고 간청해 달라고. 쉐이
크는 아라비아사람이었다....... 그는 곧 바하올라께 다가가서
그분의 발 앞에 꿇어 앉았다. 그는‘축복받은 미’의 손을 잡아
입 맞추면서‘왜 당신은 시가를 떠나지 않습니까?’하고 여쭈
었다. 바하올라께서는‘나는 죄수’라고 대답하셨다. 쉐이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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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올라와 신시대

  • 1. 머 리 말 1914년 12월,‘압돌바하’를 알현한 일이 있는 친구들과 대 화하기도 하고 또 몇 권의 작은 책자들을 얻어 읽기도 하여 비 로소 바하이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곧 이 가르침의 뜻 깊 음과 권위 있음과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였다. 그것은 내가 지금 까지 접촉한 다른 어느 종교보다도 현 세계의 큰 요구에 충분히 만족하게 합치된다고 생각하였고, 그 인상은 후일의 연구에 의 하여 더욱 깊어지고 확실해졌다. 나는 이 운동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얻기 위해 필요한 문헌을 수집하는데 매우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내가 배워 얻 은 것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려고 생각하였다. 세계대전 후‘팔레스타인’과의 교 통이 회복되자, 나는‘압돌바하’께 편지를 보내면서 본서 9장 까지의 원고를 동봉하여 보냈다. 그에 대하여 나는 사랑 깊은 격려의 답장을 받고, 또 나의 초고(草稿) 전부를 가지고‘하이 파’로 와 달라는 친절한 초청을 받았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 초청에 응하여, 1919년과 20년에 걸쳐 약 2개월 반의 겨울을 ‘압돌바하’의 빈객으로 지내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압돌바하’께서는내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 여러 기회에 걸쳐 본서에 관하여 말씀해 주셨다. 본서의 개선을 위하여 나에게 중 요한 암시를 주셨고, 또 내가 원고를 수정하면 그것을 전부 페 르시아어로 번역시켜서 자신이 그것을 통독하여 필요한 곳을 수정하고 첨삭하도록 제의하셨다. 이 제의대로 수정과 번역이 1
  • 2. 진행되어,‘압돌바하’께서는 그 다망한 시간을 할애하시어 그 분 생전에 약 3장 반 (1, 2, 5장과 제 3장의 일부)을 수정해 주 셨다.‘압돌바하’께서 이 초고 전부의 수정을 끝내지 못하여, 본서의 가치를 크게 높이지 못한 것을 나는 심히 유감으로 생각 하는 바이다. 그러나 초고 전부는 바하이 영국 전국신성회의 면 밀한 교정을 받았고, 또 이 신성회에 의하여 출판이 승인되었 다. 나는 여기서‘E. J. 로젠버그’양,‘클로디아 S. 코올스’부인, ‘로트풀라 S. 하킴’선생,‘로이 윌헬름’씨,‘마운트포트 밀스’ 씨 및 그 밖의 여러분들이 본서를 위해 해주신 귀중한 조언에 대하여 충심으로 감사하는 바이다. ‘애버딘’교외‘페어포드 컬츠’에서‘J. E. 엣슬몬트’ 2
  • 3. 229 목 차 제 1 장 기쁜소식 ··················1 역사상 가장 큰 사건 ··············1 변천하는 세계·················3 정도의 태양··················4 ‘바하올라’의 사명···············5 예언의 실현··················6 예언자인 증거·················8 탐구의 곤란··················9 본서의 목적 ·················10 제 2 장 선구자‘바압’ ···············13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 ·············13 초기 생애 ··················15 선언 ····················16 바비운동의 전개 ···············17 ‘바압’의 주장 ················18 박해가 더욱 심해짐 ··············19 ‘바압’의 순교 ················20 ‘칼멜’산 위의 무덤··············21 ‘바압’의 저서 ················22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23 부활, 천당, 지옥 ···············24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24 수난과 승리 ·················2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바하올라’··········27 탄생과 유년시대 ···············27 바비로서 감옥에 갇힘 ·············28 ‘바그다드’로 추방됨 ·············30 황야에 서의 2년 ···············31 ‘몰라’의 압박 ················32
  • 4. 230 ‘바그다드’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33 ‘콘스 탄티노플’과‘아드리아노플’·······34 여러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35 ‘악카’에서의 감 옥 생활 ···········36 속박이 완화됨 ················37 옥문이 열림 ·················38 ‘바흐지’에서의 생활 ·············41 승천 ····················43 ‘바하올라’의 예언자적 지위··········44 ‘바하올라’의 사명 ··············49 ‘바하올라의 저서 ··············51 바하이 정신 ·················53 제 4장‘압돌바하’바하의 종 ············55 탄생과 유년시대 ···············55 청년시대 ··················57 결혼 ····················58 성약의 중심 ·················59 다시 엄중히 감 금됨 ·············60 터키 조사위원회 ···············64 서양 여행 ·················· 65 성지에 귀향 ·················66 전쟁 중의‘하 이파’ ·············68 대영제국의 훈작사 KNIGHT‘압돌바하 압바스’ ··69 만년 ····················69 ‘압돌바 하’의 서거··············70 저서와 강연 ·················72 ‘압돌바하’의 지위 ··············73 바하이 생활의 구현자 ············75 제 5장 바하이란 무엇인가··············77 삶의 영위 ··················77 하느님께 대한 헌신 ··············79
  • 5. 진리탐구 ··················80 하느님께 대한 사랑 ··············82 끊어버림 ··················84 순종 ····················85 봉사 ····················87 교도 ····················87 예의와 존경 ·················89 죄를 덮어주는눈 ···············91 겸손 ····················92 정직과 성실 ·················93 자기 실현 ··················94 제 6장 기 도····················97 하느님과의 대화 ···············97 기도하는 태도 ················98 매개자의 필요 ···············100 기도는 꼭 필요하고의무적인 것임 ·······101 회중기도 ··················102 기도는 사랑의 말이다 ············103 재난에서의 해방 ··············104 기도와 자연법칙 ··············106 바하이의 기도 ···············107 제 7장 건강과 치유 ················111 육체와 영혼 ················111 모든 생명의 일체성 ·············111 단순한 생활 ················112 알콜과 아편 ················113 향락 ····················113 청결 ····················114 예언자의 명령에 복종하는 효과 ········114 의사로서의 예언자 ·············116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116 231
  • 6. 비 물질적 방법에 의한 치료 ·········118 성령의 힘 ·················120 병자의 태도 ················120 치병자 ···················122 사람은 어떻게 서로 도울 것인가 ·······124 황금시대 ··················125 건강을 바르게 쓰는 법 ············125 제 8장 종교의 융합 ················127 19세기의 종파주의 ·············127 ‘바하올라’의 전언傳言 ···········128 인간성은 변화할 수 있는가 ··········129 융합에로의 첫 걸음 ·············131 권위의 문제 ················132 점진적 계시 ················133 예언자들의 확실성 ·············135 지고의 현시 ················137 새로운 정세 ················138 바하이 계시의 충만 ·············139 바하이 성약 ················140 직업적 성직자가 없음 ············143 제 9장 참다운 문명 ················145 종교는 문명의 기초이다 ···········145 정의 ····················146 정부 ····················147 정치상의 자유 ···············150 통치자와 국민 ···············151 임명과 승진 ················152 경제 문제 ·················153 공공재정 ··················154 자발적 분배 ················154 모든 사람은 일해야 한다 ···········155 232
  • 7. 부의 윤리 ·················156 산업상의 노예를 인정하 지 않음 ·······157 유산과 상속 ················159 남녀 평등 ·················159 여성과 신시대 ···············161 폭력수단 을 피할 것 ·············162 교육 ····················163 천성의 선천적 차이 ·············164 품성의 훈련 ················165 예술, 과학, 기술 ··············166 범죄자 다루기 ···············166 신문의 힘 ·················168 제 10장 평화에 이르는 길 ·············169 갈등과 협조 ················169 최대의 평화 ················170 종교적 편견 ················171 인종적 및 애국적 편견 ············173 영토적 야심 ················174 세계어 ···················175 국제연맹 ··················178 국제중재 ··················180 군비제한 ··················181 무저항 ···················181 정의의 전쟁 ················183 동서양의 융합 ···············184 제 11장 여러 가지 계율과 교훈 ···········187 수도원 생활 ················187 결혼 ····················188 이혼 ····················189 바하이력 ··················190 신성회 ···················191 233
  • 8. 축제 ···················194 단식 ····················195 집회 ····················196 19일 축제 ·················198 ‘마슈리꼴 아즈카르’ ············198 사후 의 생애 ················200 천국과 지옥 ················202 두 세계의 일체성 ··············204 악은 실재하지 않음 ·············207 제 12장 종교와 과학 ···············209 충돌은 잘못해서 생김 ············209 예언자들의 수난 ··············210 조화의 새벽 ················212 진리탐구 ··················213 진정한 불가지론 ··············214 하느님에 대한 인식 ·············215 하느님의 현시자 ··············216 창조 ····················217 인류의 계통 ················219 육체와 영혼 ················220 인류의 일체성 ···············222 융합의시대 ·················223 제 13장 바하이 대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예언 ····225 234 바하올라와 신시대
  • 9. 제 1 장 기 쁜 소 식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된 분이 오셨다. 모든 민족과 모든 공동체들은 계시를 기다려 왔고, 바하올라, 그분은 전 인 류의 으뜸가는 교사요 대 교육자이시다. --- 압돌바하 역사상 가장 큰 사건 우리가 지금 과거의 기록을 더듬어‘인간 진보’의 역사를 연 구해 본다면 인류를 진보시켜 준 선각자들이 여러 시대를 통하 여 그 시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관념보다 훨씬 앞선 점을 인식하여 그때까지 인류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진리의 발견자, 계시자로서 그 당시 사람들을 지도해 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 발명가, 개척자, 천재, 예언자 - 주로 이러한 사람들 에 의하여 이 세계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알라일은 다 음과 같이 말했다. “아주 분명한 사실, 나는 이것을 이렇게 생각한다........ 하 나의 보다 높은 지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은 정신적 진리 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갖지 않은 열 사람보다 만 사람보다, 아 니, 그것을 갖지 않은 모든 사람보다도 강하다........ 그가 만 인 위에 뛰어남이 마치 천검(天鈐)을 가진 영묘(靈妙)한 천사 3 제 1 장 기쁜소식
  • 10. 4 바하올라와 신시대 의 모든 권력에는 어떠한 방패나 철성(鐵城)으로도 대항할 수 없음과 같다.”---‘시대의 징조’에서 과학, 예술, 음악의 역사에서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많은 설 명 자료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종교상의 위대한 인물과 그의 사명이 지극히 중대한 의의(意義)를 가진 것만큼 명확한 사실 을 다른 어떤 부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고래로 어느 시대에 나 사람들의 정신생활이 타락하고 도덕이 부패해지면 신비스럽 고 놀라운 인물, 즉 예언자가 출현하는 것이다. 그는 다만 혼자 서, 자기를 이해해 주는 자도 없고 교도하여 주고 책임을 함께 하는 자도 없이 마치 장님무리 가운데 단 한사람의 눈뜬 자와도 같이, 다만 혼자서 전 세계를 향하여 정의와 진리의 복음을 선 포하는 것이다. 예언자 중에는 특별히 탁월한 분들이 있다. 몇 세기마다 하느 님의 위대한 계시자 - 크리슈나, 조로아스터, 모세, 그리스도, 모하멧과 같은 분들이 동양에서 마치 정신적인 태양처럼 나타 나서 사람들의 어두운 정신을 빛내고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 어 깨워주셨다. 이러한 종교 창시자들의 위대성(偉大性)을 비 교하여 말함에 있어서 그 견해를 달리하는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인류의 교육에 있어서 그분들이 가장 강력한 요소(要素)로 작 용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예언자들은 모두 선언하셨다. 즉, 자신들의 말은 자기들 자신의 말이 아니 라 자기들을 통해 내려온 계시요 성스러운 메시지이고, 자기들 은 그것을 세상에 전파하는 자라고. 기록에 남아 있는 그분들의 말씀 가운데는 반드시‘때가 오면’위대한 세계의 지도자가 출 현하리라는 암시와 약속이 많다. 그리고 그 지도자는 저들의 성 업(聖業)을 완성하여 거기에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하여 나타나
  • 11. 는 것이라고. 그분에 의하여 지상세계(地上世界)는 평화와 정 의의 통치를 완성하여 모든 종족, 종교, 국가, 민족은 하나의 큰 가족을 이루어‘하나로 뭉쳐서 한분의 목자에 의하여 양육될 것이요’, 모든 사람은‘지극히 하찮은 자로부터 가장 위대한 자 에 이르기까지’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말세의 이 위대한‘인류의 교육자’가 도래하는 날이야 말로 참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하 이신앙은 그 대교육자가 이미 실제로 출현하셨으며 계시가 전 해지고 기록되어서 진실한 구도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고,‘주 의 날’이 벌써 밝아서‘정도(正道)의 태양’이 떠올랐다는 기쁜 소식을 전 세계에 선언하고 있다. 이 영광스러운 광륜(光輪)을 본 자는 산꼭대기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그러나 이 광선 은 이미 하늘과 땅을 비치고 있으니 머지않아 산을 넘어 떠오를 것이요, 그리하여 평원과 골짜기까지 전력으로 비치어 전 인류 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지도할 것이다. 변천하는 세계 19세기로부터 20세기 초기에 걸쳐 세계가 낡은 시대의 죽어 가는 단말고(斷末苦)와 새 시대를 낳는 진통(陣痛)의 기간을 겪고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유물주의(唯 物主義), 이기주의(利己主義)와 같은 묵은 사상과, 낡은 종파 적, 애국적인 편견과 증오는 그것들 자체가 쇠퇴함에 따라 점차 그 면목이 희미해지고, 모든 나라에는 새로운 신앙과 인류애(人 類愛), 국제주의와 같은 새로운 정신이 일어나 낡은 질곡(桎梏) 에서 벗어나고 묵은 경계선을 넘으려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 5 제 1 장 기쁜소식
  • 12. 찍이 보지 못한 큰 세력으로써 혁명적인 변화가 인간생활의 모 든 분야에 일어났다. 그러나 낡은 시대가 아직도 완전히 쇠멸한 것이 아니어서, 그는 다가오는 새 시대와 죽느냐 사느냐의 싸움 을 하고 있다. 거기에는 거대한 무서운 폐해가 생기고, 그것들 은 새 힘과 새 희망이 일어남으로 말미암아 그 정체가 폭로되어 조사를 받고 공격을 당하고 있다. 어두운 구름은 몽롱하게 무서 운 광경을 나타내고 있으나 빛은 그 구름을 뚫고 향상(向上)의 길을 비치어 앞길을 막는 장애물과 함정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18세기는 이와 달랐다. 당시는 정신적, 도덕적 생활의 암흑시 대여서 빛이 비칠 틈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여명(黎明) 직전의 어둠으로서, 간신히 흘러나오는 등불 빛이 있기는 해도 그 암흑을 비칠만한 힘이 없었다. 카알라일은 그의‘프레데릭 대왕전’에서 18세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 없었던 시대, 역사를 가질 수 없는 시대, 일찍이 보 지 못한 거짓이 충만했던 시대, 거짓이 너무 많아서 그것을 깨 닫지 못한 시대, 부정(不正)이 제멋대로 날뛰어 병이 고황에 들었던 시대, 이와 같이 악이 쌓이고 쌓인 결과로 마침내 프랑 스혁명이 그것에 종말을 지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러 한 시대에 당연한 결말이 온 것을 감사한다. 사람의 자식들이 꼬리 없는 원숭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또 한번 하느님의 계 시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프레데릭 대왕전’제 1권 제 1장 이 18세기 시대에 비하면 현대는 마치 암흑 후의 서광시대요 엄동 후의 양춘시대로서, 세계는 새 생명에 약동하고 새 이상과 새 희망에 불타고 있다. 몇 해 전까지는 불가능한 공상으로 보 6 바하올라와 신시대
  • 13. 이던 것이 지금은 사실로 성취되었고, 몇 세기 후의 일로만 생 각되었던 일이 이미 실제문제로서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는 하 늘을 날아다니고 바다 밑을 잠항하게 되었으며, 전광(電光)의 속도로 전 세계에 통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불과 몇 해 사이 에 대 군국주의가 거꾸러지고 여성들은 종래에 하지 못했던 직 업에 종사하게 되었으며, 국제연맹이 탄생하고, 그 밖의 기적과 같은 여러 가지 사실들을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정도(正道)의 태양 세계에 넘쳐흐르는 이 급격한 각성의 원인이 무엇인가? 바하 이는 이것을, 지금으로부터 약 1세기 전 페르시아에서 탄생하 시어 19세기 말엽에 성지(聖地)에서 세상을 떠나신 예언자 바 하올라를 통하여 이루어진, 성령(聖靈)의 크나 큰 발로(發露) 에 의한 것이라고 믿는다. 태양이 자연계에 광명을 주는 존재인 것 같이 예언자, 혹은 ‘하느님의 현시자’는 정신계에 광명을 가져오는 존재라는 것을 바하올라께서는 가르치셨다. 물질적 태양이 지상세계를 비치어 물질유기체(物質有機體)를 성장, 발육시킴과 같이 하느님의 현 시자를 통하여 진리의 태양은 마음과 영혼의 세계를 비추어 인 간의 사상과 도덕과 성격을 교육한다. 자연계의 태양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고 그늘진 구석까지 침투하여 태양을 보지도 못한 생물에게까지 열과 생명을 주는 힘이 있음과 같이, 성령의 발로 는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모든 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 고, 예언자의 출현은 봄이 다시 돌아옴과 같아서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 새 생명을 불러일으키는‘부활의 날’인 것이다. 그리하 여 하느님의 종교의 실체가 갱신되고 재건되어 거기에‘새로운 7 제 1 장 기쁜소식
  • 14. 하늘과 땅’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계에 있어서는 봄이 생물에게 새 생명의 생장과 각성을 줄 뿐 아니라 노쇠하게 만드는 요소를 파괴하여 쫓아버 린다. 꽃이 피게 하고 움이 트게 하는 태양의 힘은, 동시에 또한 죽어서 무용하게 된 물건을 썩어 없어지게 한다. 그리고 굳은 얼음을 깨뜨리고 쌓인 눈을 녹이며 홍수와 폭풍을 일으켜 지상 을 청소한다. 영적(靈的)세계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정신적 태양의 광명은 동일한 동요(動搖)와 변화를 정신세계에 일으킨 다. 그리하여 부활의 날은 또한 심판의 날이기도 한 것이다. 부 패와 진리의 모방, 그리고 무용한 낡은 관념과 좋지 못한 관습 은 버림을 받고 멸망을 당하는 것이니, 겨울 동안에 쌓이고 쌓 였던 편견과 미신의 어름과 눈이 풀리고 오래 얼어붙었던 세력 이 홍수처럼 넘쳐흘러서 이 세계를 갱신케 하는 것이다. 바하올라의 사명(使命) 바하올라께서는 분명히, 그리고 거듭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이 전 인류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교육자 요 교사이며, 이전의 모든 하느님의 은총의 발로(發露)를 초월 한 신비스러운 은총의 수로(水路)가 되어, 그 도도한 흐름 속에 마치 모든 냇물이 바다에 흘러 들어감과 같이 종래의 여러 가지 형태의 종교가 융합될 것이라고. 그리고 이전의 예언자가 말씀 하시고 시인이 노래한 바와 같이 전 인류의 선량한 의사가 소통 하여 전 세계가 통합되고 지상에 완전 평화의 황금시대가 이루 어질 확고한 주춧돌을 놓았다고 하셨다. 진리의 탐구, 인류의 일체성, 종교와 종족과 국가와 동서양의 8 바하올라와 신시대
  • 15. 통합, 종교와 과학의 조화, 편견과 미신의 근절, 남녀 평등, 정 의와 정도의 확립, 최고 국제재판소의 설치, 언어의 통일, 지식 의 의무적 보급, 그 밖의 여러 가지 가르침은 지금으로부터 약 백 년 전에 바하올라의 붓으로 계시되어 많은 서적과 서한에 기 록되어 있고, 그 중 몇 가지 사항은 세계의 제왕과 지배자들에 게 보낸 서한에도 씌어 있다. 그 범위와 내용이 지극히 광대하고 심오한 그분의 계시는 참 으로 놀랍게도 시대의 요구와 목적에 합치되어 있다. 현대처럼 크고 복잡하고 새로운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했던 시대가 없었 고, 현대처럼 많은 해결 방책이 제시되면서도 그것들이 모순에 가득 차 있던 시대가 없었으며 현대처럼 기대가 일반적인 때도 없었을 것이다. 예언의 실현 압돌바하께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지금으로부터 20세기 전에 나타나셨을 당시 유대인들은 모두 그분의 출현을 열망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매 일 열심히‘오 하느님 구세주의 계시를 빨리 내려 주소서’하 면서 기도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태양이 그 서광을 발하기 시 작하자 저들은 그리스도 그분이 구세주임을 부인하고, 그분에 대항하여 몹시 미워한 나머지 그분을 악마라고 불러, 마침내 ‘하느님의 말씀’이요‘하느님의 정신’인 그분을 무참하게도 십 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실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거니와 그 이유는 이러하다. 저들 유대인들은 말하되, 토라의 원전(原典) 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곧 구세주라 함에는 확실한 표징에 의하 9 제 1 장 기쁜소식
  • 16. 여 검증되어야 할 것인데 이와 같은 표징이 없는 이상, 그가 아 무리 구세주라고 주장할 지라도 그는 사기꾼이다. 그 표징 가 운데는 이러한 것이 있다. 즉, 구세주는 세상이 모르는 곳에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자렛 에 있는 그 사람의 생가 (生家)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어찌 나자렛에서 그런 일이 생 길 수 있겠는가? 다음의 표징은 이러하다. 구세주는 쇠 지팡이 로 지배한다 하였으니 그는 반드시 검을 잡고 활동해야 할 것 인데 이 사람은 나무 지팡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조건인 표징은 이러하다. 그는 다윗의 왕좌에 앉아 다윗의 통 치권을 확립해야 할 것인데 이 사람은 왕좌에 앉기는커녕 자기 가 앉을 거적자리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또 토라의 율법을 전부 지켜야 할 것인데 그는 이 율법을 무시하였다. 안 식일의 계율을 깨뜨린 자와 기적을 행한 자와 예언자라고 공언 하는 자는 누구든지 사형에 처한다고 토라의 율법에 명시되어 있는데 그는 안식일의 계율을 깨뜨리지 않았는가. 또 다른 표 징으로는 구세주의 치세(治世)에는 정의가 증진되고 바른 길과 착한 행실이 인간으로부터 동물세계에까지 널리 퍼져서 뱀과 생쥐가 한 굴에서 살고 독수리와 꿩, 새가 한 둥우리에, 사자와 양이 한 목장에, 이리와 양이 한 샘에서 물을 마시게 되어야 할 것인데 부정의(不正義)와 포학한 정치가 그리스도를 학살하도 록 사람들의 마음이 거칠어진 시대가 아닌가. 또 다른 조건은, 구세주가 나타나면 유대인은 번영하여 세계의 모든 나라를 정 복하고 통치해야 할 것인데 그들은 로마제국에 정복되어 무서 운 굴욕과 불운에 울고 있지 않은가. 이러하거늘 어찌 이 사람 이 토라의 경전에 약속된 구세주일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말 하는 것이었다. 10 바하올라와 신시대
  • 17. 유대인들은 이러한 이유로서 진실로 그분이 토라에 약속된 ‘하느님의 정신’임에도 불구하고‘진리의 태양’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토라에 기록된 그 표징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하여‘하 느님의 말씀’을 학살한 것이다. 바하이는 그 해석을 유대인과 는 달리하여, 토라에 기록된 구세주의 표징이란 것은 비유적인 우의(愚意)로써 표현된 것이요,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하느님 의 계시에 의하여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 컨대, 구세주의 통치권의 뜻은, 바하이가 믿는 바에 의하면 짧 은 시일에 멸망하는 나폴레옹의 통치권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 것은 천국적인 신성한 항구(恒久)의 통치권을 말하는 것이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통치는 2천년 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 성스러운 존재자(存在者)는 영원히 불 멸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아닌가. 이와 같은 뜻으로써 다른 많은 표징도 나타났건만 유대인들 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영광을 가지고 나타나신 이래 거의 20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도 구세주가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 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바를 진리로 알고 그리스도를 거짓 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 본장을 위하여 압돌바하께서 친히 쓰신 것임. 만일 유대인들이 그 의심되는 뜻을 그리스도께 물었더라면 그 분은 반드시 자기 자신에 관한 예언의 참뜻을 설명하셨을 것이 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 의하여 얻는 바가 있어야 하겠다. 그 리하여 우리가 후대(後代)의 대 교사의 현시에 관한 예언이 실 현되지 않았다는 것을 단정하기 전에, 바하올라께서 그러한 예 언의 해석에 대하여 쓰신 것을 보기로 하자. 그것은 예언이란 11 제 1 장 기쁜소식
  • 18. 것의 대부분이‘봉인된’말씀이어서 진정한 인류교육자 자신이 라야 비로소 그 비봉(秘封)을 뜯어 그 속에 감추어진 참뜻을 명 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하올라께서 고대의 예언에 대 하여 많은 설명을 기술하셨다. 그러나 그것을 기초로 하여 그분 자신이 예언자임을 증거 하려하지는 않으셨다. 태양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에게는 그 자체가 증거인 것이 다. 태양이 떠오를 때 그 빛나는 광명에 대하여 묵은 증거를 끌 어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현시자의 출현도 이와 같아 서 지난날의 예언이 전부 잊혀졌더라도 영적감각(靈的感覺)이 열려져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분 자신이 완전하고 충분한 증 거인 것이다. 예언자인 증거 바하올라께서는 자신의 설명이나 가르침을 누구에게나 맹목 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셨다. 그와는 반대로, 그 분은 가르침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위험성을 경계하시고, 진리탐구를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거리낌 없이 자기의 눈과 귀 를 열어 자기의 판단으로써 탐구할 것을 권하셨다. 그분은 자신 이 예언자인 증거로써, 당신의 언행과 그것의 결과로써 여러 사 람의 생활과 품성을 도야(陶冶)하고 변화시킨 사실을 제공하 여, 그것들을 충분히 검토할 것을 요구하시고, 조금도 스스로를 숨기는 태도를 취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제기한 사고 방법은 그분 이전의 현시자들이 보여준 바와 같은 것이었다. 모세께서 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한 일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 12 바하올라와 신시대
  • 19. 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 라.”---‘신명기’제 18장 22절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이와 같은 시험 방법으로써 그분 자신 을 증거하려 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 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지 나무에서 포도를, 또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 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 매를 맺나니........ .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제 7장 15~20절 이하의 각장에서 우리는 바하올라께서는 예언자인가, 혹은 예 언자로서의 이러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신 것인가, 즉 그분께 서 말씀하신 바가 실현되었는가, 또는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왔는가, 아니면 나쁜 결과를 가져왔는가. 다시 말하자면 그분의 예언이 실현되고 그분의 가르침이 확립되었는가. 그리고 그분 의 일생의 사업이 인류의 교육에, 인문의 향상에, 덕성의 함양 에 얼마나 공헌하였는가. 또는 반대로 아무런 공헌도 하지 못했 는가에 대해서 연구하여 보기로 한다. 탐구의 곤란 이 대업(大業)을 연구하여 그 사실의 진상을 깊이 파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그 연구 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도덕의 대혁 신과 정신의 개조에 있어서 대개 그러하였던 바와 같이 바하이 신앙은 많은 오해를 받았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신도들이 받은 무서운 박해와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던가는 적이나 동지나 다 13 제 1 장 기쁜소식
  • 20. 같이 인정하는 바이다. 그러나 신앙의 가치와 창시자의 인격에 대해서는 신자들의 진술과 반대자들의 의견이 구구하여 마치 그리스도 시대와 같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과 그 신도가 받은 박해와 그들의 순교에 대해서는 기독교의 신자들 은 그가 모세의 가르침을 실현하고 발전시켰다고 말하고, 반대 자들은 예수가 율법을 파괴하고 하느님의 계율을 유린하였으므 로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고 한다. 과학에서와 같이 종교에 있어서도‘천금의 가치 있는 한 알의 진주’를 얻기 위하여 전 재산을 파는 자의 태도가 필요하다. 모 든 편견과 미신을 다 버리고 겸허한 마음으로써 진주를 구하는 자에게만 진리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바하이신앙의 참뜻을 충 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건한 마음을 기울여, 모름지기 하느 님의 지도에 의탁하고 진리 앞에서는 자기를 잊어버리고 연구 해 나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이 종교 창시자들이 남긴 기록 가 운데서 커다란 정신적 자각과 그 가치의 비밀을 규명하는 열쇠 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이 기록들이 우리가 알기 어려운 페르시아어와 아랍어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 또 한 연구상 적지 않은 곤란이 있다. 다만 그 서적의 일부가 오늘 날 영어로 번역된 것이 있으나 그 문체와 정확성에 있어서 아직 우리의 희망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설 화(說話)와 번역에 부적당하고 불충분한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 고, 이 대업이 웅대하고 견실한 기초 위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자욱한 안개 속에 우뚝 치솟은 산과 같이 보인다. 14 바하올라와 신시대
  • 21. 본서의 목적 이하 각 장에서 바하이신앙의 역사적 사실과 특히 그 가 르침을 되도록 공정하게 편견 없이 서술하여, 독자로 하여 금 그 중요성에 자기의 지적(知的) 판단을 내리게 하고 자기 자신으로서 더 깊이 연구하는 데 길잡이가 되도록 힘쓰려 한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기 는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전 목적일 수는 없다. 진리는 죽 은 물건이 아니다. 그것은 박물관에 진열되어 목록과 부전 이 붙어 분류되어 무미건조한 것으로 다루어질 그러한 물 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정신에 깊이 뿌리 박혀져, 그 탐 구의 성과(成果)를 거두기 전에 벌써 그들의 생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고야 마는 살아 있는 그 무엇이다. 그러므로 예언적인 계시의 지식을 널리 보급시키려 하는 진정 한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그 진리를 확신하게 된 사람들이 그 원칙을 실행하여‘바른 생활’을 하고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 하여,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 위에도 실현되는 행복의 날이 하루 속히 오도록 함에 있는 것이다. 15 제 1 장 기쁜소식
  • 23. 제 2 장 선구자 바압 진실로 압제자는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아야 할 이를 죽임으 로써, 피조물(被造物)가운데서 하느님의 빛을 없이 하여 은총 과 혜택이 충만한 날의 천국생활의 분류(奔流)에서 인류를 제 지(制止)하려 하였다. -- 바하올라의‘라이스에게의 서한’에서 새로운 계시의 발상지(發祥地) 바하이 계시의 발상지인 페르시아는 세계 역사 중에서도 특이 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페르시아 초기의 위대한 전성시대에 는 그 문명과 부강에 있어서 여러 나라에 비류가 없어 마치 특 출한 여왕과도 같았다. 훌륭한 왕과 정치가도 적지 않았고, 세 계에 유명한 예언자, 시인, 철학자, 미술가들을 많이 배출하였 다. 조로아스터, 싸이러스, 다리우스, 하페즈, 페르도우시, 싸아 디, 우마르 케이얌 등은 페르시아의 유명한 사람들 중의 소수에 불과하다. 이 나라의 공예가는 참으로 우수하였다. 융단, 강철 칼, 도기 등은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하였다. 근동지방과 중동지 방에서 고대의 페르시아는 위대한 자취를 많이 남겼다. 그러나 18세기와 19세기에 있어서 페르시아의 위세는 기울어 져 그전의 영광을 다시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정부는 부패하여 17 제 2 장 선구자 바압
  • 24. 18 바하올라와 신시대 경제가 와해되고, 지배자는 무력하였으며 그중에 어떤 자는 잔인 무도한 괴물과도 같았다. 승려(僧侶)는 완미고루하고, 국민은 무 지하여 미신에 깊이 빠져 제도하기 어려웠다. 그들의 대다수는 이슬람교도 중에서도 쉬이에파1)에 속해 있었고, 그 밖에 조로아 스터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 등 서로 적대시하여 용납하지 않 는 각종 각파의 신자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유일신(唯一神)을 예배하고 서로 사랑과 화합으로써 살아갈 것을 가르친 위대한 지 도자의 명령을 받든다고 입으로는 주장하면서도, 서로 다른 종교 의 사람을 부정(不淨)하고, 짐승, 이단자(異端者)로 배척하며 비 방하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저들 사이의 증오와 저주는 험악할 정도에 이르렀다.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는 비 오는 날 외출하여 거리를 걷는 것조차 위험하였다. 만일 길에서 비에 젖은 옷이 잘못하여 이슬람교도의 옷에 닿기만 하면 그는 자기를 더럽힌 자라 하여 그 죄 갚음으로 상대방의 생명을 빼앗고야 마 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슬람교도가 유대교도나 조로아스터교도, 또는 기독교도에게서 돈을 받을 때 그는 그 돈을 물로써 깨끗이 씻지 않고는 주머니에 넣지 않는 것이었다. 또 만일 유대교도가 자기의 어린 아이가 이슬람교도 거지에게 물 한잔 주는 것을 발 견했을 때 그는 노하여 아이의 손에서 물그릇을 쳐서 떨어뜨리는 것이었으니 이교도(異敎徒)에 대해서는 친절이란 있을 수 없었 다. 이슬람교에는 또한 무수한 종파가 분립하여 같은 교도 사이 의 충돌과 분쟁이 더욱 심하였다. 조로아스터교도는 이러한 분쟁 속에 휩쓸리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종교를 달리한 자국인과 단교 (斷交)하여 저들 자신의 조직만으로써 생활하는 상태에 있었다. 이와 같이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희망 없는 퇴폐의 구렁 1. 모하멧께서 세상을 떠나신지 얼마 안 되어 이슬람교가 쉬이에, 순니의 2대 교파로 분열된 것 중의 하나임. 쉬이에파는 모하멧의 사위 알리가 예언자의 정당한 후계자라고 하여 그 후예만이 칼리프의 정통이라고 주장한다.
  • 25. 19 에 빠져 있었다. 교육은 무시되고 서양의 과학과 예술은 종교에 반대되는 부정(不淨)한 것이라고 배척되었다. 정의는 왜곡(歪 曲)되고 약탈과 강도가 횡행하였다. 도로는 파괴되어 여행이 불 안하였고 위생 상태는 지극히 나빴다. 이러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생활의 한 가닥 광명 이 아주 꺼지지는 않았다. 혼돈한 세상 욕심과 미신 가운데서도 여기저기에 하느님을 동경하는 순진한 마음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 이전의 안나와 시몬의 마음과 같은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약속된 하느님의 선구자’께서 오실 날 이 멀지 않았음을 믿고 기다렸다. 새 시대의 선구자 바압께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여 온 나라를 진동케 한 것은 페르시아 가 바로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였다. 초기 생애 미르자 알리 모하멧, 후에 바압(문이라는 뜻)이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1819년 10월 20일 페르시아의 남쪽에 있는 쉬 라즈라는 곳에서 탄생하셨다. 그분은 세이예드, 즉 예언자 모하 멧의 후예였다. 유명한 상인이었던 그분의 부친께서는 바압께 서 탄생하신지 얼마 안 되어 타계하시고, 그분은 쉬라즈에 사는 상인인 외숙의 댁에서 성장하셨다. 어릴 때 독서를 배우고 그때 의 통례대로 초보의 교육을 받으셨다2). 15세 때 비로소 외숙을 제 2 장 선구자 바압 2. 이점에 관하여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양에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바압의 신도들(현재의 바하이) 은 다음과 같이 믿고 있다. 즉, 바압께서는 교육을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저 몰라(이슬람교의 신학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바압의 지위를 격하시키기 위하여 바압께서 가지신 지식과 지혜는 그분이 받은 교육에 의 한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이 점에 관한 사실을 깊이 연구한 결과 우리는 바압께서는 어렸을 때 쉐이크 모하 멧(아베드라고도 알려져 있음)의 집에 얼마동안 출입하시어 거기서 페르시아어의 읽기와 쓰기를 배우셨다 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바압께서 자신의 저서 바얀 가운데‘모하멧, 나의 스승이여........’라고 쓰신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그분의 스승이었던 쉐이크가 자기의 제자였던 바압의 충성스러운 사도 가 된 것이다. 또 바압께서는 아버지와 같았던 숙부 하지 세이예드 알리가 또한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도가 되어 바비(바압의 신도라는 뜻)로써 순교한 사실이다. 이러한 비밀은 진리를 탐구하는 자에게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니, 우리는 바압께서 받으신 교육은 극히 초보에 불과한 것이요, 바압에게 나타난 희한한 위대성 과 지식의 표징이 무엇이었든지 간에 그것은 천부(天賦)의 것이요, 하느님에게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 26. 따라 상업에 종사하셨고, 후에 페르시아만(灣) 연안의 부쉐흐 르라는 곳에 사는 또 다른 숙부에게 가서 역시 그곳에서 상업에 종사하셨다. 청년으로서의 그분은 이목이 청수하고 행동이 얌전하였으며 마음이 경건하고 품성이 고상하여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으 셨다. 그분은 이슬람교의 의식인 기도와 단식과 그 밖의 모든 계율을 잘 준수하였을 뿐 아니라 교조(敎祖)가 가르친 정신을 가지고 사셨다. 그분은 22세에 결혼하셨다. 이 결혼에 의하여 남아 하나를 얻었으나 그 아이는 바압께서 공공연하게 성직(聖 職)에 나아가신 해에 어린 아기로써 사망하였다. 선언 그분이 25세에 달했을 때, 하느님의 명령에 의하여 그분은 “높으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바압의 직책을 주셨다.”고 선언 하셨다.‘나그네의 이야기’란 책에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바압이라는 칭호에 의하여 그분께서 나타내려고 하신 의미 는 이러하다. 그분은, 무한히 완전한 덕성을 갖추고 있고, 그리 고 아직 영광의 베일에 가리워져 있는 어떤 위대한 인물로부터 오는 은총의 통로(通路)가 되어, 그 완전한 분의 뜻에 의하여 자기는 움직이고, 그분의 사랑의 끈에 자기가 매여 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바압의 에피소드’3쪽 당시 하느님의 사자가 불원에 나타나시리라는 신앙은 쉐이키 라는 이슬람교의 일파에 특히 그 믿음이 강하였고, 바압께서 처 음으로 자신의 사명을 알린 사람은 이 종파에 속하는 몰라 호세 20 바하올라와 신시대
  • 27. 21 인 보슈루이라는 유명한 신학자였다. 그리고 그 알린 정확한 날 짜는 바압의 저서 중의 하나인 바얀이라는 책에 헤쥬라트 기원3) 1260년 쟈마디율 아발월 4일 (즉 1844년 5월 22일) 해진 뒤 2시간 11분이라고 적혀 있다. 바하이의 하루는 서양의 여러 나 라와는 달리 자정이 아니라 해지는 때에 시작되므로 바압 선언 축제는 5월 23일에 해당하는 쟈마디월 5일에 행하게 되어 있 다. 압돌바하께서는 바로 그날 밤에 탄생하셨는데 그 정확한 시 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몰라 호세인은 며칠 동안 열심히 연구 하고 검토한 끝에, 쉬이에 종파의 신도들이 오랫동안 기다린 사 자가 참으로 나타나셨다는 것을 굳게 믿었다. 그의 이 발견에 대한 열성적인 태도가 곧 그의 많은 친구들을 움직여 얼마 후에 쉐이키 종파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압을 받아들여 그 신자가 되 었다. 그리하여 이 청년 예언자의 명성이 갑자기 요원의 불길처 럼 전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바비 운동의 전개 바압의 처음의 제자 18인(그 자신까지 19인)은 곧‘생명의 문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분은 이 제자들을 페르시아와 터키 의 각지에 보내어 그분의 출현에 대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그리고 자신은 메카에 순례를 떠나 1844년 12월 그곳에 도착 하시어 거기서 공공연하게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분께 서 부쉐흐르에 돌아오시자, 그분이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 은 비상한 충동을 일으켰다. 불같은 그분의 웅변, 질풍같이 빠 르고 감화에 찬 그분의 저서의 놀라움, 비범한 그분의 지혜와 지식, 개혁자로서의 그분의 용기와 정열은 그분을 따르는 사람 제 2 장 선구자 바압 3. 이슬람교의 역서(曆書)는 서력 622년 모하멧께서 메카에서 메디나로 패주(敗走)한 날을 기원으로 하는 것이요,‘헤쥬라트’란 아랍어로 패주라는 뜻이다.
  • 28. 22 바하올라와 신시대 들에게 비상한 열광을 일으킴과 동시에 이슬람교의 정통파에게 는 무서움과 적의(敵意)를 품게 하였다. 쉬이에파의 박사들은 맹렬히 그분을 공격하고 파르쓰지사(知事)로서 광포한 전제자 인 호세인 칸에게 그를 이단자로써 탄압하도록 설득하였다. 그 리하여 바압께서는 여러번 잡혀 와서 감금, 추방, 심판, 태형, 모욕 등 온갖 박해를 당하시게 되어, 그 박해는 1850년 바압께 서 마침내 순교하심으로써 끝났다. 바압의 주장 바압의 지위에 있다는 선언으로써, 그리고 다시 더 나아가서 이 젊은 개혁자가 자기를 모하멧의 예언에 있는 메흐디라고 자 칭함으로써 적의(敵意)는 더 한층 격렬해졌다. 쉬이에파의 신 도들은 약 천년 전에 이상하게 자취를 감춘 제 12 에맘4)을 이 메흐디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이 에맘이 아직도 생존해 있어 다시 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며 그에 의하여 통치와 정 복과 국위발양(國威發揚)이 훌륭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 예 언을 물질적 의미로 해석하여 그 출현의 표징이 나타날 것을 믿 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유대인들이‘구세주’의 출현의 예언을 그와 같이 해석한 것과 같다. 그들은 메흐디가 지상의 주권(主 權)을 가지고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나타나서 그가 계시자임을 선언할 뿐 아니라 죽은 육체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을 것이 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기적적인 표징이 나타나지 않 았으므로 쉬이에파의 신도들은 극심한 모욕으로써 바압을 배척 하였다. 그것은 마치 유대교가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과 같다. 4. 쉬이에파의 에맘은 전 신도가 복종해야 하는 모하멧의 후계자로서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다. 12인이 대대로 에맘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최초의 에맘은 모하멧의 종제(宗弟)이자 사위인 알리였다. 제 12대의 에맘은 쉬이에파의 신도들에 의하여 에맘 메흐디라고 불리웠다. 그들은 에맘 메흐디가 죽 은 것이 아니라 다만‘헤쥬라트’기원329년에 지하도(地下道)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뿐이니 때가 오 면 그가 다시 와서 불신앙의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고 행복한 시대를 오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 29. 그러나 한편 바압의 신도들은 이 예언의 대부분을 비유적인 것 으로 해석하였다. 그들은 갈릴리의‘슬픈 사람’과 마찬가지로‘약속된 분’의 주권을 신비한 주권으로 해석하여 그분의 영광은 물질적인 것 이 아니라 정신적인 영광이며, 정복이란 것은 인간 정신의 정복 이라고 믿었으며, 그들은 바압의 놀라운 생애와 가르침, 흔들리 지 않는 신앙과 굳은 정신, 과오와 무지에 파묻힌 사람들을 깨 우쳐 정신생활의 새 삶으로 끌어올리는 신비스러운 힘을 보고 바압의 주장이 틀림없다는 증거를 발견한 것이다. 바압께서는 자신이 메흐디라고 주장하셨을 뿐 아니라 다시 더 나아가서 녹테 올라, 즉‘최초의 점’이라는 성스러운 칭호를 쓰 기도 하셨다. 이 칭호는 모하멧께서 그분의 신도에게서 받으신 것으로서, 에맘이라고 불리우는 자들도 이‘최초의 점’으로부 터 영감과 권위를 받은 것이라고 믿어 온 것이니, 이 칭호를 씀 으로써 바압께서는 자신을 모하멧과 동등한 위대한 종교 창시 자의 지위에 견준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써 쉬이에파의 신도 들은 그분을 협잡꾼으로 간주했으나 이것은 그분 이전의 현시 자들인 모세와 그리스도께서도 협잡꾼으로 몰린 것과 같다. 그 분은 또 역서(曆書)를 고쳐 태양력(太陽曆)을 채용하고 그분 자신이 선언하신 해를 신시대의 기원으로 하셨다. 박해가 더욱 심해짐 바압의 이러한 선언과 빈부귀천, 그리고 유식무식의 모든 계급 의 사람들이 놀라운 속도로 그분의 가르침에 열심히 따른 결과 로써 탄압은 더욱 가혹해졌다. 신도들의 재산은 약탈 파괴되고, 23 제 2 장 선구자 바압
  • 30. 24 바하올라와 신시대 부녀자들은 잡혀서 끌려갔다. 테헤란, 파르스, 마젠다란, 그 밖의 각지에서 살해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많은 사람이 단두(斷 頭), 교수(絞首), 혹은 대포구멍에 놓여 폭격되고, 혹은 불속에 던져지고, 또 혹은 갈기갈기 찢겨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진전되었다. 아니, 이와 같은 탄압 을 통하여 신도들의 확신은 더욱 굳어졌다. 그것은, 이 탄압에 의하여 메흐디의 출현에 관한 예언 중의 많은 것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쉬이에파가 권위를 인정하는 쟈베르 에 의하여 기록된 전설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그분에게는 모세의 완전과 그리스도의 존귀와 욥의 인고(忍 苦)가 있을 것이다. 그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시대에 천대를 받 을 것이다. 터키인과 데일라미트인들이 선물로 교환됨과 같이 그들의 머리는 베어져서 선물로 교환 될 것이다. 그들은 목이 베어지고 불에 타서 죽어 공포와 전율 속에 대지는 그들의 피 로써 물들일 것이요, 부녀자는 모두 울부짖을 것이다. 진실로 그들은 나의 성자(聖者)들이다.” --- E. G. 브라운 교수 번역‘바압의 새 역사’132쪽 바압의 순교 1850년 7월 9일5) 바압께서 31세 되시던 때, 그분은 마침내 포학한 박해자의 분노의 희생이 되셨다. 그분과 순교를 같이 하 기를 애원한 아가 모하멧 알리라는 소년과 함께 타브리즈 병영 (兵營) 안에 있는 사형대에 끌려가셨다. 그날 정오 2시간 전에 모하멧 알리의 머리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 바압의 가슴에 기대 이게 두 사람은 겨드랑 밑으로 동아줄에 묶여 벽에 매달렸다. 5.‘헤쥬라트’기원 1266년 샤아반월 28일 금요일
  • 31. 아르메니아 병사의 1대가 총살 명령을 받아 곧 일제 사격이 집 행되었다. 그러나 총탄 연기가 사라진 뒤 바압과 그분의 제자가 살아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총탄은 다만 동아줄을 끊었을 뿐이 요, 두 사람은 부상도 입지 않고 땅에 떨어진 것이었다. 그들은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가서 그들의 친구 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있 었다. 정오경에 두 사람은 다시 묶여 매달렸다. 아르메니아 병 사들은 사격의 결과가 이와 같이 이상하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놀란 나머지 다시 사격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리하여 다른 병사 의 1대가 새로 와서 명령을 받고 발사하였다. 이번에는 총살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신체는 많은 총알이 관통 하여 무참하게 상하였으나 얼굴에는 별로 손상된 곳이 없었다. 무도한 이 행위에 의하여 타브리즈의 영정(營庭)은 제 2의 골 고다가 된 것이었다. 바압의 적들은 이 죄 많은 승리에 기뻐하 였다. 미워하던 바비교의 나무가 줄기 째 꺾여졌으니 나머지 무 리들을 일소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저 들의 승리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저들은 진리의 나무가 인공의 도끼로써 쉽게 꺾여질 수 없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이 죄악행위가 바압의 운동에 보다 큰 힘을 주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을 저들이 알았더라면 어떠하였을까. 바압의 순교는 그분의 소원을 성취한 것이었고, 뒤에 남은 신도들에게는 감격과 열정 (熱情)을 더하였다. 그들의 정신적 정열이 이와 같이 격렬하였 으므로 박해의 냉혹한 바람은 도리어 그 정열에 부채질하여 탄 압이 가해질수록 불꽃은 더욱 더 높이 충천할 뿐이었다. 25 제 2 장 선구자 바압
  • 32. 칼멜산 위의 무덤 바압께서 순교하신 후 그분의 시신은 그분의 헌신적인 제자의 시신과 함께 타브리즈 성 밖의 못 가에 버려졌다. 다음 날 깊은 밤 신도들은 두 분의 시신을 몰래 건져 여러 해 동안 페르시아 국내의 비밀한 곳에 감추어 모셔두었다가 비상한 위험과 곤란 한 가운데 최후에는 성지에 운반되었다. 성지의 엘리야 동굴에 서 멀지 않은 칼멜산 중턱의 아름다운 산경(山景)을 등진 곳에 쌓아진 무덤에 그들 두 분의 유해가 안장되었다. 여기는 바하올 라께서 최후의 몇 해를 지내신 곳이며, 또 그분의 영묘가 있는 곳에서 2~3마일 되는 지점이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영묘(靈 廟)를 찾아 세계 각지로부터 모여드는 많은 순례자들은 바하올 라의 헌신적인 사랑의 표적이요, 또한 선구자인 바압의 영묘에 참배할 것을 누구나 잊지 않는다. 바압의 저서 바압의 저서는 매우 많다. 그분은 연구하거나 사색함이 없이 신속하게 훌륭한 주석과 뜻 깊은 해설과 웅변적인 기도를 많이 쓰셨는데, 이러한 저술들은 모두 그분의 영감에서 이루어진 증 거라고 볼 수 있다. 그분의 여러 가지 저서의 근본 되는 뜻을 요 약하면 대개 다음과 같다. “이들 바압의 저서의 어떤 것은 코란의 여러 절의 주석과 해 설, 혹은 기도와 설교와 문의(文義)해석의 암시요, 어떤 것은 ‘하느님의 유일성’에 대한 교의(敎義)의 여러 점에 관한 훈계 와 경고와 강화(講話)들이다. 그리고 인격을 수양하는 일, 세 속의 나쁜 습관을 버리는 일, 하느님의 영감에 의탁할 것을 권 26 바하올라와 신시대
  • 33. 장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분의 저서의 가장 중요한 취지의 요점은 그분의 유일한 목적이요 소원인, 불원에 세상에 나타날 ‘실재’(實在)에 대한 서술이요 예찬이었다. 그 까닭은, 그분은 자기가 출현한 것이 오로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선구자요, 그 분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다만 저‘장차 오실 분’의 보다 큰 완 성의 현시를 위한 중간 역할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 다. 그리하여 바압께서는 밤낮‘그분’을 예찬하셨을 뿐 아니라 신도들에게‘그분’의 출현을 기다리라고 뇌이어, 그분은 이것 을 저서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즉, 나는 다만 이 가장 강력한 책의 한 글자요, 무변대해의 한 방울의 물에 불과 하다. 그리고‘그분’이 나타나실 때 비로소 나의 진정한 본성 과 비밀과 수수께끼와 암시, 이 모든 것이 분명히 알려질 것이 다. 그리고 또 이 종교의 싹은 여러 단계를 거쳐서 점차 발전하 여‘형상이 가장 아름다운’경지에 도달하여,‘가장 훌륭한 창 조자이신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 진저’하는 찬미의 법의(法衣) 로써 장식될 것이라고........ 그렇게도‘그분’의 불꽃에 타고 있었으므로 그분이 마쿠의 요새(要塞)에 감금되셨을 때 어두운 밤의 등불은 진실로 장차 오실‘그분’인 바하올라에 대한 축하 의 불꽃이었으며,‘그분’에 대한 생각은 췌흐리끄의 감옥에서 고난에 잠겨있는 그분에게 가장 좋은 위안의 벗이었다. 이것으 로써 그분은 정신이 왕성해지고‘그분’의 향기로운 술에 황홀 히 취하며,‘그분’을 생각함으로써 무한한 기쁨을 느끼신 것이 었다.”---‘바압의 에피소드’54쪽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 바압 그분은 세례 요한에 비유되기도 하였으나 그분의 지위는 27 제 2 장 선구자 바압
  • 34. 단순한 선구자나 전조로서의 그것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바압 께서는 그 자신이 하느님의 현시자여서 그 종교가 비록 시간적 으로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 할지라도 그분은 하나의 독립된 종 교의 창시자이셨다. 바하이들은 바압과 바하올라께서는 바하이 신앙의 공동 창시자임을 믿고 있으며, 바하올라의 다음과 같은 말씀은 이 진리를 확인해 주는 것이다. “이 가장 강력하고 경이에 찬 계시와 그것에 앞선 현시자와 의 사이에 그처럼 짧은 기간만 존속했다는 사실은 누구나 밝힐 수 없는 신비요, 어떠한 지혜로써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것이 계속하는 기간은 미리 정해진 것이었으나 나의 감추어 진‘글’의 내용이 알려지기 전에는 누구나 그 까닭을 모를 것 이다.” 그러나 바압께서 바하올라에 관하여 말씀하심에 있어서는 오 로지 겸허한 마음으로 하셨으니, 즉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의 말씀을 한 구절이라도 듣고 그 것을 암송하는 자는 바얀(즉 바압의 계시)을 천독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바압의 에피소드’349쪽 그분은 자기가‘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을 위하여 조금이라 도 그 통로를 닦을 수 있다면 어떠한 고난이라도 참는 것을 행 복으로 생각하셨다. 그리하여 장차 오실‘그분’이야말로 자기 의 사랑의 유일한 대상이요, 또한 영감의 유일한 근원이라고 선 언하셨다. 28 바하올라와 신시대
  • 35. 부활, 천당, 지옥 바압의 가르침의 주요한 부분은 부활, 심판의 날, 천당과 지옥 등의 용어에 관한 그분의 설명이다. 부활이란‘진리의 태양’의 새 현시가 나타남을 의미하는 것이니, 죽은 자의 부활이란 무지 와 무사려와 욕정(欲情)의 무덤 속에 잠든 사람들이 정신적으 로 각성하는 것이다. 심판의 날이란 것은‘새 현시자의 날’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그 계시를 받아들이는 여부에 따라서 양과 염소가 구별되는 것이니, 양은 착한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고 그 를 따르는 것이다. 천당이란 것은 하느님의 현시자를 통하여 계 시된 하느님을 인식하고 그분을 사랑함에 이르는 기쁨을 말하 는 것이니, 그것으로써 될 수 있는 한 최상의 완전에 도달하여 사후에‘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의 미한다. 그분은 결정적으로 이러한 용어는 위에 말한 해석을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물질적인 천당, 지옥, 육체의 부활 등의 관념은 단지 상상에서 생긴 것이 라고 하셨다. 그분은, 사람은 사후의 생활이 있고, 내세에 있어 서의 완전으로 향하는 진보는 무한하다고 가르치셨다. 사회적 및 윤리적 가르침 바압께서는 자신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신도들 은 서로 형제자매의 애정과 친절을 가져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 어야 한다. 유익한 기술과 공예(工藝)는 더욱 더 연구되어야 하 고, 초등교육은 일반에게 보급되어야 한다. 지금 시작되는 새롭 고 훌륭한 시대에 있어서는 부인들은 더 충분한 자유를 누려야 29 제 2 장 선구자 바압
  • 36. 한다. 빈곤한 사람은 공공창고(公共倉庫)에서 도와주어야 할 것 이나 빌어먹는 일은 술을 음료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 금되어야 한다. 그리고 참다운 바비의 지도의 동기(動機)는 순 진한 사랑이어야 한다. 보수를 바라거나 벌을 무서워서 하는 일 이어서는 안 된다. 바얀 가운데서 그분은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에 대한 예배가 비록 불로써 갚아지더라도 변함없이 하느님을 예배하라. 하느님이 무서워서 예배한다면 그는 하느 님의 성역(聖域)에 들어갈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네가 천당을 희망하여 거기를 향하여 예배한다면 너는 하느 님의 창조물로서 하느님의 동행자가 되려는 것과 다름없다.” --- E. G. 브라운교수의‘페르시아의 바비’(영국 아시아 협 회의 기관지 제 21권 931쪽) 수난(受難)과 승리 이 끝절에서, 바압의 전 생애를 약동케 한 그 정신을 찾아보 기로 한다. 하느님을 인식하고 또 사랑하고 하느님의 속성을 나 타내고 장차 오실 하느님의 현시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일 - 이러한 일이야말로 그분의 생존의 전 목적이요 소원이셨다. 그 분에게는 사는 것도 걱정될 것이 없었고, 죽는 것도 두려울 것 이 없었다. 왜냐하면 사랑은 두려운 것을 없이하고 순교는 다만 사랑하는 하느님의 발 앞에 그의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기 때문 이다.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 이 하느님의 진리의 영감에 찬 교 사, 이 하느님과 동포를 열애하는 분이 그렇게도 미움을 받아 그 시대의 이른바 신앙심을 가졌다는 자들의 손에 순교하셨다 는 것은 괴이한 일이 아닌가. 이것은 확실히 무사려와 완미한 30 바하올라와 신시대
  • 37. 편견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이 참으로 예언자요, 성스러운 하 느님의 사자인 사실에 눈이 어둡게 하였음에 틀림없다. 그분은 세속적인 위대성과 영예를 가지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런 속세의 원조를 받음이 없이 가장 포악한 속세의 반대를 넘어서 승리를 얻을 능력이 없고서야 어찌 정신적 위력과 지배를 증명 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극도의 고난과 많은 적들의 증오와 거짓 친구의 간사한 흉계를 참고 이 모든 것을 극복하여, 낙망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고 도리어 저들을 용서하고 축복해 주는 능력 을 갖지 않고서야 어찌 이 불신앙의 세계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인가. 바압께서는 모든 고난을 참고 받아들이셨다. 그리하여 승리하 셨다. 수천의 신도는 자기의 생명과 모든 것을 바쳐 봉사함으로 써 그분에 대한 저들의 사랑을 실증하였다. 여러 왕들은 사람들 의 마음과 생명에 미치는 그분의 위력을 미워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하느님께서 나타내실 분’이 마침내 나타나셔서 그분의 주장을 확인하시고 자신의 선구자로서의 헌신을 받아들여 바압 으로 하여금 자신의 영광의 동반자로 삼으셨다. 31 제 2 장 선구자 바압
  • 39. 33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그대, 이제 그만 기다려라. 그분이 이미 오셨나니. 보라, 그 분의 성전과 그 안에 있는 그분의 영광을. 그것은 새로운 현시 로써 온 고래의 영광이니라. --- 바하올라 탄생과 유년시대 미르자 호세인 알리, 후에 바하올라6) (하느님의 영광)라는 칭호로써 불리운 그분은 페르시아의 대신인 누르 주 출신 미르 자 압바스의 장남이셨다. 그분의 집은 부유한 명문으로서 그 일 가에는 문무관(文武官)의 높은 지위에 있는 이가 많았다. 그분 은 1817년 11월 12일7) 페르시아의 수도 테헤란에서 탄생하셨 다. 그분은 가정에서 얼마의 교육을 받았을 뿐이요, 학교 교육 이라고는 받으신 일이 없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어 렸을 때부터 놀라운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셨다. 그분이 아직 젊었을 때 그분의 부친은 타계하시고 막대한 재산의 관리와 동 생들의 보호의 책임을 지게 되셨다. 어느 때 바하올라의 장남인 압돌바하께서는 그분의 부친의 유 년 시대의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6. 제 2, 제 4의 음절에 액센트가 있다. 7.‘헤쥬라트’기원 무하람월 2일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40. “어릴 때부터 그분은 성질이 대단히 친절하시고 관대하셨다. 그분은 밖에서 놀기를 좋아하셨고, 화원이나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사람을 끄는 비상한 힘을 가지 시어 누구나 그것을 느꼈고 그분의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 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신과 궁정(宮廷)관리들이 그분에게 친근해지고 아이들도 그분을 매우 좋아하였다. 겨우 십 삼, 사 세 때에 그분의 박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분은 어떠한 문제 에 대해서도 답변 할 수 있었고, 어떠한 문제가 제기되든지 그 것을 규명하시고 해결하셨다. 큰 모임에서 그분은‘올라마’(이 슬람교의 교사)들과 토론하시고 종교상의 어려운 문제에 대하 여 해설하기도 하셨다. 모든 사람은 비상한 흥미를 가지고 그 분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바하올라께서 22세 되 셨을 때 그분의 부친께서 세상을 떠나시매, 정부는 그때의 관 례에 의하여 바하올라께 부친의 관직을 승계할 것을 명했으나 그분은 이것을 사양하셨다. 당시의 총리대신은 이것을 평하여 ‘그의 뜻대로 하게 하라. 그런 관직은 그에게는 가치 없는 것 이다. 그는 보다 높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으나 그는 확실히 어떤 높은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생각하는 바가 우리네와는 다르다. 그의 뜻대로 하게 하 라.’고 말했다.” 바비로서 감옥에서 갇힘 바압께서 1844년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을 때, 바하올라께 서는 27세이셨는데 그분은 대담하게 이 새로운 신앙의 대업에 동참하셨고, 얼마 안 되어 가장 유력하고 용감한 제창자로서 알 려지게 되셨다. 34 바하올라와 신시대
  • 41. 그분은 이 대업을 위하여 두 번이나 감옥에 갇히셨는데 한 번 은 발 때리는 고문을 받으셨다. 그것은 1852년 8월 바비교도에 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 사건이 돌발했을 때였다. 사데크라는 바압의 한 청년신도가 그의 사랑하는 스승의 순교를 목격하고 통분한 나머지 마침내 바른 길을 벗어나서 복수하기 위하여 길 에 잠복했다가 총으로 황제를 쏘았던 것이다. 그러나 보통 탄환 이 아니고 산탄(散彈)을 장전했던 관계로 몇 발의 작은 탄알이 명중하였으나 대단한 상해는 없었다. 청년은 말을 탄 황제를 끌 어내렸으나 자신은 잡혀 즉석에서 살해되었다. 이와 같은 일이 있어 바비의 전 교단(全敎團)은 불법하게도 이 행위의 책임을 지게 되어 80명의 신도가 참혹한 고문 끝에 테헤란에서 학살당 하고, 그 밖의 많은 사람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으니 그중에 바하올라께서도 계셨다. 그분은 후일 다음과 같이 쓰셨다. “하느님의 바른 길에 있어서 짐(朕)이 이 비행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는 바로서 짐(朕)의 무죄는 법정 에서 명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朕)은 체포되어 황제 의 거처였던 니야와란으로부터 테헤란감옥으로 호송되었다. 짐 (朕)은 쇠사슬에 결박된 채 맨발로 걸었다. 말을 타고 우리를 호송하는 악한이 짐(朕)의 모자를 빼앗기도 하면서 많은 형리 (刑吏)와 감시인들이 큰 속력으로써 우리를 몰아갔다. 4개월 동안 짐(朕)은 일찍이 보지 못한 불결한 곳에 감금되어 있었 다. 아무리 비좁고 어두운 토굴이라도 피해자인 나와 나의 동 반자들이 갇혀 있는 이 토옥(土獄)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도착하자 우리는 이 감옥의 입구를 통하여 어두운 복도로 끌 려가서 가파른 세 계단을 내려가 우리에게 정해진 토옥에 들어 35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42. 갔다. 토옥은 아주 깜깜하였고, 거기에는 이미 갇혀있는 사람이 150명가량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도둑, 살인자, 날치기, 강도들 이었다. 이 감옥에는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있으면서 도 우리가 들어간 문 이외에는 출입구가 없었다. 이곳의 광경과 악취에 대해서는 한입으로 다 말할 수는 없다. 여기 있는 사람 들의 태반은 입을 옷도 누울 거적자리도 없었다. 이 어둡고 더 러운 곳에서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가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일이다. 이 감옥에서 짐은 밤낮 바비교도의 상태와 행동에 대하여 반 성하였다. 저들의 영혼이 위대하고 심지가 고결하고 총명하거 늘 어찌하여 황제를 살해하려는 흉악한 행위를 감행하였을까 괴이하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피해자인 짐은 출옥 후에 이들 교도들의 심령개조(心靈改造)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하였다. 어느 날 밤 꿈에 사방에서 영감(靈感)에 찬 말씀이 들려왔다. ‘진실로 내가 그대 자신에 의하여, 또 그대 붓에 의하여 그대가 승리를 얻도록 도울 것이다. 그대가 당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슬퍼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 진실로 그대는 안전하느니라. 멀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이 땅에 보배를 보내 주실 것이니, 그 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이름에 의하여 그분을 인식하고 마음 이 갱신될 것이며, 그들에 의하여 그대는 승리를 얻을 것이니 라.”---‘이리의 자식에게 보내는 서한’(쇼기 에펜디의 영 어 번역)에서 바그다드로 추방 이 무서운 감옥생활이 4개월간 계속되었다. 그러나 바하올라 36 바하올라와 신시대
  • 43. 37 와 그분의 동반자들은 최대의 행복에 잠겨 태연자약하고 열성 에 넘쳐있었다. 거의 매일 같이 그 중의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이 고문을 당하고 살해되어 남아있는 사람들도 다만 자기의 순번 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형리(刑吏)가 와서 그 중의 한 사 람을 호출하면 그 사람은 기뻐서 춤을 추면서 바하올라의 손에 입 맞추고 다른 신도들을 포옹한 후 조용히 순난(殉難)의 장소 로 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바하올라께서는 국왕반역(國王叛逆)의 음모에 관여 하지 않은 것이 판명되고, 러시아 공사도 그분의 품성이 결백함 을 증언하여 주었다. 그때 바하올라께서는 병에 걸려 매우 위독 한 상태에 계셨다. 그리하여 국왕은 그분에게 사형판결을 내리 지 않고 그 대신 메소포타미아의 이라크로 추방할 것을 명령하 였다. 2주일 후 그분은 가족과 몇 사람의 신자를 데리고 그곳으 로 출발하셨다. 그들은 겨울의 장거리 여행에 추위와 그 밖의 무서운 고난을 겪으면서 극도의 곤궁 속에 바그다드에 도착하 였다.8) 바하올라께서는 건강이 회복되시자마자 구도자의 질의(質疑) 에 응답하여 신자들을 고무하고 격려하셨다. 그리하여 바비교 도들에게 다시 평화와 행복이 찾아오게 되었다.9) 그러나 이것 이 오래 계속되지는 못하였다. 소브헤 아잘이라고도 알려진 미 르자 야흐야라고 하는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이 바그다드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이 사람의 비밀한 꾀임에 의하여 신자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점차 커 가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제자들 사이에 일어난 분열과 흡사한 것이었다. 이 충돌은 (그 8. 1852년 10월 테헤란을 떠나 4,50일 만에 바그다드에 도착하셨다. (아베르에 의함) 9. 1853년 초의 이야기로서 바압의 선언으로부터 9년 후의 일이다. 그리하여 바압의‘9’년에 관한 예 언이 실현된 것이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44. 후 아드리아노플에서 공공연하게 더욱 격렬해졌다.) 세계 인류 의 통합을 이룩하는 것이 인생의 전 목적인 바하올라께는 참으 로 마음 아픈 일이었다. 황야(荒野)에서의 2년 바그다드에 온지 약 1년 후 바하올라께서는 다만 혼자 솔레이 마니예의 거친 들로 단 한 벌의 갈아입을 옷을 가지고 떠나셨 다. 이 시기에 관하여 그분은‘케타베 이간’에 다음과 같이 쓰 셨다. “이곳(바그다드)에 처음 왔을 때, 후일 재난이 있을 것을 예 감했으므로 그것이 일어나기 전에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 하여 짐(朕)은 거친 들판에 가서 그곳에서 2년간 쓸쓸히 고독 한 생활을 보낸 것이다. 짐(朕)의 눈에서 고뇌의 눈물이 비오 듯하고 심장에는 고통의 큰 물결이 일어났다. 먹을 것이 없는 날도 많았고, 짐(朕)의 몸이 쉴 수 없는 밤도 많았다. 이러한 궁핍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를 그분 두 손에 가지고 계신 하느님께 의지하여 짐(朕)의 영혼은 행복과 기쁨 속에 있 었던 것이다. 짐(朕)은 이 고독한 거처에서 누구의 이해득실 (利害得失)이나 건강이나 질병 같은 것은 염두에 없이 혼자서 세계와 그 일체를 잊어버리고 나의 정신과 문답하였다. 그러나 짐(朕)은, 하느님의 운명의 그물이 인간의 가장 큰 관념을 초 월하는 것이어서 하느님의 명령의 화살이 인간의 가장 대담한 기도(企圖)를 이긴다는 것을 몰랐었다. 하느님께서 놓으신 덫 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하느님의 바른길에 있어서는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짐(朕)의 이별은 다시 만날 것을 바라 지 않은 것이었다. 짐(朕)의 귀양살이의 유일한 목적은 신자들 38 바하올라와 신시대
  • 45. 사이에 불화의 원인이 되거나 동지에게 폐를 끼치거나 누구에 게 해를 입히거나 누구의 마음에 슬픔의 원인이 됨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 밖에는 아무 의도도 목적도 없었다. 그러나 각자는 제각기 자기의 뜻대로 계획을 세우고 각자의 쓸데없는 공상을 따랐다. 그리하여 그것 은 짐(朕)이 온 곳으로 돌아가 라는 신비의 근원(즉 하느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되었 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짐(朕)은 그 명령에 복종하였다. 짐 (朕)이 돌아온 후에 당한 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이 2년 동안 적들이 전력을 다하여 짐(朕)을 없애버리려고 부단히 노 력한 사실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바이다.” ---‘케타베 이간’251쪽 ‘몰라’의 압박 은거지(隱居地)에서 돌아온 후의 그분의 명성은 더욱 커졌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그분을 알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 려고 원근 각지로부터 바그다드에 모여 들었다. 유대교도, 기독 교도, 조로아스터교도, 이슬람교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새로운 하느님의 계시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몰라’(이슬람 교의 교사)들은 적대 행동을 취하여 그분을 없애버리려고 악착 같이 박해를 가하였다. 어느 때, 저들은 동료 한 사람을 보내어 그분을 면회하여 어려운 문제를 출제케 하였다. 그러나 그 사자 는 바하올라의 대답이 비상히 조리가 서 있고 그것이 분명히 연 구에 의하여 얻은 지식이 아니라 그분의 지혜가 진실로 놀라운 것임을 발견하였으므로, 지식으로써나 이해력으로써나 바하올 라 그분은 세상에 다시없는 인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사자로 보낸‘몰라’들에게 바하올라 그분이 진정 39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46. 한 예언자임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그 증거로써 어떠한 기적을 보여줄 것을 그는 요구하였다. 바하올라께서는 어떤 조건하에 그 요구에 응할 의사를 표하셨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 셨다. 즉, 어떤 기적을 행하는 데에‘몰라’들이 동의하여 그 기 적의 실행을 본 다음 저들은 그분의 사명이 정당함을 고백하고, 그분에게 적대하는 일을 중지하겠다는 증서에 서명 날인한다면 요구대로 증거를 보일 것이며, 만일 그렇지 못하면 사기죄인이 될 것이라고.‘몰라’들의 목적이 참으로 진리를 원하는 것이었 다면 확실히 그것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으나 저들의 의향 은 그것이 아니었다. 좋거나 궂거나 자기들이 바라는 대로의 결 정을 얻자는 심산이었다. 저들은 진실에 부닥칠 것이 두려워 이 감연한 도전에서 도피하였다. 그러나 저들의 이 계획의 좌절은, 바하올라의 교단을 전멸시키기 위한 새로운 음모를 계획하는 방향으로 저들을 몰아넣었다. 바그다드에 주재해 있는 페르시 아 정부의 총영사는 저들의 음모에 가담하여 황제에게 많은 보 고를 하였다. 즉, 바하올라는 이전보다 더 한층 이슬람교에 대 하여 위해를 주고 있다는 것, 페르시아 사람에게 일종의 해를 끼치는 세력을 이루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를 더 먼 곳으로 추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역설하였다. 이슬람교의‘몰라’들의 꼬임에 대하여 페르시아정부와 터키 정부가 그분의 운동을 근절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있는 이 위기 에 즈음하여 고요히 신자들을 격려하시며 위안과 지도의, 그 불 후(不朽)의 말씀을 쓰시고 계신 것은 진실로 바하올라다운 일 이었다. 압돌바하께서는 저‘숨겨진 말씀’이 어떻게 이 시대에 씌어졌는가를 말씀하셨다. 바하올라께서는 티그리스강가에 산 책하시는 일이 많으셨다. 그분은 밝은 표정으로 집에 돌아오셔 40 바하올라와 신시대
  • 47. 서는 수천 사람의 괴롭고 쓰린 마음을 위로하고 쓰다듬어 주는 저 주옥같은 서정시(抒情詩)적인 잠언(箴言)을 쓰신 것이었다. 몇 해 동안은 이‘숨겨진 말씀’의 원고의 사본(寫本) 몇 부가 몰려드는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을 우려하여 조심스럽게 감추 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작은 책이 바하올라의 저서 가 운데서 아마 가장 널리 알려져 있어 전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읽을 수 있다.‘케타베 이간’도 또한 널리 알려져 있는 바하올 라의 저서인데 역시 같은 시대, 즉 바그다드 체류의 말경 (1862~1863)에 씌어진 것이다. 바그다드 교외‘레즈완’에서의 선언 여러 가지 교섭이 있은 후 페르시아정부의 요구에 의하여 터 키 정부는 바하올라를 콘스탄티노플로 소환하는 명령을 내렸 다. 이 소식을 들은 그분의 추종자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은 사 랑하는 지도자의 집을 둘러싸고 물러가지 않았으므로 가족들은 부득이 12일 간이나 나집파샤의 정원에 천막을 치고 지냈다. 그동안 먼 길을 여행할 여대(旅隊)가 준비되었다. 이 12일간 (즉 바압의 선언이 있은 후 19년째인 1863년 4월 21일부터 5 월 2일까지)의 첫 날에 바하올라께서는 몇 사람의 신자들에게 자신이 바압에 의하여 예언된 분 - 즉 하느님의 택함을 받은 분, 모든 예언자들에 의하여‘약속된 분’임을 선언하셨다. 이 기념해야 할 선언이 있었던 정원은 후에 바하이 신자들에게‘레 즈완 동산’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바하올라께서 이곳 에서 지낸 여러 날을‘레즈완 축제’라고 하여 해마다 이 12일 간을 기념한다. 이 동안에 바하올라께서는 슬픔과 절망의 빛이 없이 도리어 큰 기쁨과 위엄을 보이셨다. 신자들은 기쁨에 넘쳤 41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48. 고,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바그다드의 모든 유력한 사람들과 지사(知事)까지도 이 죄수의 출발에 경의를 표하러 왔었다. 콘스탄티노플과 아드리아노플 콘스탄티노플 여행은 3-4개월이 걸렸다. 가족 12명과 제자 72명으로 된 바하올라의 일행은 이 멀고 먼 여로의 노숙(露宿) 에 비상한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하자 일 행은 비좁고 더러운 집에 죄수로써 감금되었다. 그 후 조금 나 은 옥사(獄舍)에 들었으나 4개월 후에 다시 아드리아노플로 옮 기게 되었다. 아드리아노플로 가는 길은 며칠 걸리지 않았으나 이 여행은 그들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무서운 것이었다. 눈 은 끊임없이 분분히 내리는데 엷은 옷은 헤어지고 먹을 것조차 없어 그 고생이 형언할 수 없었다. 아드리아노플의 첫 해 겨울 에 바하올라와 그분 가족 12명은 아무 설비도 없고 해충이 우 굴거리는 단지 3칸뿐인 조그마한 집에서 지냈다. 봄에 그들은 조금 나은 집으로 옮겼다. 그들은 아드리아노플에 4년 반 이상 이나 있었다. 여기서 바하올라께서는 다시 설교를 시작하시어 많은 신자가 그분의 주위에 모이게 되었다. 그분은 널리 자신의 사명을 선언하셨다. 그리하여 대다수의 바비신도에게 열성으로 써 환영을 받았다. 이때부터 바비들은 바하이로 알려지게 되었 다. 그런데 소수의 바비신도들이 바하올라의 이복동생인 미르 자 야흐야의 지휘 하에 바하올라에게 맹렬히 반대하여, 그들은 이전의 적이었던 쉬이에파 교도와 손을 잡아 그분을 없애버릴 것을 계획하였다. 여기에 대혼란이 생겼다. 그리하여 터키 정부 는 마침내 바비와 바하이를 함께 아드리아노플에서 쫓아 버리 42 바하올라와 신시대
  • 49. 고, 바하올라와 그 측근자들을 팔레스타인의 악카에 귀양 보냈 다. 역사가 나빌에 의하면 그들은 1868년 8월 31일 악카에 도 착하였다. 한편 미르자 야흐야와 그 일당은 싸이프러스섬으로 추방되었다. 여러 나라 왕에게 서한을 보냄 바로 이때 바하올라께서는 유럽의 여러 나라 원수(元首)와 로 마 법왕, 페르시아 황제, 그리고 아메리카합중국 정부에 저 유 명한 일련의 서한을 보내어 자신의 사명을 전하시고, 진정한 종 교, 정의의 정치, 국제평화의 건설을 위하여 저들이 진력할 것 을 호소하셨다. 페르시아 황제에게 보낸 서한 가운데 압박받는 바비들을 극력 변소(辯訴)하고 아울러 그들의 박해를 선동하는 자들과의 회견을 요청하셨다. 물론 이 요청이 허용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서한을 전한 열렬한 바하이 청년 바디는 잡혀서 불타는 벽돌로 몸을 지지는 무서운 고문을 받아 순교하였다. 그 서한 가운데 그분은 자신의 고난과 그 소망을 가장 감동적인 문 장으로써 표현하셨다. “폐하여, 나는 하느님의 길에서 일찍이 아무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한 일을 보았습니다. 벗들은 나를 거부하였고 나의 갈 길은 막혔습니다. 안전의 못(池)은 말랐고 위안의 평원은 초토 (焦土)로 화하였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난이 내려졌으며 또 얼 마나 많은 고난이 올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강대하시고 혜택이 많으신 하느님을 향하여 전진하건만 나의 뒤에는 독사 (毒蛇)가 따릅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비오듯하여 침상을 적 시건만 이것이 나를 위한 슬픔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맹세하거 니와 나의 머리는 주의 사랑을 위하여 창검의 난(難)에 맡겼습 43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50. 니다. 그리하여 한 나무를 지날 때마다‘너는 내 이름으로 베어 질 것이며 내 몸은 주님의 길에서 그대의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염하지 않은 때가 없었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 인류는 침취(沈醉)하여 길을 잃고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저들은 욕정(欲情)에 빠져 하느님을 멀리 하고 하느님의 명령 을 오락인 냥 우롱합니다. 그러고도 제 행위가 옳은 줄로만 믿 고 제 자신이 안락성중에 있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사리(事 理)는 저들이 생각하는 바와는 다르니 저들은 오늘에 거부한 것을 내일에는 보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변경(邊境)의 적소(아드리아노플)에서 다시 악카의 감옥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악카 는 가장 황막한 벽지로서 외관이 극히 추하고 기후와 수질이 심히 좋지 못하여 사람이 거접할 곳이 못되고, 올빼미의 서울 인냥 들리는 이 다만 그 새소리뿐이라 합니다. 저들은 나를 그 곳에 유폐하여 은사(恩赦)의 문을 막고 생명의 자량(資糧)을 끊어 얼마 남지 않은 나의 여생을 마치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비록 피로가 나를 쇠약케 하고 굶주림이 나를 거꾸러뜨릴지라 도, 비록 굳은 바위를 침상으로 하고 사막의 야수를 벗하고 있 을지라도 참을 것입니다. 하느님께 맹세하여 당연히 참을 것입 니다. 만물 존재 전의 왕이시며 만민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권 능 안에서 모든 고난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사정 하에 있어서도 나는 하느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은총 깊으신 하느님께서 (높이 계시는 하느님이시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성실한 얼굴을, 강력하시고 혜택 많으신 하느님께로 돌리게 하 여주실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진실로 하느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대답하시고 부른 자에게 가까이 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44 바하올라와 신시대
  • 51. 45 다시 하느님께 비나니, 원컨대, 이 어두운 고난으로써 그분의 성자(聖者)들의 몸을 보호하는 방패로 삼으사 칼날과 창끝으로 부터 그들을 방어하게 하여 주십사고.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의 광명이 더욱 밝아지고 하느님의 영광이 더욱 빛나는 것이니 이 것이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취하신 방법입니 다.”---‘바압의 에피소드’(146-147) 악카에서의 감옥생활 그때의 악카는 터키제국 각지로부터 가장 흉악한 죄인들을 보 내는 감옥 도시였다. 남녀 노소 80명 내지 84명으로 된 바하올 라와 그분 추종자들의 일행은 비참한 해상(海上)여행을 마치고 여기에 도착하여 곧 병영(兵營) 안에 수감되었다. 그 장소는 심 히 불결하고 음산한 곳이었다. 거기에는 침상도 없고 아무 침구 도 없었다. 음식물도 극히 조악하고 부족하였으므로 얼마 후에 참을 수 없는 이 죄수들은 자신들이 식료를 사 올 것을 원하였 다. 처음 몇 일 동안은 아이들이 울기만 하여 전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말라리아, 적리 등 괴질이 발생하여 겨우 2명을 제외하 고는 동행자 거의 전부가 병석에 눕고 말았다. 그들 중 세 사람 이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 었다.10) 이 참혹한 감옥생활이 2년간 계속되었는데 그동안 누 구도 외출할 수 없었다. 다만 네 사람이 매일 엄중한 감시 하에 식료품을 사러 나갈 수 있을 뿐이었다. 이 병영 내의 감금생활 중 외부로부터의 방문은 엄격하게 금 지되어 있었다. 페르시아의 바하이 몇 사람이 사랑하는 지도자 10. 바하올라께서는 사망자 두 사람의 매장 비용을 위하여 자신이 쓰시던 융단을 제공하셨다. 그러나 그 돈은 군인들에게 횡령을 당하고 시체는 땅 구덩이에 던져지고 말았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52. 를 알현하고자 도보로써 멀리 왔으나 성안으로는 한 걸음도 들 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가끔 성 밑 제3호(濠)의 바깥에 있는 들에 나갔다. 거기서는 바하올라께서도 그 창에 용안(龍顔)을 나타내셨다. 그 사람들은 멀리서 그분을 바라보며 울다가 돌아 갔지만 그들은 희생과 봉사의 정열이 더욱 불타는 것을 느꼈다. 속박이 완화됨 이 감옥생활도 조금 완화되는 날이 왔다. 터키 군대가 동원되 어 이 병사(兵舍)를 사용하게 되었다. 바하올라와 그분의 가족 들은 그들만의 한 주택에 옮기고 다른 신자들은 시내의 어느 대 상하숙(隊商下宿)에 수용되었다. 바하올라께서는 이후 7년간 이 집에서 감금 생활을 하셨다. 그분이 유폐(幽閉)되어 계신 작 은 방 가까이에 그분의 가족 남녀 13명이 그럭저럭 큰 고통 없 이 살 수 있었다. 이곳으로 처음 옮겼을 때에는 설비의 불충분 과 음식물, 기타 생활필수품의 부족으로 인하여 비상한 곤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 후 두 세 개의 방을 더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비교적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병사를 나온 후에 는 외래자의 방문도 허락 되어, 칙령에 의하여 극히 엄격하였던 속박이 때때로, 일시적으로 시행되기는 하였으나, 점차 완화되 었다. 옥문이 열림 감옥생활이 비참의 극에 달했을 때에도 바하이들은 무서워하 거나 동요함이 없이 확고한 신념을 결코 잃지 않았다. 악카의 병사에 갇혀 있을 때 바하올라께서는 신자 몇 사람에게 보낸 편 지에서 다음과 같이 쓰셨다.“무서워하지 말라. 옥문은 열릴 것 46 바하올라와 신시대
  • 53. 47 이다. 나의 천막은 저 칼멜산 위에 세워질 것이요, 그리하여 무 상의 기쁨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라고. 이 선언은 그분의 추 종자들에게 위안의 대원천이 되었으며 얼마 후에 사실로 실현 되었다. 어떻게 하여 옥문이 열렸는가에 대하여는 그분의 증손 쇼기 에펜디에 의하여 영어로 번역된 압돌바하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다. “바하올라께서는 농촌 풍경의 아름다움과 푸른 나무가 울창 한 것을 몹시 좋아하셨다. 어느 날 그분은‘나는 9년간이나 초 목이 무성한 것을 보지 못하였다. 농촌은 영혼의 세계요, 도시 는 육신의 세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간접적으로 이 말씀을 들었을 때 그분이 농촌을 몹시 그리워하시는 걸 알았다. 그리 고 나는 그분의 희망을 실현해 드리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을 확신하였다. 당시 악카에 모하멧 파샤 사 프와트 라고 하는 우리의 큰 반대자가 있었다. 그는 마즈라에 라고 하는 큰 저택을 시(市)의 북쪽 4마일 지점에 가지고 있었 다. 그 대저택은 화원과 시냇물에 둘러싸여 매우 좋은 곳이었 다. 나는 파샤를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파샤, 당신은 저 훌륭한 성을 버리고 악카에 와서 살고 있는데’하고 말한즉,‘나는 병 이 있는 몸이므로 도시를 떠날 수 없다. 거기 있으면 쓸쓸하고 친구를 만날 수도 없다.’고 그는 대답했다. 나는‘당신이 거기 살지 않고 성이 비어 있는 동안 우리에게 빌려줄 수 없는가?’ 하고 물었다. 그는 나의 말에 놀랐으나 곧 승낙하였다. 나는 1 년에 약 5파운드라는 싼 집세로 5년 분을 지불하고 계약하였 다. 나는 곧 사람을 보내어 성을 수리하고 화원을 정리하고 욕 실(浴室)을 만들었다. 그리고‘축복받은 미(美)’11)를 위하여 11.‘쟈말레 무바락’(즉 축복받은 미)란 것은 신자와 벗들이 가끔 바하올라를 부르는 칭호였다. 제 3 장 하느님의 영광, 바하올라
  • 54. 마차 한대를 준비하였다.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이 거기 가서 그 장소를 보려고 결심하였다. 우리는 시(市)를 둘러싼 성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는 여러 번 내린 칙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의 관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갔다. 감시하는 병사들이 파수를 보고 있었으나 아무 말도 없으므로 나는 곧게 그 성으 로 갔다. 이튿날 나는 다시 몇 사람의 친구와 관리들과 함께 나 갔으나 성문의 양측에 있는 파수병이 우리를 막지 않았다. 그 후 나는 바흐지의 소나무 밑에 테이블을 갖추어 연회를 베풀어 시의 주요한 인물과 관리들을 초대하였다. 저녁에 우리들은 함 께 돌아왔다. 어느 날 나는‘축복받은 미’의 앞에 나아가‘마즈라에에서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마차도 한대 준비 하였습니다.’고 여쭈었 다. (당시 악카나 하이파에는 마차가 한 대도 없었다.) 그분은 ‘나는 죄수다.’하면서 그곳에 가시기를 거절하셨다. 후에 다 시 말씀드렸으나 전과 같은 대답을 얻었을 뿐이었다. 세 번 간 원하였으나 역시 거절하셨다. 나는 그 이상 강청 할 수 없었다. 당시 악카에는 세력 있는 유명한 이슬람교도인 쉐이크가 있어 바하올라를 사랑하고 바하올라께서도 그를 사랑하셨다. 나는 쉐이크를 불러 그 사정을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과감한 사람이다. 오늘밤 바하올라의 성스러운 면전에 나가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의 두 손을 잡고 그분이 시가를 떠난 다고 약속하실 때까지 그분을 놓지 말고 간청해 달라고. 쉐이 크는 아라비아사람이었다....... 그는 곧 바하올라께 다가가서 그분의 발 앞에 꿇어 앉았다. 그는‘축복받은 미’의 손을 잡아 입 맞추면서‘왜 당신은 시가를 떠나지 않습니까?’하고 여쭈 었다. 바하올라께서는‘나는 죄수’라고 대답하셨다. 쉐이크는 48 바하올라와 신시대